no.12 Essay She said, 처음 느낀 감정. (1편에 이어서-) 우리 둘의 첫 해외여행, 헬싱키에서의 첫날은 어두운 밤부터 시작되었다. 그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날 줄도 모르고 그저 신나고 떨리는 마음만 비행기 연료처럼 가득 채운 채 헬싱키 공항 밖으로 빠져나왔다. 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밤에 도착한 낯선 도시의 공기는 나의 신나고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충분했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방울들이 꽤나 굵직했고 바람도 힘찼다.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바이킹족, 선이 굵고 강한 그들과도 같은 날씨였다. (북유럽에서 비 라니;;; 난 눈을 상상했지, 비는 진짜 상상도 못했네.) 우리는 호텔이 아닌 에어비앤비를 통해 개인 숙소를 예약했기 때문에 셔틀버스나 좀 더 용이한 교통수단 대신 공항에서 시내 곳곳을 도는 일반 버스를 타야만 했다. 우리 둘 모두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던 터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에 두려움은 없었지만, 실제로는 버스에 올라탄 순간 당황했다. 동양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우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국민의 외형을 갖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당혹스러움을 꼭꼭 감춘 채 나는 기사님에게 지명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탄 이 버스가 그곳에 가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런, 영어를 못하신다. 유창한 영어실력 따위는 필요 없게 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그때부터 단도직입적 영어를 사용했다. (지명을 말하며) “버스 스탑??”” “위 고 히어.” 사랑하는(하지만 결정적일 때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남자친구는 기내에서 아이패드를 밖에 놓고 왔다고 다 들리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던 그때처럼 엉덩이와 입을 무겁게 한 채 앉아 있었다. 영어도 통하지 않고, 버스 안팎으로 어둠만 있는 곳에서 여행의 기대감이 두려움으로 뒤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 순식간에도 나는 나의 “사랑하는”(강조) 남자친구를 원망했다. 원망이라기보단 비행기에서의 그 사건 때 느꼈던 그 감정을 다시 한번 느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우리가 연인에서 부부로, 종종 함께 자고 헤어지던 사이에서 지겹도록24시간 붙어 있는 사이로 바뀐 뒤 알게 된 게 있는데 그건 바로 그가 해외여행에서(프랑스, 모로코-불어권 나라- 제외) 영어를 말할 때 유독 과묵했던 이유다. 그 이유는 내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길을 묻고, 사람들과 말을 섞으니 굳이 자기까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둘 중 하나만 말하면 되지 둘 다 말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 그리고 본인이 사용하는 불어보다 내가 사용하는 영어가 더 잘 통하니 말하게 그냥 두었다는 것이다. 과거의 나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이유였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 말과 그 생각을 이해한다. 아니, 이해하기보단 인정했다. 발음하기도 어렵고, 읽기엔 더더욱 어려운 여러 정류장 이름이 버스 내 전광판에 반짝거릴 때마다 정신을 가다듬었다. 처음 한글을 배우는 사람처럼 손가락으로 철자를 하나씩 짚어가며 지도와 버스 안내 등을 번갈아 봤다. 동양인 두 명이 자기 뒷자리에서 불안한 기운을 뿜으며 정신없이 고개를 아래 위로 왔다 갔다 하는 걸 본 건지, 내가 했던 말을 알아듣고 기억해 주었던 건지 버스 기사님은 어두컴컴한 길 위, 어느 이름 모를 정류장에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비는 계속 추적추적 내렸고, 우리는 다음날부터 데이터를 쓸 생각에 와이파이도 없이 헬싱키 어느 어두운 길 위에 서 있었다. 나는 슬슬 짜증이 났다. 내가 그렸던 우리만의 첫 해외여행의 첫날밤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이게 아닌데! 숙소를 호텔로 잡지 않고, 에어비앤비의 개인 주택으로 예약한 그가 꼴 보기 싫었다. 10월의 비 내리는 헬싱키, 그곳의 밤은 그를 향한 짜증과 원망을 야무지게 버무려 나를 맞이했다. “여기로 쭉 걸어가면 될 것 같은데?” 묵언수행이라도 하는 줄만 알았던 그가 한참을 핸드폰 화면을 보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는 여행 준비를 할 때 구글맵으로 대략적인 위치를 곳곳에 미리 표시해 두었던 것이다. (나는 대략적인 위치만 확인할 뿐, 여행할 때 길 찾기는 미리 하지 않는다.) “일단 가봐. 어차피 어디로든 가야 하니까.” “어, 내가 먼저 걸을게. 캐리어 내가 들까?” “아냐, 내 건 내가 들어. 괜찮아.” 핸드폰으로 길을 더듬으며 다른 한 손으로는 자기 캐리어를 끄느라 버거울 텐데도 먼저 말을 걸어왔지만 그 말에 대꾸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 뒤로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 가방이 아무리 무거워 보여도 들어달라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지 들어 주지 않는다. 바라지 않지만 아차 싶었다. 이런. 빅픽쳐를 못 그렸네.) “여기서 길 건너면 될 것 같아.” “알았으니까 계속 가. 알아서 따라갈게.” 짜증이 머리끝까지 채워졌고 이제 뚜껑이 열릴 타이밍이다. 털이 보송하게 난 여행 전 새로 산 가디건은 축축하게 젖어 헬싱키의 비를 나 혼자 다 맞고 있는 것 같았다. 물먹은 솜은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둘이었는데, 어째서 나만 짜증이 난 걸까? (이것도 나중에 깨닫게 된 사실인데, 그는 정말 화를 거의 내지 않는다. 분노하거나,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 지점. 물의 끓는점과도 같은 그 지점이 그는 상당히 높았다. 짐작하겠지만 나의 끓는점은 매우 낮다.) 짜증이 다행히 폭발하지 않고 체념과 포기로 바뀔 때쯤 우리는 드디어 집 앞에 도착했다! 그 횡단보도를 건너 모퉁이 꽃집을 돌아 걸으니 바로 짠! 하고 나타났다. 야호! 이제 얼른 집으로 들어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뽀송뽀송한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눕기만 하면 된다! “이런, 집 주인이 지금 집에 없대.” “뭐?? 무슨 소리야?? 그럼 집 어떻게 들어가기로 한 건데? 얘기했을 거 아냐?” “만나서 키 받기로 했는데, 급하게 나왔대.” “뭐? 미치겠네. 아 진짜 짜증 나.” 다음 편에 마지막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He said, 치와와 아줌마 국민학교라고 부르던 시절, 막 공교육에 발을 들이려던 시절 나의 이모는 동대문에서 살았다. 그때만 해도 외가 친척과 왕래가 많아 이모가 살던 그 동대문을 제집 드나들듯 다녔다. 이모가 살던 집은 아파트였다. 말이 아파트지 상가건물 위에 다닥다닥 붙은 복도형 집단 거주시설이었다. 지금 ‘아파트'하면 떠오르는 그런 이미지는 아니었다. 어떤 어두운 기운 같은 것은 없었고 오히려 꽤나 활기차고 온기 가득한 곳으로 기억 속에 남아있는데, 지금 그 곳은 가끔 느와르 영화나 공포영화에서 어둡고 가난의 찌든 때가 가득 머금은 곳으로 그려진다.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의 배경인 ‘그린홈’ 같은 곳 말이다. 그 아파트에는 이모네 이웃인 ‘치와와아줌마'라고 부르는 분이 있었다. 기억 속에서 키가 작고 덩치가 좀 있던 중년의 여성이었는데 어쩌면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어렸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사람들은 그분을 ‘치와와아줌마'라고 불렀다. 치와와 세 명과 함께 살던 분이었는데 내가 이모네 집에 갔을 때도 복도에서 종종 마주쳤다. 언제나 마주칠 때면 작고 눈이 튀어나온 치와와 세명과 함께 복도를 걷고 있었다. 복도를 산책 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모네와 치와와아줌마는 친하게 지냈다. 그 치와와 아줌마는 나를 조카처럼 대했다. 그래서 가끔 아주머니 집을 이모와 함께 들어가 맛있는 것을 얻어먹고 나오곤 했다. 치와와 아주머니 집은 이모네처럼 입구를 들어서면 주방과 작은 거실이 있고, 반쯤 투명한 미닫이문으로 방과 그 사이의 경계를 그어놓은 구조였다. 그 방에는 하얀 바탕에 핑크색과 녹색이 뒤섞인 모양의 이불이 깔려 있었고, 치와와 세명은 아주머니가 움직일 때마다 쪼르륵 따라다녔다. 아주머니가 유일한 가족인 그 치와와 세명을 뭐라고 불렀는지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아들이라고 불렀던가(암놈이었던가?), 우리가 소소와 소담이를 부르는 것처럼 이름을 불렀던가, 이름은 아닌 것 같다. 그 세 명의 이름은 기억에 없으니. 그냥 당시에는 ‘치와와 세 마리'라고 불렀다. 아주머니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자식도 없었다. 자식 같은 치와와 세명이 유일한 가족이었다. 엄마와 이모는 그녀의 애지중지 반려하는 모습을 보고는 “사람을 만나"라고 했다. “늙어서 의지할 대라도 있는 게 낫지 않겠어”라며 치와와에게 애정을 쏟는 것을 우려했다. 희미해진 기억에는 조금은 할머니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 대화의 기억을 되짚어 보면 이모와 동년배 정도였던 듯싶다. 나의 여덟 살 무렵이었으니 대충 엄마와 이모의 생년을 따져보면 지금 내 나이보다 조금 위 일 듯싶다. 40대 중반으로 치와와 세명을 데리고 사는 여성이 ‘치와와 아줌마’였다. 내가 국민학교 2학년이 될 무렵 우리 집은 사당동에서 안산으로 이사를 했다. 당시 사당동에서는 쌀집을 했었는데, 그 쌀집으로 모은 돈으로 아메리칸드림처럼 안산드림을 꿈꾸며 식당을 열었다. 이 식당 저 식당을 전전하며 주방 일을 했던 이모의 솜씨가 필요했다. 가장과 다름없었던 이모는 남편과 사내아이 둘을 데리고 그 역시 ‘안산드림'을 꿈꾸며 이사를 했다. 우리 집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림을 옮겼다. 그 후로 ‘치와와 아줌마’는 볼 수 없었다. 가끔 이모가 서울에 갈 일이 있을 때면 치와와 아줌마를 만나고 오는 듯싶었지만 나는 더 이상 만나지 못했다. 그 치와와 셋은 길어봤자 몇 년을 더 살았을 듯싶다. 그때도 이미 나이가 조금 있던 녀석이었다. 그 후에 치와와아줌마는 ‘의지할' 사람을 만났을까, 아니면 이번에는 다른 반려견을 데려왔을까? ‘소소’를 입양하기 전, 우리에게는 ‘보통’이라는 녀석이 있었다. 단 10일간이었지만 정민s와 나에게는 첫 반려견이었다. 첫 3일 정도만 약간의 적응을 하며 보통의 생활을 했고, 나머지 7일은 아팠고, 마지막 날 새벽에 삶을 마감했다. 그때는 그 10일간이 너무나 빠르게 흘러 반려인의 생활을 느낄새도 없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나 우리는 ‘보통’이보다 조금 더 얼굴이 길쭉한 ‘소소’를 입양했다. ‘보통'이를 떠내보내고, ‘소소’를 입양하는 사이 양가 부모님은 ‘치와와아줌마'를 바라보듯 약간의 우려를 내비쳤다. 그녀에게 ‘사람을 만나'라고 하듯, ‘늙어서 의지할 대라도 있어야 한다'라는 듯 아이를 가지라고 했다.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고 더 이상 그런 얘기는 듣고 싶지 않다며 강하게 의견을 내비쳤다. 물론 양가 부모님 특히, 양가 어머님들은 은근슬쩍 선을 넘기도 하면서 ‘자식의 아이’보다는 ‘본인의 손주'를 바랬다. 소소가 우리와 가족이 된지 이제 3년이 넘었다. 조금씩 선을 넘는 일은 줄어들었다. 포기인지 체념인지 여전히 선을 넘을 기회를 엿보는 중인지는 모르겠다. 반려인 생활을 하면서 인간계만 연결됐던 삶과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생활을 하게 된다. 반려냥이인 ‘소담'이 까지 연결된 것은 분명 그 영향이었다. 채식지향인으로 삶의 방향성을 바꾼 것도 역시 반려인 생활의 한 영향이었다. 이런 거시적 영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소와 소담이는 언제나 같은 하루를 사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소소는 간식을 주거나, 산책을 나가면 좋아한다. 한 번도 배부르다며 시큰둥하거나, 귀찮다며 산책길을 마다한 적이 없다. 거의 매일 만나는 친구 아지를 오전에 보고 저녁에 다시 봐도 처음 만난 것처럼 신나한다. 소담이도 다르지 않다. 집안이라는 작은 세계에서만 생활을 하지만 지겹다며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며 밖을 나갈 기회를 엿본 적은 없다. 아주 작은 새로운 것만 있어도 마치 엄청난 것처럼 호기심으로 대한다. 방금까지 놀던 장난감이 다시 눈앞을 획획 지나가면 새로운 것 마냥 사냥을 한다. 매일 한결같은 녀석들을 보면서 지루하거나, 불안하거나 같은 널뛰는 감정이 들 때면 그 커 보이던 감정이 별것 아닌 듯 만들어버린다. 엄마와 이모는 모른다. 양가 어머니는 모른다. 치와와 아줌마와 우리가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과는 다른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모른다. 결혼을 하지 않아서, 아이가 없어서 마치 어떤 관계의 결핍을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 쏟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다른 그들과의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다. 인간끼리의 관계만으로 생활하는 것은, 남들처럼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그 전형적인 삶 이외에는 생각해 보지 않은 매주 작고 편협한 관점의 삶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모르면서 마치 자신들이 모두 다 아는 것 마냥 행동한다는 것도 그들은 모른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이 있다. 돈과 명예를 모두 가진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고, 돈도 명예도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자신을 넘어 다른 삶을 도우며 하루하루 힘을 얻어 살아가기도 한다. (타자에게 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삶이 옳은 삶인지 그른 삶인지 판단할 수 없다. 그저 자신이 생각한 몫으로 하루 하루 잘 살아가면 그만이다. 모르면서 아는 채 하지 말고, 모르면서 안다는 듯 가르치려 하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소소와 소담이 그리고 보통이가 열어준 세계에서 배우고 있다. 화병꽂이 no.12 글을 쓰는 수요일, 날씨가 갑자기 많이 추워졌어요. 흐리기도 하고요. 저는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겨울이 무척 힘들어요. 요즘처럼 실내 공기가 차갑지만 난로를 틀 수 없는 애매-한 시기에는 더더욱 괴롭기도 하답니다. (핫팩을 꺼내 들고 있자니 괜한 자존심이;;;;) 날씨 이야기로 너무 글을 끌고 가죠? 헤헷, 저는 날씨에 따라 꽃을 고르기도 하거든요. 날씨처럼 같이 어둑어둑한 꽃을 고를지, 마음만은 쨍! 하고 싶은지 등등 . 오늘은 쨍함과 어둠을 교묘히 섞은 꽃들로 화병에 꽂아봤어요. 결혼식 혼주 코사지로 단골 꽃인 호접난은 언제 보아도 우아하고, 기품 있는 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호접의 어두운 그림자를 담당하고 있는 꽃은 팬지랍니다. 사진으로는 그윽하고 멋진 컬러와 텍스쳐가 다 담기지 않아 속상하지만 ㅜㅡ 가시처럼 뾰족하게 나와 있는 소재들은 꽃을 최대한 없애고 잎만 살려 함께 꽂은 왁스플라워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양면성을 갖고 있다 생각해요. (갑자기??) 호접난의 밝고, 쨍한 컬러와 대비를 이루는 팬지. 날씨를 생각하며 꽃을 골랐지만, 작업한 뒤 사진으로 보는 저의 꽃은 또 다른 생각들을 떠올려보게 하네요. 저의 꽃을, 생활화의 꽃을 보시고 나의 이웃들도 잠깐씩은 현재 빠져있는 감정에서 벗어나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오늘도 저의 꽃을 감상해 주셔서, 오늘도 생활화의 꽃과 글을 봐 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꽃으로 전하며- 생활책 어차피 책도 하나의 콘텐츠이니, 이번에는 책이 아닌 최근에 본 영화를 소개할까 합니다. 레이날도 마커스 그린 감독의 ‘킹 리차드'(2021)와 마이클 그랜디지 감독의 ‘지니어스'(2016)입니다. 이 두 영화는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실제 인물의 삶을 다룬 영화입니다. ‘킹 리차드는' 비너스, 셀레나 윌리엄스 자매의 아버지인 리처드 윌리엄스의 삶을 다루고, ‘지니어스’는 ‘F.스콧 피츠레럴드’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발굴한 편집자 ‘맥스 퍼킨스'의 삶을 다룹니다. 이 두 인물은 조금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위대한 인물 뒤에 있던 위대한 조력자. 이 두 영화를 소개합니다. (스포 따위 없습니다.) 킹 리차드 (King Ricahrd, 2021) 감독: 레이날도 마커스 그린 배우: 윌 스미스, 언자누 엘리스, 사니야 시드니, 데미 싱글턴 유독 하얗고 푸릇하게 느껴지는 테니스 코트에 선 두 흑인 선수는 ‘유독'눈에 띄었다. 테니스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리 관심도 없었지만 비너스 윌리엄스와 세레나 윌리엄스 그 둘은 ‘유독'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과정으로 거기까지 올라왔는지, 어떻게 한 집안에서 두 명의 대단한 선수가 나왔는지 알지는 못했다. ‘리처드 윌리엄스’ 그들의 아버지다. 내용은 영화를 통해 보면 되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잔상이 남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번째는 85페이지의 챔피언 육성계획, 다시 말하면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자매가 태어니가 2년 전부터 리차드는 자신의 자녀를 테니스 챔피언으로 키우겠다 마음을 먹었다. 그 마스터플랜이 먹힌 걸까? 영화에서는 그리고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계획이 모두 현실이 되었다. 그 계획서가 무슨 마법의 비법 같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리처드가 자신이 맞을 것이라고 믿고 밀고 나가게 만드는 신념 같은 것이 었을까?. 두번째는 대회를 나가고 싶어 하는 비너스 윌리엄스를 끝내 못하게 막으면서 부인과 다투는 장면이 있다. 약간의 클라이맥스 같은 부분인데, 그 부분에서 자신이 밀고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무서움이 연기를 한 윌 스미스를 통해서 전해졌다.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움. 영화를 보게 된다면 후반부에 나오는 이 장면을 주의 깊게 보기를 추천한다. 책 이상으로 한 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영화다. 지니어스 (Genius, 2016) 감독: 마이클 그랜디지 배우: 콜린 퍼스, 주드 로, 니콜 키드먼 천재 편집자 ‘맥스 퍼킨스'에 대한 이 영화는 얼마 전에 북클럽 도서로 선정됐던 윤정용 작가의 산문집 <미래는 꿈꾸는 대로 온다>에서 발견을 했다. 영화와 책에 대한 평을 쓴 책인데, 개인적 추천까지는 머뭇거려지는 책긴 하다. 아무튼, 작가는 ‘지니어스'를 통해 천재 작가와 그 천재 작가를 만드는 천재 편집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언제나 보이는 것 이면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많아 꼭 찾아봐야지 싶었는데 마침 wavve에서 찾았다. 영화는 큰 사건이 없어 흘러간다는 평이 많았다. 그래서 콜린 퍼스, 주드 로, 니클 키드먼, 로라 리니, 가이 피어스 같은 이름난 배우들이 출연을 하지만 기억조차 없이 지나갔다. 흥행이 되지 않았다. 대신, 고증에 꽤 많은 신경을 쓴 영화라는 평도 함께 있었다.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는 <천사여, 고향을 보라>의 ‘토마스 울프'와 편집자 ‘맥스 퍼킨스’의 만남과 이별까지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 역시 자세한 내용은 영화를 통해서 얻기를 바라며-, 인상에 남은 장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감정이 극에 치닫는 장면일 텐데, 콜린 퍼스가 연기한 ‘맥스 퍼킨스'가 편집자로서 두려움을 얘기하는 장면이다. ‘내가 저 위대한 작가의 글을 망치면 어떡하지? 내가 이렇게 고치라고 저렇게 고치라고 하는 것이 잘 못 된 판단이면 어떡하지?’ 맥스는 자신의 판단이 잘 못 될까 항상 걱정을 한다. 위대한 작가를 발굴하고 키워낸 전설적인 편집자지만 언제나 잘 못 될까 두려워하며 읽고 또 읽는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은 척하면 척할 수 있나? 마케팅의 천재면, 홍보의 천재면, 요리의 천재면, 재테크의 천재면 척하면 척인가? 그들에겐 너무나 쉬운 것인가? 어쩌면 전설적인 편집자인 그 처럼 잘 못 된 판단일까 두려워하며 하고 또 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것이 천재라고 부르는 것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재미없다는 평이 많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잠깐만 보려고 플레이를 눌렀다 결국 새벽 두 시까지 모두 보고 잠에 들었다 생활[이슈]클럽 요즘 우리의 이슈들 ISSUE 01. 지하철에서 가만히 있는 나에게 누군가 침을 뱉는다면? 지하철에서 내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에게 누군가 침을 뱉는다면? 당신은 어떤 행동을 할 것 같은가? 똥 밟았다며 침을 닦고 난동 부리는 승객을 무시하고 내 목적지에 상관 없이 내릴 것인가? 옆 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침 닦으라며 휴지나 손수건을 줄 것인가? ‘괜히 나섰다가 된통 당할 것 같은데?’ 라는 마음으로 눈 질끈 감고 참을 수 있나? 무엇이 올바른 행동일까? 머리로는 알지만 선뜻 나설 수 없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일까, 귀찮음 때문일까? ISSUE 02. 2002년 프랑스의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발언이 뜨거운 적이 있었다. “한국인은 개고기를 먹으니 야만스럽다.”라는 표현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프랑스의 여러 독특한 식문화가 알려지고,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논리적 빈약을 감정으로만 끌어가다 결국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기도 해 ‘정신나간 여자’같은 취급을 받기도 했다. 분명 사회적 논의를 해볼 만한 사건이지만 이 때문에 ‘식용개'에 대한 논의가 아닌 ‘자문화 중심주의 vs 문화 상대주의'의 대결로 이슈가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시간은 지나 잊혀졌다. 하지만 일부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아직 잊혀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고등학교 교과서를 볼일 없는 우리는 알 지 못했다. 하필 ‘식용 문화’를 가지고 ‘자문화 중심주의’와 ‘문화 상대주의'의 차이를 설명해야만 했을까. 이번에 동물권 행동 단체’카라’에서 관련 기관에 정정 요청을 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졌다. 동물권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그리 고운 편은 아니다. 특히 식문화로 넘어가면 더욱 그렇다. 비건의 행동이 마치 육식을 하는 사람을 향한 비난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국가적인 문화 대결로 남겨졌던 ‘중심주의와 상대주의', 지금은 개인적 식문화에 대한 것으로 남겨진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심주의와 상대주의. 이 이슈 어떻게 생각하나요? 생활소식 마을상점생활관의 소식을 전합니다. [생활워크숍] 디지털 드로잉 (아이패드) ( host: 김예지 (코피루왁) 작가 ) 『저 청소일 하는데요?』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 의 김예지 작가와 함께하는 디지털 드로잉 워크숍을 준비합니다. *아이패드만 가능 유튜브로, 클래스101같은 플랫폼으로도 충분히 유명 작가의 디지털 드로잉을 접해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시간도 제약이 없고, 비용도 훨씬 저렴할지 모릅니다. 다만 이런 비대면 워크숍의 경우에는 관계가 없습니다. 일방적으로 제작된 영상을 보면서 해야하기 때문에 별것 아닌 질문도 쉽지 않습니다. 언제든 볼 수 있으니 다음에 봐야지 방치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동영상 시청기기로 전락한 아이패드처럼요. 두 권의 그림책을 만들었고, 여러 외부 작업을 하고 있는 우리의 이웃 김예지(코피루왁) 작가와 함께 만나 별 것 아닌 질문도 편하게 오고가면서 방치되어있던 호기심을 키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물론 작가님과 더불어 함께 참여한 비슷한 관심사의 이웃과의 관계도 있습니다. 4월 총 4주간 매주 토요일 오전 워크숍을 준비합니다. 좋은 만남의 자리를 마련합니다 디지털 드로잉 워크숍 [4주] (Host. 김예지 작가) 일시: 약 1시간 30분 : 토요일( 4.2/9/16/23 ) 오전 10:00 가격: 20만원/총 4회 (회당 5만원) 인원: 최대 5명 |
마을상점생활관의 두 호스트의 생활의 관점을 담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