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게 2023년 12월 31일과 2024년 1월 1일의 사이에 우리의 생활관점 레터를 보내게 되었어요. 계획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딱! 맞아떨어진 것도 어쩌면 행운?! :)
레터를 읽는 분들의 열두 달은 어떠셨을지 궁금해하며 저의 열두 달을 여러분에게 보냅니다. 미리, 아니 어쩌면 가장 늦게 인사드리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덕분입니다.
레터를 읽어주셨던 분들,
마음을 전해주신 분들.
그리고, 그 마음을 온전히 다 받아낸 제 자신에게도요.
감사의 인사와 다정한 감정을 전할게요.
온 마음 다해 감사해요, 정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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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의 지난 열두 달을 회고할게요.
(일단 상반기부터-)
2023년 1월.
형진의 가족들(그는 외동아들이라 가족들이라고 해봤자 그의 아빠와 엄마다)과 함께 따뜻한 나라에 다녀왔다. 동물 가족이 생긴 뒤로 취미생활처럼 다녔던 해외여행을 가지 않았는데 효자 역할 놀이를 하기로 마음먹고 제일 먼저 계획한 일이라 서둘러 일을 치렀다. 형진은 가이드를, 나는 분위기 메이커와 사진사를 자처하고 무사히(?) 여행을 마쳤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나와 형진이 각자의 루틴대로 매일 아침 요가와 러닝을 했다는 것이다. 여행지에서도 별다르지 않은, 각자의 루틴을 지켜내는 힘이 드디어 우리에게도 생긴 것. 반가웠고, 뿌듯했다.
그리고, 오래 돌봤던 동네 고양이 해순이의 죽음. 시작과 끝, 기쁨과 슬픔. 모든 양가적인 것들을 겪어내는 게 인생이라지만 마음을 주던 생명의 죽음을 맞이하는 건 언제나 갑작스럽고, 언제나 슬프다. 충분히 슬퍼했고, 해순이를 생활관 뒷마당에 묻어주고 그를 향한 늘 미안했던 마음도 묻었다.
2023년 2월
플로리스트로서의 정체성이 언제냐 묻는다면 주문받은 꽃다발을 만들 때도 있지만,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한 목표 지점을 향해 나아갈 때가 아닐까? 나의 꽃 선생님을 돕기 위해 현대백화점 키 비주얼 촬영 세팅장에 열심히 나갔다. 한 겨울에 피지 않는 목련을 피우기 위해 애를 쓰고, 봄을 그리기 위해 컬러감과 텍스쳐를 맞추는 일은 힘들지만 동료들과 함께라 좋았다.
튀르키예 지진이 발생했고, 남 일에 적극적인 한국 사람들은 구호물품을 보내기 시작했다. 우리도 동네 이웃들에게 물건을 받아 함께 보내기로 했다. 중고물품을 받지 않는다는 소식에 새 물건처럼 보이기 위해 털을 떼고, 개별 포장을 해서 여러 박스로 나눠 택배를 보냈다. 포장을 하면서 ‘내가 이 일을 왜 한다고 했나.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라고 중얼중얼 거렸지만, 그 마음 끝엔 사람을 향한 연민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할 수 있었다.
2023년 3월
나의 엄마 아빠, 언니와 남동생과 함께 또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떠나왔다. 나의 원가족과 함께 첫 해외여행이라는 사실이 벅찼다. 우리에겐 특별했다. 고생 끝에 모두가 웃을 수 있었다.
생활관에서는 비건 샌드위치를 만들기 시작했고, 슬금 슬금 북클럽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움직이기 좋은 3월, 생활관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마스크 없이.
2023년 4월
예지 작가님의 스타트로 북토크를 시작했다. 엄마와 딸 이야기를 주제로 삼은 신간 출간회 겸이었다. 참석한 이웃들 중 엄마와 함께 자리를 채워준 분들도 있었다. 자주 훌쩍이고, 자주 웃었다. 그리고, 예지 작가님과 함께 생활관에서 플리마켓을 열었다.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많은 이웃들이 참여했고, 또 많은 이웃들이 생활관을 채워 주셨다.
나는 처음으로 혼자서 운전을 했다. 반려견 순찰대에 지원했는데, 현장 면접을 보러 소소와 함께 고잔동으로 향했다. 비록 유턴을 할 줄 몰라서 좌회전을 3번인가 했고, 지나가는 분을 붙잡고 주차를 잘 하는지 봐 달라고 했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첫 혼자 운전을 무사히 잘 마쳤다.
나의 플로리스트 동기에게 요가복 브랜드 팝업 스토어 세팅 제안이 들어왔다. 마침 그 브랜드는 나 역시 좋아하는 부디무드라였고, 나와 동기는 주저하지 않고 영혼을 싹싹 긁어모아 멋진 결과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요가원에 등록했고, 어쩌면 2023년의 큰 변곡점이 될 순간의 첫 발을 내딛고 있었다.
2023년 5월
생활화를 운영하면서 늘 고민하는 순간. 어버이날이 있는 5월이다. 꽃집들은 1년 매출을 이때 뽑아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출과 수입이 모두에게 많은 날이기도 하다. 나는 아주 고약한 성질머리가 있어서 이런 꽃 문화가 싫어졌다. 그래서 차린 생활화였는데, 나 역시 자본주의 사회의 일원으로 그 시즌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아니, 피하지 않기로 선택했다. 고민은 행동을 느리게 만든다. 나는 늘 그랬다. 변하지 않았다. 대신 결과물은 만족스러웠다. 버틸 만큼의 바쁨이었고, 소화해낼 수 있는 정도의 주문량이었다.
오랜만에 생활관에서 재즈 공연이 있었다. 이번엔 우쿨렐레와 기타만으로 채워졌다. 큰 공간을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역시나 생활관과 재즈는 잘 어울린다. 언젠가 꼭 피아노도, 드럼도 채워보고 싶어졌다.
2023년 6월
생활관이 정식으로 문을 연지 5년이 되는 날. 많은 축하를 받았다. 우리가 역병의 시대를 버티고 5년 동안 운영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이웃들 덕분인데, 우리는 또 감사하단 인사를 받았다. 이건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른다.
온라인 베이스의 모임을 선호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시도해 본 ‘일기 근육 키우기’를 시작했다. 페이지 오픈을 하자마자 바로 마감된 게 얼마 만인지! 잘 해봐야지.
신유진 생가 투어를 기획하게 된 장본인, 신유진 작가님을 모셨던 6월. 너무 좋은 작가님인데 모집된 인원이 적어서 괜히 죄송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인원이 적으면 대화의 밀도는 깊어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서로 나눴다. 호스트와 게스트 모두 어울려서. 이날 작가님에게 들은 말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 “잘 하는 걸 계속하세요. 못하는 걸 잘하려 하는 것보다 저는 잘 하는 걸 더 잘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잘 하고, 좋아하는 걸 계속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