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한수희 작가님을 오랫동안 흠모했다. 회사 다니던 시절부터 였으니 정말 오래다. 그런 내가 그런 그에게 글쓰기 지도를 받게 될 날이 오게 될 줄이야!! 북토크 호스트로 모시는 것과는 또 다른 설렘이었다. 나의 날것의 글을 보여드렸고,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소소의 산책 줄을 멍 때리면서 잡고 있다가 갑자기 튀어 나간 소소를 제어하지 못해 줄에 걸려있던 카라비너에 나의 손가락 사이가 걸려 찢어지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아픈 것보다 찢어진 상처 사이에서 계속 꿀렁꿀렁 뿜어져 나오는 피가 무서웠다. 가까운 심야 진료 병원에 갔지만, 더 큰 병원으로 가라는 얘기에 두손병원으로 향했던 날, 그리고 생애 첫 1인실 입원. 통증은 오랜만에 누리는 혼자만의 고요에 견딜만했다.
여름엔 심야영업을 하는 생활관이 어울린다. 시원한 맥주와 밤의 생활관. 이웃들도 반기는 우리의 공간에서의 여름. 그들의 한 여름 페이지에 우리의 초록이 함께 했길.
2023년 8월
좋아하는 필사 클럽을 온라인으로 또 시도했다. 첫 온라인 필사 클럽의 책은 신유진 작가님의 <15번의 낮>으로 정했다. “무슨 생각을 하긴 무슨 생각을 해. 딱 하나뿐이지. 이제 일어나야지.” ’이제 일어나야지, 넘어졌으니. 그 말이 맞다. 넘어진 후에는 일어나야 하니까.‘ 나를 사로잡은 문장 하나로 책을 정했다.
8월에는 나의 요가 선생님이 생활관에 처음 방문해 주셨던 날이다. 요가 이야기로 책을 쓴 정우성 작가님의 북토크에 참여하셨다. 그리고 나의 선생님과 작가님은 서로 요가 이야기를 나누셨다. 흐뭇했다. 요가로 이어지는 인연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생활관에 가장 많은 인원이 가장 빠른 시간에 채워진 순간, 이슬아+양다솔 작가님의 북토크 날. 한여름밤에 많은 이웃들이 두 작가님들 덕분에 많이 웃고 많이 고개를 끄덕였다. 뿌듯했고, 보람찼다.
나와 형진, 그리고 소소와 소담, 소이가 살고 있는 401호의 옥상에서 아기 고양이가 숨어있는 걸 구조했다. 더는 털 가족을 늘려갈 수 없어 마음 무겁게 임보를 시작했다.
2023년 9월
나의 바람대로 생활관에 드럼이 들어오고, 콘트라베이스가 들어왔다. <늦여름 밤의 하와이>라는 주제로 공연이 열렸다. 우쿨렐레, 드럼,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재즈 보컬까지. 황홀했다. 진심으로.
생활관의 이웃들이 꼽았던 올해 최고의 작가님, 박미옥 형사님이 생활관에 오셨다. 그는 행동과 말 모두 자연스러웠고 당당했다. 그리고 부드럽고 유쾌하지까지 했던 형사님. 그의 말처럼 하루하루 또박 또박 살아가야지.
오랜만에 신작을 낸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동네 서점 에디션이 도착했다. 서점을 하지만, 여전히 그의 책을 읽지 않는 1인.
옥상에서 구조한 고양이의 이름은 콩떡이로 정했고, 점점 커가는 녀석의 행복한 가정생활을 위해 생활관 대신 401호에서 임보 생활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콩떡이는 401호에 입성했다.
2023년 10월
생활관에서 직접 고용 형태로 만나게 된 인턴은 아니지만, 인연이 닿아 함께 일하게 된 우인턴이 10월의 큰 기억이다. 그는 사랑스럽고 다정했다. 주말마다 그의 부스스한 파마머리와 단정한 옷차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정혜윤 작가님을 10월에 만나기로 했는데, 마침 신간 소식도 함께라 너무 좋았다. 나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작가님을 모시러 지하철역으로 갔다. 그는 여전히 사랑스러웠고, 부산스러웠다. 그리고 그의 말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2023년 11월
요가를 삶에 들인 지 1년이 넘어갔다. 호기심이 더 가득한 채 등록한 빈야사 지도자 과정에서 나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얻었다. 함께 수련하고,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도반들을 얻었고 수련과 배움의 시간 동안 연민과 용서라는 걸 깊게 알게 되어서 죽어도 용서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을 마음에 품을 수 있게 되었다. 많이 울었는데, 많이 편안해졌다.
드디어 콩떡이 입양 신청서가 들어왔다! 신날 줄 알았는데, 막상 입양 보낸다 생각하니(아니, 입양 신청서만 들어왔을 뿐인데!!) 눈물이 계속 흘렀다. 입양 신청서를 보낸 분께 조금 더 자세하고 집요한(?) 질문을 했는데 답장은 없었고 그 뒤로 연락도 없었다.
2023년 12월
너무 지쳤었다. 우리는 결국 쉼을 택했다. 12월이 시작될 때 일주일 정도를 쉬기로 했고, 2023년 하반기에 생활관에 등장한 새로운 이웃과 함께 나의 로망인 겨울 캠핑으로 긴 휴가의 시작을 알렸다.
오랫동안 돌보던 해순이를 1월에 보내주었는데, 그의 딸 해양이가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해양이와 똑 닮은 어리고 통통한 고양이가 나타났다. 여전히 생활관 앞쪽의 급식소는 성황리에 운영중이다.
예지 작가의 그림 근육 키우기로 인연이 닿았던 뮤지션의 요청으로 생활관에서 음악회를 열게 되었다. 드. 디. 어!!! 그랜드 피아노가 생활관에 입성했다!!!!!! 검은색 피아노와 초록의 공간, 울려 퍼지는 피아노 음색. 생활관은 이렇게 이웃들로 또 채워졌다. 그리고 나는 그들 덕분에 나의 여러 소망들을 채워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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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열두 달은 어땠나요? 꼭 각자의 시간들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회고한 시간들을 답장을 보내주신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