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4일 일요일
1월의 생활요가 마지막 시간, 유이 선생님의 리딩으로 인요가 수련을 했다. 빈야사에 익숙했던 이웃들은 어리둥절해 하는 것 같았지만 금방 적응하는 모습을 봤다. 지난 수요일의 빈야사 수련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얼굴도 보였고, 나와 함께 바나함에서 수련하는 나의 도반과 나의 스승님도 자리를 채워 주셨던 시간. 따뜻했고, 충만했다.
수빈 씨와 정인 씨가 생활요가를 끝내고 계속 자리를 지켰다. 일요일 생활관의 첫 손님이시다. (정인 씨는 거의 마지막까지 계셨고 언젠가는 최장시간 머무는 손님이 되겠다 굳은 다짐을 외치며 떠났다)
식사를 하기 위해 잠깐 비웠던 생활관에 제법 많은 손님들이 찼다.
현식 씨도, 소영 씨도 따로 또 같이 오셔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각자 시간을 보내셨다.
처음 뵙는 손님들도 유독 많았던 일요일의 늦은 오후. 손님이 너무 없어서 침울해졌던 지난 몇주와는 사뭇 다른 공기였다. 정말로 예측 불가능하다. 이 (빌어먹을)자영업이라는 게.
정아 씨와 성혁 씨가 뽀미와 함께 감자튀김을 사서 오셨다. 우리는 다 같이 정인 씨와 현식 씨까지 빅테이블에 모여 감자튀김을 먹으며 “또” 지난 익산 여행의 순간들을 곱씹었다. 오랫동안 우리들 사이에서 툭하면 나올 이야기들이 될 것만 같다.
1월 15일 월요일
혼자서 생활관을 운영하는 월요일이다. 여전히 나는 혼자서 생활관을 지키는 게 부담스럽다.
새롭게 도착한 책들을 진열하다 프랑스어 수험서가 섞여 있는 걸 발견했다. 익산 여행에서 신유진 작가님의 반려인, 마르땅와 불어로 대화하다 본인의 부족함을 여실히 느꼈다며 주문한 형진의 개인 책이었다. 그가 책 읽기나 운동 외에 새롭게 시작하는 걸 본 적이 거의 없는데, 불어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니 반가웠다.
혼자서 가게를 지킬 때 자주 나를 편안하게 해줬던 현식 씨가 생활관에 나타나 주셨다. 이발한 후에 들르셨다고 했다. 개인적으론 지난번 헤어스타일이 더 괜찮았는데, 말을 아꼈다.
중앙동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걸어온 두 분. 연인은 아닌 것 같았지만 서로에게 호감은 있어 보이는 사이였다. 생활관을 오랫동안 지키셨고 음료를 각각 두 번씩 주문하셨다. 요즘엔 이렇게 생활관에 오래 머무시면 음료나 디저트를 더 주문하시는 분들이 많이 생겼다. 자영업자 입장으로는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마시고 싶지 않지만 더 머물기 위해 주문하는 필요 이상의 행동은 조금 아쉽다. 너무 배려하는 것 아닐까?
오늘도 제법 처음 생활관에 오시는 분들을 많이 만났다. 모두 따뜻했다.라고 쓰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사람들은 언제나 따뜻했을지도 모른다고. 내가 뾰족하고 울퉁불퉁하고 차가워서 나와 동기화 시켰던 걸지도 모른다고.
진아 씨가 뭉구와 함께 월간 독서 책을 픽업하러 오셨다. 두유밀크티를 가득 담아 내어드리고 강아지 얘기를 하며 어두운 저녁 시간을 맞이했다.
1월 16일 화요일
(개인 휴무)
형진이 옆 동네에서 휴롬을 당근으로 샀다. 생활관에서 건강한 착즙 주스를 팔아보고자 사 온 것인데, 생활관을 운영하는 인간 둘이 가장 건강하지 못한 생활을 하는데 우리부터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닌가;;;
원래의 계획은 집 청소를 하고 낮잠을 자고 요가 수련을 하러 갈 계회이었는데, 거실의 구조만 조금 변경하고 지쳐서 낮잠을 2시간을 넘게 잤다. (요즘 알게 된 사실인데, 제대로 된 수면을 하려면 낮잠 시간은 정말로 이른 낮 시간에 20분 이내로 자야 한다고 어느 전문가가 말했다.........) 무척 충분한 낮잠 덕분에 한결 말갛게 된 얼굴로 나는 수련을 하러 갔다. 즐겁고 힘든 수련. 수련이 끝나고 선생님과 도반 몇몇이 모여 과자와 막걸리를 마셨다. 저녁에 먹는 것들을 되도록이면 건강하게, 적게 먹고자 했는데 이렇게 또 실패를 한다. (괜찮아, 나에겐 내일이 있으니까!)
1월 17일 수요일
오후 3시가 넘어도 손님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런 날도 있으니 나와 형진은 2월부터 진행될 여러 워크숍과 클럽들을 구체화하고 운영시간과 방법들을 논의했다.
혼자서 운영했다면(운영할 마음도 먹지 못했겠지만) 절대로 생각하지 못했을 것들을 둘이라 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고마워해야 하는 존재인데 일과 생활이 뒤섞여 있는 관계이다 보니 꼭 그렇게 잘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상록 장애인 복지관에서 관계자분들이 복지사 선생님들과 함께 오셨다. 하필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오셔서 오랜만에 복직한 복지사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지 못했지만 먼저 안부를 전해주셔서 고마웠다.
작년 여름과 가을에 자주 오시던 커플이 아주 오랜만에 생활관에 들러 주셨다. 남자분 얼굴은 정확하게 기억나는데 함께 오신 여자분이 조금 헷갈려서 “오랜만에 뵙네요, 잘 지내고 계셨죠?”라는 인사를 하지는 않았다. 이제 운영 6년 차에 접어드니 헤어지는 커플들이 계셔서 더욱 말 조심을 해야 한다;;;
비가 내리는 평일 저녁이라 손님이 발길이 빨리 끊겼다. 회의를 이미 다 마친 형진과 나는 생활관에서 각자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마감시간까지 책을 읽었다. 편독이 심한 나는 평소에 읽던 책이 아닌 책을 읽으면 내용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요즘 읽고 있는 책이 그렇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읽고 있다. 도무지 책장을 술술 넘기지 못하겠다. 휴- 수련이나 가야지.
1월 18일 목요일
(생활관 휴무)
집에서 아주아주 잘 쉬었다. (내 기준에서 잘 쉰 것 : 아무것도 안한 것) 그리고 또 땀을 주룩주룩 흘리는 수련을 했다. 경숙 선생님의 모든 수련이 다 좋지만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웃는 수련은 빈야사다. 쉬지 않고 흘러가고 예측 불가능한 아사나들의 연결이다. 무방비 상태에서 맞이하는 순간들은 겁 많은 나를 되려 더욱더 용감하게 만들어 준다. 그 순간들이 신비롭고 감사하다.
혼자서는 잘 움직이지 않는 성혁 씨가 요가원에 들어선 순간 나는 평소보다 더 반갑게 그를 맞이했고, 수련이 끝나고 난 뒤 더 뽀얗게 된 그의 얼굴과 비를 쫄딱 맞은 것 같은 땀에 흠뻑 젖은 머리카락을 보고 나는 활짝 웃어주었다. 정아 씨 없이도 혼자서 수련하러 온 그가 멋있었다.
1월 19일 금요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수련을 다 해보자 결심하고 아침 10시 수련에 도전했다. 아침 시간의 수련 분위기는 저녁과는 다른 에너지가 채워진다. 연령대가 더 다양하고, 활기찬 에너지 역시 스펙트럼이 넓다.
부지런히 수련을 마치고 오픈 준비를 먼저 해둔 뒤 제시간에 식사를 하고 형진에게 오픈을 맡기고 1시간 늦은 출근을 했다. 정인 씨가 늘 앉던 자리에 앉아 나를 맞이해 주었다. 이직을 앞두고 잠깐 공백이 생긴 그는 제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나와 형진은 여행 대신 일상을 더 이상적으로 꾸며보는 게 어떻겠냐 말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러기엔 그는 아직 너무 젊었다. 더 즐기는 게 맞다.
제주에서 가보고 싶었던 요가원을 찾아 수련도 할 생각이라는 그와 함께 나는 또 오랜 시간 앉아서 요가 얘기를 나눴다. 우리의 주된 목표는 멋지고 화려한 아사나 말고, 차투랑가나 부장가아사나, 다운독 같은 모든 자세의 연결인 기본적이고 핵심인 아사나들의 정렬을 기필코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결이 맞는 사람들이 내 곁에 오래오래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화려함보다는 담백함을 좋아하는 사람들.
저녁시간에는 진아 씨와 긴 미팅을 했다. 기대되는 그의 워크숍. 빨리 2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늦은 저녁에는 성혁 씨와 정아 씨가 퇴근 후 맥주를 마시러 오셨다. 맥파이 포터를 좋아하시는 분들, 입고 소식에 달려오신 것 같았다. 마감시간이 되었는 줄도 모르고 우리는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나의 도반 정아 씨가 자유롭고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꼭.
1월 20일 토요일
목과 허리의 통증이 가볍지만은 않다. 행동하는 데 자꾸 신경 쓰이는 수준이 되어서 기분도 다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아침 10시 수련을 갈지 말지 고민했지만 전날 밤 정아 씨와 성혁 씨에게 함께 하자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또 꾸역꾸역 집을 나섰다.
수련을 마치고 다행히 제시간에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대신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촉박했지만 끼니를 거르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먹었다. (칭찬해, 나 자신아) 오늘은 요가 도반들과 필사 모임이 있기도 해서 마음이 급했다. 급할수록 천천히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짜증이 슬금슬금 올라와 나를 먹어 치운다.
빅테이블에는 나의 도반들이 있었고, 윙 체어에는 현식 씨가, 소파에는 정인 씨와 정인 씨의 친구가, 창가 테이블에는 정아 씨와 성혁 씨와 뽀미가 있었다. 모두가 모두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생활관에 가득했다.
필사 모임이 끝나고 빅테이블에 형진이 합석해 2월 생활요가를 위한 미팅을 했다. 2월의 주제는 “사랑”인데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는 그의 의견에 각자 말을 보탰다.
저녁시간이 되자 사람들의 온기로 가득 찼던 생활관이 다시 조용해졌다. 이렇게 마감을 하나 싶었지만, 마감 1시간을 남겨두고 새로운 손님들과 종종 오셨던 손님들로 다시 생활관에 온기가 채워졌다.
역시, 나의 예측은 늘 빗나가는구나.
소소를 유독 예뻐하시는 손님에게 반려동물이 있으시냐 물었다. 개와 고양이 둘 다 좋아하는데 아직 없다고 하신 분에게 나는 말했다.
“반려동물이 있기 전과 후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거예요. 그게 100% 좋은 쪽으로 많은 아니겠지만.”
환상의 나라로 그들을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기대보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먼저 알려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