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이가 죽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의 일이다. 보호소에서 똥에 절여진 털로 우리 부부를 향해 꼬리를 흔들며 해맑게 웃고 있던 녀석을 품에 안고 나왔다. 씻기고 먹이고 병원에 데려가고 용산 가족들과 추석 명절을 함께 보냈다. 앞으로 계속 그렇게 우리와 함께 명절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우리의 계획따위는 알 리 없는 보통이는 생각보다 빨리 우리 곁을 떠났다. 단 10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유일하게 잘했다고 생각한 건 보통이를 보호소에서 데리고 나온 것. 그것 하나뿐 이었다. 그 외 모든 순간들은 후회로 남았다. 주변에서는 보통이의 생 끝에서 나와 형진을 만난 게 행운이라고, 사랑을 느끼고 가서 보통이도 좋은 기억만 갖고 갔을거라 했지만 당시 나에게는 그런 말이 와닿지도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가 떠나고 난 뒤 매 순간을 복기하며 자책하고 후회하고 모든 화살을 나에게 계속 쏘아대는 것 뿐이었다.
‘그때 옥상에서 찬 물로 씻기는 게 아니었는데.‘
’제대로 말리지도 않고 병원을 데려가는 게 아니었는데.‘
’큰 병원에서 검사를 꼼꼼하게 했었어야 했는데.‘
’그때 보통이 앞에서 치킨을 먹어서 흥분해서 틱 증상이 높아졌던걸까?'
’그때 산책을 그렇게 오래 하는 게 아니었는데.‘
’추석에 무리해서 가족들을 만나러 서울로 함께 가는 게 아니었는데.‘
’남산을 산책했던 게 무리였을까?‘
’1시간 차를 탔던 게 힘들었던 걸까?‘
’더 많이 안아줬어야 했는데.‘
’더 좋은 개껌을 먹였어야 했는데.‘
’우리 집이 4층이라 계단 오르는 게 힘들었을까?‘
’입원시킬 때 인사를 해줬어야 했는데.‘
’헤어질 때 안아줬어야 했는데.‘
가까운 이의 반려견이 더 편하게 숨쉬고 더 빨리 뛸 수 있는 세상으로 먼저 떠났다.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준비했다고 받아들여지는 게 이별이라면 우리 모두가 슬픔에 잠겨 허우적 거릴 일은 없겠지.
오랫동안 동경하며 봐왔던 SNS 셀럽멍 - 장군이 - 의 안타까운 소식도 접했다. 보호자와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던 리트리버계의 셀럽, 장군이는 지구별에서 12년을 살았다. 그는 나보다 더 많은 곳을 누나와 함께 여행했다. 누구보다 아낌없이 모든 걸 다 내어줬을 장군이 누나도 장군이를 보내며 후회와 자책이 섞인 글을 써내려갔다. 그의 글을 읽으며 내 곁에서 숨 쉬고 있는 털가족들을 쓰다듬으며 사랑한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숨 쉬고 있을 나의 투명 강아지 보통이에게도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마음 속으로 속삭였다.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애도 방식이 있다.
언젠가부터 나는 누군가를 위로해야 할 때 ’힘내‘ 혹은 ’기운 내‘ 라는 말은 하지 않게 되었다. 힘이 나지 않는 걸 알기 때문에. 기운을 낼 수 없기 때문에. 상대의 입 밖으로 나온 그 말은 내 마음으로 들어오기 전에 공중으로 흩어지기 때문에.
충분히 슬퍼하고, 마음껏 그리워했으면 좋겠다. 자책도 하고, 순간을 되감기 하듯 돌려가며 곱씹었으면 좋겠다. 스스로에게 시간을 너그러이 썼으면 좋겠다. 그리고 조금씩 괜찮아지는 마음을 알아차렸을 때, 울음보다 웃음을 선택하고 이별한 존재를 떠올리며 후회로 남은 기억들 대신 그와 좋았던 일들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날을 만끽하길 바란다.
꼭 그런 날은 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