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열 일곱번째 | 117th
온통 푸르렀던 한 주, 우리 생활의 관점을 전합니다. |
|
|
20240415 생활북클럽 416 10주기 2/2.
<제가 참가 생존자인가요> 김초롱 지음
416의 10주기를 맞아 진행한 두 번째 북클럽이었다. 416 재단의 지원으로 진행이 되어 신청만 하면 무료로 참석을 할 수 있다. 이럴 때면 언제나 no-show가 발생한다. 총 아홉 중에 넷이 당일 참석을 하지 못했다. 그나마 한 분만 "제가 감기에 걸려서..."라는 연락을 줬다.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시작이 됐다.
416에 대한 자리였지만 참사라는 공통점, 그리고 안타깝게도 416의 세대가 겪은 또 하나의 반복된 참사였다는 공통점,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존재한 사건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1029에 대한 책을 골랐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참사 생존자 범주에 있었던 김초롱이라는 분이 블로그에 그 심경을 올려 화제가 됐고, 이어져 오마이뉴스에 연재까지 이어진 것을 알지 못했다. 이미 책을 한 권 냈고, 시나리오를 써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그저 당시의 상황 그리고 이후의 상황을 가지런히 나열만 한 그런 글은 아니었다. 괜찮은 구성이 있었다. 1029 당일에 대한 묘사를 시작으로 이후의 트라우마를 겪어내는 경험과 그 이전 다른 경험이 엇갈리게 서술되며 사회 속 개인이라는 구조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방향을 담은 글이었다. 사회에서 화제가 된 사건의 당사자 혹은 주변인이 쓴 책을 종종 봤는데, 그중 손에 꼽을 만한 괜찮은 책이었다.
우리는 참사를 겪어나 겪어내는 주변의 누군가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적다. 그래서 막상 당사자가 되거나 주변에 당사자가 생겼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줘야 할지 생각해보지 않는다. 가능성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책의 제목처럼 자신이 어떤 영향을 받았고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지 조차 모른 채 그냥 살아 내느라 버티느라 힘을 쓰는지 조차도 모를 수 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읽어 보는 것은 도움이 된다. 북클럽에 모인 우리는 '나는 어떻게 위로를 받으면 좋을까?, 만약 주변에 이런 당사자가 생긴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대부분 '곁에 있어주기'를 꼽았다. 혼자라는 고독감이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듯싶다. 점점 대면보다 비대면을 선호하는, 사실 선호라기보다는 대면에 낯선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에서 이 '곁에 있어주기'가 가능할까 싶긴 했다. 직접 만나 대화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 먼저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이 책을 모두 읽고 대화까지 한 후, 책 속에 나오는 해외에서 제작된 1029 다큐 《 크러쉬(CRUSH) 》에 대해서 잊고 있었던 것을 알았다. 국내에서는 볼 수 없다는 그 다큐. 저자인 김초롱 씨는 그 다큐에 출연을 했고, 그 다큐 팀과의 에피소드도 담으며 미디어에 대한 생각을 언급하기도 했다. 얼마 전 그 다큐를 찾아봤다. '어떻게 사람이 골목에 많이 모였다고 서서 죽을 수 있지?' 이미 발생한 일이지만 머릿속에서 상상할 수는 없었다. 영상을 찾아보지 않아 더 가늠하기 힘들었던 듯싶다. 다큐를 보고야 가늠을 할 수 있었다. 올해 10월 29일에는 이 다큐를 함께보고 대화를 나누면 좋을 듯싶었다. 다시 떠올린다는 것이 먹먹하지만 그 속에서 당당한 당사자를 만난다는 것은 개인과 사회에 큰 힘이 되는 듯하다. 김초롱의 글에서 그 당당함을 느꼈다. 꼭 일독을 권하게 됐다. |
|
|
20240417 생활글쓰기클럽 2/4
주제: 계절과 사람
처음 글감의 주제는 <계절>이었다. 한 단어의 주제로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생각하는 건 아직 무리다. 주제를 던진 수빈 씨에게 부탁을 해 한 가지 키워드를 더 달라고 한 것이 <계절 + 사람>이었다. 어떤 질문이 있는 글감이 아니라 여전히 우왕좌왕했다. 일단 계절과 사람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싶었다. '어떤 계절 같은 사람?' 그러다 얼마 전에 아버지와 함께 떠났던 치앙마이에서의 대화가 생각났다. 대화랄 것도 없는 것이었는데 아버지의 단답형 답을 받고 나의 답을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었었다. "나는 어떤 계절을 좋아하지?" 그에 대한 답을 담은 글을 썼다.
격주로 진행이 되지만 한 주간 초고를 쓰고 공유하고, 만나기 전에 퇴고 한 글을 또다시 공유하고 만난다. 퇴고에 익숙하지 않은 멤버는 초고 이후에 고쳐 쓰려니 차라리 다시 쓰는 게 낫겠다고 했다. 가사 형식에만 익숙한 뮤지션이라 아직 산문에 적응 중이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만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직면하지 않고 에두르기만 하는 경우도 있고, 이미 그 사안에 깊숙이 들어갔다가 나와 여유롭게 관조하 듯 풀어내기도 한다. 확실한 건 혼자 읽는 글이 아닌 누군가에게 전달하려는 글을 쓰면 쓸수록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 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더라? 이 것까지 드러내도 괜찮은 걸까? 이 이야기를 왜 하고 있는 거지? 같은 물음에 답을 해나가면서 글을 쓴다. 특히 이런 서로의 피드백이 있는 글쓰기클럽은 큰 도움이 된다. 대부분 내 글에 아무런 피드백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조금 앞으로 배치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이 부분은 반복되는 것 같아 마지막에 한 번만 강조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등등. 서로의 피드백을 듣고 서로의 글을 읽으면서 조금씩 흐릿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정면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올 해는 꼭 이 글쓰기클럽을 계속 이어가야겠다.
다음 글감은 '내가 아는 (가장 큰) 슬픔'이다. 어떤 슬픔에 대해 써야 할까 여전히 고민 중이다. 요즘 [월간독서] 5월의 선정 도서인 <정욕>을 읽고 있는데 아예 입 밖으로 꺼내기 조차 힘든,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정체성에 대해서 읽다 보니 그동안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슬픔은 별 것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생각 때문에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아무튼, 다음 글도 기대 중이다. |
|
|
김초롱은 이태원 참사 생존자다. 그가 참사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는 수많은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며 누적 조회수 50만 회를 훌쩍 넘겼고, 중앙 일간지와 인터넷 매체에 연재되어 그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책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는 김초롱이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세상을 향해 내는 목소리다. 지난 연재 내용을 기반으로 하되 정식 단행본 출간을 위해 완전히 새로 썼다. 책에는 참사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이 본 것들, 사회적 참사를 맞닥뜨린 한 개인에게 찾아온 트라우마의 형태와 그것을 극복하려 애쓴 흔적들이 담겨 있다.
김초롱은 자신의 고통을 ‘자원화’하여 쓴 이 책으로 사회적 참사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증언한다. 또 참사 이후 이어진 ‘놀러 가서 죽은 것’이라는 비난의 목소리, ‘근본 없는 귀신 축제’라는 낙인 찍기 등 2차 가해 등을 온몸으로 목격하며 개인의 고통에 사회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인간성을 잃지 않는 사회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이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 사회적 기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
|
|
생활문.zip
우리의 글쓰기 생활 (feat. 생활글쓰기클럽 2기)
|
|
|
by 형진
항상 변하지 않는 계절.
여든을 바라보는 아버지와 무더운 나라를 다녀왔다. 4박 6일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생각보다 무더워 피로가 쉽게 쌓여갔다. “일 년 내내 여름인 나라에서 살면 어떨 것 같아?” 아버지와 늦은 저녁 동남아 특유의 분위기를 풍기는 야시장에서 식사를 핑계삼아 술을 마시며 물었다. “ 그냥 살겠지 “ 아버지의 생각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어떨까? 계속 한 계절인 지역에서 산다면, 좋을까? 항상 봄인 나라, 여름인 나라, 가을인 나라, 겨울인 나라 중에 나는 어디에서 만족할 수 있을까? 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하지? 일 년 내내 그 곳에서 산다면 어떨까? 근데 어떤 계절을 좋아하더라 거기부터 막혀 더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여름나라에서 한 해를 살았던 때가 있었다. 적도가 관통하는 나라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 칸샤샤라는 도시에서 한 해를 보냈다. 평균기온이 30도가 넘는 킨샤샤에서의 생활은 꽤나 지루했다. 현란한 컬러의 페인트로 덧칠한 쇠락한 도시,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방송에서 보는 하루 종일 물을 길어 걸어 다니는 긴 행렬을 볼 수 있는 그런 도시. 일 년 내내 따스했고, 참을 수 없이 무더울 때면 스콜이라는 소나기가 그 더위를 식혀줬지만 처음 낯선 호기심이 지나간 후부터는 지루했다. 커다란 벽으로 둘러있고, 입구에는 경비가 24시간 지키는 영화에서 보던 부유한 동네에서 지냈다. 아침에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걷고 출근을 했다. (개인의 의지는 아닌 동거인인 회사 대표의 루틴이었다.) 출근하며 벨기에 빵집에서 크루아상과 뺑오쇼꼴라를 사서 사무실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크게 분주한 일은 없었다. 플라스틱 공장의 관리직이었는데, 그저 외국인(백인/동양인)에게 대우받고 싶어 하는 VIP손님을 응대하고 그들이 가져온 한 뭉치의 돈을 세서 금고에 넣고, 기록을 했다. 그리고 하루를 마감할 때 그 돈과 데이터가 맞는지 확인하고 달러로 받은 돈만 묶어 계약된 사설은행이 전달하면 끝이었다. 낯선 동네가 익숙해지고 그 익숙해지는 것에 비례해 회사 대표는 가족이 있는 싱가포르에서 체류하는 기간이 길어졌다. 그 부유한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평일에는 공장의 관리직인 한국인 공장장과 조선족 직원들과 저녁마다 술을 마셨다. 지루함에 몸부림치며 일없는 주말에는 혼자 차를 몰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하루 한 주 한 달 그리고 일 년을 살았다. 희로애락이 없다는 걸 알았다. 기쁠 일도 화날 일도 슬플 일도 즐거울 일도 없는 일직선의 생활을 했다. 어쩌면 계절과 생활의 만족은 상관관계가 전혀 없을지 모른다. 가장 좋아하는 날씨에 우울할 수도, 가장 싫어하는 날씨에 행복할 수도 있지 않던가.
주로 싱가포르에서 생활하던 회사의 대표는 도올 김용옥의 EBS '노자와 21세기'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인터넷도 잘 되지 않는 환경이라 해외(싱가포르 혹은 한국)에 다녀올 때면 큰 외장디스크에 영화/드라마/다큐 등을 다운로드 받아 가지고 있는데 특히 ‘노자와 21세기’ 강의는 항상 집에 있었다. 퇴근해서 집에 있을 때면 이 프로그램을 배경 삼아 하루를 마감했었다. 대부분 흔적 없이 사라진 강의의 내용이지만 지금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항상성'. 항상 변하지 않는다는 이 말의 본 뜻에 대한 강의였다. ‘항상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계속 변화한다는 뜻과 같다. 변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려면 계속 변하는 자연과 세상의 환경에 맞게 끊임없이 변화해야만 가능하다.’는 그의 설명에 묘하게 끌렸다. 그 때문일까, 변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계속 스스로 변화하는 사람에게 끌리는 것이, 하나의 관점을 고정불변으로 여기는 종교인보다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예술가에게 끌리는 것이.
“어떤 계절이 가장 좋아?” 얼마 전 산책을 하면서 파트너인 정민이 물었다. 분명 예전이라면 ‘겨울’이라고 답했을 텐데 지금은 쉽게 내뱉을 수 없었다. 어릴 때 어떤 계절이 가장 좋냐고 물으면 ‘겨울’이라고 답을 했다. 새하얀 눈이 좋은 것도, 차가운 공기가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 추우면 추울수록, 혹독하면 혹독할수록 왠지 온기를 찾아 몸이 반응하듯 사람과 사람의 마음의 거리가 좀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뿐이었다. 그 때부터 그냥 ‘겨울’이라고 답을 했다. 더 이상 그렇게 답할 수 없었다. 은은한 노란 불빛이 퍼지는 공간에 모여 화기애애하게 웃고 즐기는 사람들부터 세찬 바람만 불어대는 텅 빈 길거리까지, 겨울 이미지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하나의 이미지로 하나의 계절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봄이면 여름을, 여름이면 가을을, 가을이면 겨울을 그리고 겨울이면 봄을 기다린다.
어쩌면 ‘항상성’이란 뜻을 다르게 인식했던 그 더운 나라 때부터였을지 모른다. '넌 어느 계절이 좋아?'라는 질문에 더 이상 '겨울'이라고 답할 수 없었을 때가. 하나의 계절 속에서 살아가면 즐거울까? 더 이상 변하지 않는 고정된 세계에 살면 평온할 까? 어느 시절, 어느 상태에 멈춰 있는 듯 한결같은 사람과 함께 생활하면 행복할까? 아버지와 피로에 쌓인 채 무더운 나라에서 돌아오며 어쩌면 여름과 겨울을 오가는 계속 변하는 계절의 나라에서 계속 변하며 사는 것이 복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는 ‘어느 계절이 좋아?’라는 물음에 ‘변하는 계절’이라고 답할 듯 싶다.
|
|
|
꽃과 사람들
by 정민
봄의 꽃들을 좋아한다. 꽃을 다루는 직업을 갖고 있어 질릴법도 한데,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계절을 알려주는 꽃들이 여전히 좋다. 좋아하는 꽃들은 마음껏 편애하고 덜 좋아하는 꽃에게는 시선을 덜 주고 있는 나를 보면 어쩜 이리도 인간에게 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까 싶다. 나라는 인간은 참으로 훤히 들여다 보인다.
채도가 낮은 색들로 채워진 공원에 반짝거리는 노란 전구에 불이 켜진 듯 개나리와 산수유가 봄 꽃들의 시작을 알리기 시작하면 이제는 촌스러운 꽃이 되어버린 개나리를 향해 대충 웃어준 뒤 산수유 나무를 향해 달려간다. 고개를 뒤로 젖혀가며 산수유 특유의 불꽃놀이같은 꽃잎들을 보며 냄새도 킁킁 맡아보고, 핸드폰 카메라 렌즈를 옷 소매로 쓱쓱 닦아 사진을 찍기도 한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공원의 꽃들을 보지 않았다. 그건 아줌마들의 고유 영역이라고 생각했고, 우리 엄마를 비롯해 왜 그렇게 아줌마들이 꽃 사진을 찍어 서로 서로 공유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으면서?) 지금은 선명한 색의 개나리와 산수유를 보며 엄마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내 엄마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나도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전송한다. 계절이 돌고 돌아 다시 찾아오는 것처럼 마음도 결국엔 돌고 돌아 필요한 이에게 가 닿는다.
귀엽고 쨍한 노랑을 스치고 고개를 좀 더 위로 올려다 보면 비슷한 시기에 커다랗고 우아한 백색의 목련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목련은 백색과 진한 자줏빛을 띄는 자목련, 이렇게 두 종류가 있는데, 우아한 건 백색의 흔한 목련이고 고혹적인건 아무래도 자목련이다. 봄의 꽃들 중에서 우아함을 담당하는 건 어쩌면 목련일지도 모른다. 목련을 보면 2년 전 작업현장에서 피지 않는 목련을 피우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게 떠오른다. 디렉터부터 스태프들까지 발을 동동 구르며 온도와 습도를 조절했지만, 결국 자연 앞에서 기계와 인간의 무능함을 다시 느꼈던 날이었다. (기특한 목련들이 촬영 막바지에 팍! 하고 펴줘서 현장은 다행히 잘 마무리 되었다) 피는 모습은 우아한데, 지는 목련을 보고 있으면 추하게 늙어버린 어른을 보는 것 같다. 떨어지는 꽃잎도, 바닥에 눌어붙은 꽃잎도 모두 별로다.
목련이 서글프고 지저분하게 잎들을 떨구면 이제 매화와 벚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꽃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장면들. 중년의 아저씨며 젊은 청년이며 꽃 사진은 절대 찍을 것 같지 않게 생긴 사람들 마저도 모두 핸드폰을 두 손에 꼭 쥐고 꽃 사진을 찍기 바쁘다. 나는 이 장면을 정말 좋아한다. 자신의 핸드폰 카메라로 보이는 화면 속 꽃들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다. 유독 봄에는 사람들의 웃음을 많이 본다. 서로 찍어주기 바쁜 사람들을 향해 ”제가 찍어드릴까요?“ 를 자주 외치게 되는 계절이다. 완벽한 타인을 향한 친절을 베풀기도, 받기에도 너무나 좋은 계절인 것이다.
동글 동글, 주렁 주렁 뽀얗고 화사하게 핀 매화와 벚꽃들이 바람에 꽃비를 만들기 시작하면 이제 라일락이 향기로 먼저 인사를 한다. 포도송이같은 보라색 라일락과 이유는 모르겠지만 왜인지 팅커벨이 생각나는 하얀색 라일락이 만개하면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향기는 너무 달콤해서 또 다시 킁킁거리며 “와 라일락 너무 좋아!”를 외친다.
아주 어렸을 때, 나는 주택가가 아닌 상가 밀집 지역에 살았었다. 상가들만 있다고 해도 거기에도 사람들은 살았으니 가족들이 있었고 또래 친구들도 있었다. 그 중 한 친구의 집은 건물 꼭대기, 옥탑방이었다. 지금은 옥탑방의 개념을 알고, 표현하는 단어가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 친구들과 가게 골목을 뛰어다니며 놀던 시절엔 그런 말을 몰랐다. 친구의 옥탑방에는 아주 커다란 라일락 나무가 있었다. 4층짜리 건물 꼭대기에 어째서 그렇게 크고 아름다운 라일락 나무가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낭만적이다! 라일락이 피던 계절에 친구들과 함께 그 집에 모여 바닥에 누워서 라일락 향기를 맡았다. 그게 떠올랐다. 그래서 내가 라일락을 보면 그렇게 천진난만하게 웃게 되는 거라고.
내게는 이토록 많은 봄 꽃의 기억들이 가득해 자주 웃게 되는데 내 곁의 사람들도 봄의 꽃들을 보며 사랑이 넘쳤으면 좋겠다.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떨어지는 꽃잎이 지저분해도, 늙어가는 우리는 추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더 좋아하고 싶고,
내가 덜 좋아하는 사람들은 조금 더 품을 수 있게 더 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봄에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듯, 나도 당신도 잘 자랐으면 좋겠다. |
|
|
생활커뮤니티
좋은 대화와 다양한 관계를 위한 우리의 커뮤니티 |
|
|
생활북클럽 :
[월간독서 GUEST.] 202405
5월의 도서 : 《 정욕(正欲) : 바른 욕망》, 아사이 료 지음
-
《정욕》에는 소수자들이 등장한다. ‘다양성’이라는 한없이 근사해 보이는 단어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그런 소수자들. 상상하지도 못하고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소수자들에게 우리는 둔감하고 무례할 수밖에 없다.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정욕》에서, 아사이 료는 ‘레이와(令和)’라는 새로운 시대를 겨냥하며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담아 질문을 던진다. 그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그런 질문이다.
‘내일, 죽고 싶지 않아’라고 희망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도대체 ‘바른 욕망’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하는가?
《정욕》이 성적 욕망을 뜻하는 ‘정욕(情慾)’이나, 마음속의 욕구를 다룬 ‘정욕(情欲)’이 아닌 ‘바른 욕망’이란 뜻의 ‘正欲’이란 한자를 사용하고 있는 건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일시: 2024년 5월 2일 (목) 오전 10시
비용: 무료
*도서 구매시 10%할인
GEUST 모집: 5명
|
|
|
생활근육 : 함께 만드는 생활습관 프로젝트
#그림근육키우기 5월(2024)
-
따뜻한 봄이 왔네요.
이번 5월 함께 그림 근육 키울 동료를 구합니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
어렸을 적 자유롭게 낙서를 하던 마음으로
우리 순수하고 즐겁게 같이 그려봐요.
✔️5월 6일 - 5월 31일 4주
✔️장비 : 마음껏
✔️게시공간 : 네이버 앱 ’밴드‘
두 번의 오프라인 만남이 있습니다.
🟠4월 28일(일) 오후 1시(약 30분 소요)
그림 근육 키우기 OT
서로 인사도 나누고 4주 동안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려드립니다.
🟠6월 2일(일) 오후 1시(약 1시간 반 소요)
마지막 다 함께 마을상점생활관에 모여 그림을 그리며 4주 미션을 회고하는 시간.
재료는 각자 원하는 것을 마음껏 가져오시면 돼요.
*거리가 먼 분들은 ’밴드‘만 함께 참여하며 미션을
인증하셔도 됩니다.
|
|
|
- 의정부까지 다녀오게 했던 경기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생활문화플랫폼 지원사업에 다행히도 선정이 되었습니다. 아직 공식 연락까지 온 것은 아닌데 홈페이지에 떴더라고요. 예산이 많이 줄어서인지 이번에는 여럿 사업을 묶어서 공모를 하기에 다른 비슷한 사업의 선정 팀도 함께 봤는데 안산에 몇 팀이 있더라고요. [13월], [예술과 환경] 이렇게 두 팀이 있던데, 어떤 분들인지 궁금하더라고요. 그냥 그렇다고요 : )
- 아무튼, 저희는 [ SMALL TALK IN ANSAN ]이란 주제로 다양한 이 지역에 활동하는 분을 만나보려고 해요. 공간운영자/ 운동선수/ 뮤지션/ 작가/ 공무원/ 난민 및 이주민 등등 북토크처럼 대규모가 아닌 소규모로 모여서 잡담하듯 생활을 공유하고 관계를 만들어 보는 자리로 마련해보려고 합니다. 아직 안산에 알지 못하는 많은 분들이 있어서 추천해주고 싶은 혹은 이 분 궁금한데 떠오르는 분이 있으시면 아래 <우리에게 몰래 전해주세요>로 남겨주세요. 좋은 만남의 자리를 추진해 볼게요.
- 5월의 생활체력:요가를 준비 중입니다. 아직 안산에서는 한 번도 진행된 적 없는, 이론 수업과 요가 수업을 함께 해야하는 이 워크숍을 들으려면 서울까지 오가야 했던 자리를 특별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 미리 언급한 [생활장: 대청소하시장]을 준비합니다. 곧 host인 예지작가님과 첫 아이디어 회의를 하기로 했는데요. 이번에는 어떤 재미난 것을 할 수 있을까 고민중입니다. 아무래도 일정은 5월 11일 토요일이 될 것 같아요. 일단 시간 비워두시라고요. : )
|
|
|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슬쩍 담아주세요. : )
하준이의 손목의 타투가 뭐냐는 질문에 대해
'참 잘했어요' 도장을 직접 찍은거라는 대답이
참 좋습니다.
요즘 정민님의 글이 점점 더 따듯해지는 느낌이에요.
생활관 방문이 뜸해진 요즘이지만
생활관 레터를 통해 소식 전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24. 4. 15. 오전 12:16 제출됨 |
|
|
↳re: 생활관 방문이 뜸해진 나의 다정한 이웃, 늘 만나다가 못만나니 무척 안부가 궁금해져요.
자주 하는 이야기이지만 따뜻한 사람들이 제 곁에 있어서 저도 함께 따뜻한 사람이 되어가나봐요. 덕분입니다 :)
쉼을 충분히 하시다가 짬 나면 우리 생활관에서 만나요! |
|
|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슬쩍 담아주세요. : )
아앗, 비도 오는데 의정부까지 먼 길을 다녀오셔야하는군요! 멋지게 인터뷰 하셔서 좋은 프로그램으로 생활관을 꽉 채워주시겠지요. 멀리서나마 기운 불어드리겠습니다. 이얍!!
24. 4. 15. 오전 8:47 제출됨 |
|
|
↳re: 덕분에 기운 받아 선정이 되었네요. : ) 얍! 2024년에 기억남을 만한 좋은 자리 마련해볼게요. |
|
|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슬쩍 담아주세요. : )
생활관이 시작된 해, 처음 방문한 그 날 끄적였던 메모를 잊을 수가 없는데! 벌써 6년째 운영이라뇨?!? 시간 참 빠른데, 그럼 난 6년동안 뭘했지라는 자괴감이 뽈록 튀어나왔어요.
근데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생활관은 존재 자체로 충분하지, 대단하지 멋져! 했으면서 왜 나 자신한테는 그렇게 못해주지?
그래서 나도 내 존재자체를 축하해주자 나라도 축하해줘야지! 하고 이 이야기를 남깁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지만 금방 맑아지면서 상쾌해진 공기처럼 제 마음도 쉽게 맑아지네요!
오늘의 생활관도 맑음이기를 바랍니다
24. 4. 15. 오전 11:33 제출됨 |
|
|
↳re: 저도 '나를' 그리고 내가 운영하는 이 '공간 자체'를 멋지다고 엄지 척해주지는 못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6년동안 뭘 했지, 여전히 부족해 보이고, 더 채찍질 해야 할 것만 같고 뭐 그러네요. 곧 6주년인데 그 때는 잠시 엄지 척! 해주고 조금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덕분에 맑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고마워요. |
|
|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슬쩍 담아주세요. : )
두분이 생활관에 6년동안 무엇을 남기었나라는 이야기가 부정적으로 흘러갔다는 글에 짧게나마 제가 생활관으로 받고 얻은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어 남깁니다. 안산이 꽤나 척박한 도시인데,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유일한 공간같아요. 거기에서 친구도 사귀고,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무언가를 나눌수있는것만으로도 한 개인에게는 꽤나 내 지역과 내 시간에 대해 충족감?이 생겨요. 그저 시간이 날때 내가 안전하면서도 생활관에 앉아있으면 풍경들이 익숙하고 생경해요. 소소와 형진,정민,그리고 생활관을 내 집처럼 들리는 단골들의 모습들, 새로 구경 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앉아서 바라보면 꽤나 멋진 하루를 보낸 일부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것들이 눈에 보이지는 않는 것들이지만 꽤나 멋진 역할과 공간을 운영중이라 감사하다고 말해드리고 싶어서 남깁니다.!!
24. 4. 16. 오전 8:58제출됨 |
|
|
↳re: 고마워요. 당근과 채찍을 잘 오가며 살아야 하는데 점점 당근보다는 채찍에 손이 더 많이 가는 것 같아요. 뭘 더해야 하는 걸까, 뭐가 부족한 걸까 그런데만 신경이 가고요. 이럴 때 이렇게 말을 건네주는 이웃이 있어서 잠깐 당근을 맛봅니다. '꽤나 멋진 하루'에 생활관이 함께 하길 바라면서 당근도 가끔은 채찍질도 하면서 잘 생활해 볼게요. 멋진 이야기를 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요. : ) |
|
|
저희에게 전할 말이 있으신가요? 직접 말씀해주셔도 좋지만 혹시 부끄러우시면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