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글을 쓸까, 어떤 말을 할까 아이스크림(비비빅 흑임자맛을 추천합니다)을 세개째 먹으면서 고민 중이다. 세개나 먹으니 추워져서 써큘레이터를 끈건지, 글 좀 써보겠다고 소음을 차단하겠다고 끈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변이 조용해졌다. 소리라곤 세탁기에서 제때 꺼내어지지 못한 빨래가 다시 돌아가는 소리와 형진의 코고는 소리와 고양이들의 우다다다 소리 뿐.
조용한 것 같은데 고요하지 않은 이 상태가 불편하지 않다. 다만 불편한 건 요즘의 내 감정 상태.
요즘의 나는 대체로 느낌표나 마침표로 끝나는 말들보다는 물음표로 맺어지는 말들을 많이 던진다. 지난 레터에서의 일 못하는 서정민은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다. 확신보다는 불안감이나 상황 판단에 대한 불확실성이 하루 평균 감정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골라 필사모임을 진행하는 게 맞는지,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책-있어 보이는 책 혹은, 철학이나 고전-으로 선택하는 게 맞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이것 뿐 아니라 많은 것들을 '잘 모르겠어.' , '이게 맞는 것 같아? 나는 잘 모르겠어.' 라는 답으로 슬쩍 발을 뺀다. 선택에 확신이 없다는 뜻이다.
스스로 답답한 시간을 지나고 있어 아침 요가 클럽은 빠지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길지 않았지만 아주 옅게라도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잘 모르겠는 것들 속에서 하고 싶은 것(해야 하는 것)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것 1.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개정판> 로 필사하기 (멤버 모집 예정)
성인 둘이 한 집에서 살면서 생기는 모든 좋은 것들과 그렇지 못한 것들을 엮은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개정판>을 다시 시작하는 필사클럽 도서로 정했다. 쉬운 책이고 이미 읽을 사람들은 다 읽었고 결정적으로 필사를 하기에 '그럴듯한' 책은 아니기에 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역시나 답은 '내가 좋아하는 걸 하자' 쪽으로 기울었다.
하고 싶은 것 2. 모닝페이지 다시 쓰기 (멤버 모집 예정)
아티스트웨이를 읽으면서 다시 모닝페이지가 쓰고 싶어졌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무척 다를테니 지금의 나는 어떤 말들을 내뱉을 지 궁금해졌다. 어쩌면 같은 고민을 몇해동안 계속 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고 싶은 것 3. 치열하게 수련하기
새벽 5시에 일어나 시간을 보낸 뒤 6시가 되면 혼자서 나만의 시퀀스로 수련을 하고 싶다. 물러섰다가 다시 도전해도 좋으니 치열하게, 합리화 하지 않고 땀을 뚝뚝 흘리며 수련을 하고 싶다.
하고 싶은 것 4. 401호 정리.정돈 해놓기
몇일 전 꾸준히 생활관에 오는 이웃인 M에게 '잘 사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했다. 그는 주변을 정리 정돈하는 것을 제일 먼저 말했다. 그의 말이 전하는 세상 속에서 나는 전혀 잘 살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아무리 반려동물이 많다고 하지만 집이 잘 정돈되어 있지 않은 상태가 너무 오래 유지되고 있다. 나는 이 지점이 두려운 것이다.
하고 싶은 것 5. 꽃시장에서 꽃 잔뜩 사서 개인 작업하기
아, 직접 운전해서 꽃시장으로 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겠다.
금액 걱정 없이 예쁘고 튼튼한 꽃들을 사서 시간의 압박 없이 마음에 들 때까지 수정하고 촬영하고 두고두고 보고 싶다. 개인 작업이 너무 하고 싶다.
하고 싶은 것들을 나열해 보니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의 경계가 모호하다. 모호한 것을 경계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불확실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현실 감각을 읽게 되는 것 같다. 과연 2024년에는 불확실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