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4 Essay She said, 물리적 거리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out of sight, out of mind. 어느 언어로 먼저 생겨난 말일까? 그건 중요하지 않다. 한국에서도, 저 멀리 영어권 나라에서도 다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게 중요하니까.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단기 어학연수나 워킹홀리데이 같은 장기간 여행을 제외하고) 서울을 떠나 살아 본 적이 없다가 결혼 후 이 낯선 안산으로 오게 되었다. 서울, 그 외의 지역에서 내가 인생을 살아갈 거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도시를 몇 개 나열하고 하나를 고르는 객관식도 아니고, 그저 주관식 문제의 정답처럼 그냥 서울. 서울 외의 도시에서 생활을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까 내 세상은, 내 동네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서울이었다. 나의 부모님(아, 어서 빨리 모부님이라는 말이 입에 붙었으면 좋겠구먼), 언니네 가족, 남동생 모두 서울에 산다. 그들 역시 서울 밖에서 살아 본 적 없다. 그래서 나의 결혼 후 안산으로의 이주(?)는 가족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내가 서울을 떠나 안산에서 산다는 사실을 가족들이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실제로 지하철로 1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가족들과 만날 때마다 어디 먼 타국으로 간 것처럼 나를 대했다. 나는 그래서 그들에게 내가 서울을 떠났다는, 그래서 그들과 멀어졌다는 인상을 남기고 싶지 않아 결혼 초반에는 부지런히 서울로 놀러 다녔다. 아마도 ‘내가 비록 안산으로 갔지만, 난 여전히 서울 사람이야! 난 세련된 사람이라고!’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실제로 그랬다. 그게 뭐 대수라고. 가족들과 만나거나, 친구들을 만날 때에도 서울과 경기도 사이, 지하철 4호선 루트로만 따지자면 사당역 근처에서 만나도 될 일인데 어느 누구도 중간 지점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절대로 내가 사는 안산으로 오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나 역시 그들에게 “내가 사는 숲과 공원이 많고 인도가 넓은 안산으로 한 번 와보지 않을래?”라는 제안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 당시엔 그 제안 역시 나의 선택지에 아예 없었으니까. 회사를 그만두고 생활관을 운영하게 되면서 자영업자의 삶을 살면서 자유로운 삶을 꿈꿨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되었다. 가족과 지인들과 시간을 겨우 맞추더라도 언제나 내가 서울로 가는 쪽을 택하다 보니 하루짜리 휴무는 너무 짧게 흘렀고 노쇠한 내 몸은 피로함을 소화시키지 못해 언제나 만남 뒤에는 피곤함이 체기로 남았다. 피곤함이 쌓이면 일상 모든 곳곳에 피로감이라는 바늘이 나를 콕콕 찌른다. 바늘에 찔리면 움찔거리는 나를, 그런 내가 무너지기를 바라는 것 같다. 몇 번의 맹렬한 공세에 내 루틴이 무너지고, 다시 쌓고, 다시 패배하고, 다시 쌓아 올리는 과정을 겪고 나니 차라리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서울로 나가지 않는 쪽을 택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뒤로 가족과 지인들이 나를 만나러 안산으로 왔을까? 두 손으로 셀 수 있던 우리들의 만남 횟수는 손가락 두어 개만 움직여 횟수를 셀 수 있는 정도로 줄어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물리적 거리감을 좁히지 못했다. (노력이나 한 걸까?) 그런 상태로 각자의 생활에 서로가 없는 시간들이 익숙해졌고 그렇게 시간은 흐르기만 했다. 언제는 뭐 시간이 멈춰 누군가를 기다려 줬던 적이나 있었던가. 생활을 하는 곳이 멀어지니 아무리 SNS 가 서로의 소식을 업데이트해준다 한들,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커피를 홀짝이며 ‘아’ 다르고 ‘어’ 다른 그 언어의 미묘한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우리는 텍스트로 지키지도 못할, 어쩌면 마음에도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주워 담지도 못하는 말들을 계속해서 흘린다. “이번에는 꼭 보자.” “가까우면 진짜 매일 놀러 갔을 텐데.” “차만 있었으면 갔을 텐데.” “언제 한번 보자.” 우리는 어쩌면 그 ‘언제’ , 그 ‘이번’이라는 단어 대신 조금은 더 가깝고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15일 시간 괜찮아? 가게로 갈게. 밥 먹자.” “고터에서 볼까? 월, 수, 금요일 괜찮아. 시간 잡아봐.” 라는 질문을 서로가 서로에게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는 서로의 눈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또 수많은 이유와 핑계로 마음에서도 멀어지고 있다. He said, 욕망과 결핍 잘 하고 싶은데, 혹은 더 갖고 싶은데 같은 마음을 욕망이라고 한다면 결핍은 평균값에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로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이 결국 같은 말일지도 모르지만, 관계로 대입을 해본다면 '관계의 결핍'은 익숙하나 '관계의 욕망'은 괜히 낯설다. 결국 상대적인 부족함을 채우고 싶어 하는 부분이 맞닿아 있기에 비슷하면서도 다른 듯 느껴진다. 욕망과 결핍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마을상점생활관이란 곳이 무엇을 채우는 곳이어야 할까, 혹은 이곳을 오는 사람들은 무엇을 채우러 오는 걸까를 생각하면서 시작됐다. 잠정적인 결론으로는 욕망보다는 결핍을 채우는 곳이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방향이라기보다는 지금까지 이웃과 관계를 맺으며 느낀 것의 어렴풋한 반영이다. 대다수라고 말하기에는 정작 그들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들어본 것은 아니기에 오차가 꽤 있을 수도 있다. 다만, 생활관에 왔던 이유, 그러다 오지 않는 이유를 몇몇의 손님으로 가늠을 해봤다. 아직 취업 준비 중이라서, 아직 연애를 하지 않고 있어서, 혹은 현재의 생활이 조금은 혼란스러운 시기에 오는 손님을 본다. 그들이 와서 직접 얘기한 것은 아니고, SNS 덕분에 그들이 생활을 엿볼 수 있어 추측이 가능한 지점이었다. 결국 지금의 생활관은 무언가를 더 얻기 위하는 것보다 부족한 무언가를 채우러 오는 곳에 가까운 듯 느껴진다. 욕망보다는 결핍을 채우러 오는 공간. 어떠한 공간이나 커뮤니티를 보면 결핍보다는 욕망에 우선순위를 둔 곳을 좀 더 흔히 본다. 사실 공간이나 커뮤니티뿐 아니라 학원 같은 사교육부터 시작해서 돈의 욕망을 위한 콘텐츠, 좀 더 나은 커리어를 위한 커뮤니티 같은 곳 등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욕망이란 것은 어쩌면 결핍보다 채우고자 하는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것, 하지 않으면 남보다 뒤처지게 될 것 같은 것이 이 욕망을 채우러 돈과 시간을 소비하게 만든다. 상품으로 따지면 꽤 좋은 상품이다. 심지어 그 욕망이란 것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것이라 한 번이 아닌 두 번 세 번 어쩌면 한 사람을 평생 고객으로 유치할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광고계에서는 이 욕망을 잘 이용하는 법을 배우고 실행한다. 그럼 결핍을 채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결핍이란 단어는 쓸쓸하거나 외롭거나 같은 뭔가 혼자만의 감정으로 느껴진다. 혼자 가기 좋은 공간이란 곳은 그런 결핍을 채우는 공간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코로나19로 자영업자가 힘들다는 뉴스를 보고 생활관이 걱정돼 책 다섯 권과 지인에게 선물한 꽃다발을 구매하며 "힘내세요"라는 말을 남겼던 이웃 손님은 이곳 생활관이 혼자와도 어색하지 않는 편안한 곳이라는 말도 함께 전해줬다. 혼자 오래 머물러도 눈치 보이지 않는 곳. 처음 지인의 소개로 처음 생활관에 첫 발을 들였고, 그 후로 더러 혼자 와서 긴 시간 앉아 책을 읽거나 쉬다가 가던 분이었다. 우리는 그의 어떤 결핍 같은 것을 채워주었을까? 사실 아직 우리가 어떤 결핍을 채워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공간과 우리의 상품, 우리의 프로그램이 이웃의 어떤 결핍을 건드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럴 때면 잘 하고 싶지만 뭘 잘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욕망을 드러내고 채워주겠다고 하는 곳들은 많으니 우리는 결핍을 잘 채워주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욕망을 채울 자신은 없지만, 결핍은 잘 채워주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 생활책 고등학교 시절 꽤 섬세한 글을 쓰던 친구가 있었다. 학교에서 발행하는 책자에서 그 친구의 글을 보고 뭔가 섬세함이 느껴졌다. 기껏 고 2-3 때라고 섬세해 봤자겠지만 당시에는 꽤 인상 깊었다. 이후 그와는 친구가 됐다. 나의 절친이 그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무리 속에 함께 있던 친구였다. 책과 영화 그리고 음악을 좋아했다. 대화가 좀 통하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과 조금은 다른 속도로 살아갔다. 늦은 나이에 다시 대학을 들어갔고, 늦은 나이에 방송작가가 되겠다고 한 프로덕션에 작가로 취직을 했고, 늦은 나이에 공연기획을 하고 싶다고 일을 그만뒀다. 생각해 보면 뭐가 그리 늦은 나이라고 생각했었는지 모르겠다. 늦은 나이도 아니었는데- 아무튼, 그 친구는 홍대 인디신의 중심에 들어가 활발하게 일을 하다 그만두고 이번에는 서점을 연다고 했다. 음악전문서점이라고 했다. 염리동에 있던 그 서점 이름은 ‘초원 서점’이었다. 4년째 되던 어느 날 서점을 닫는다더니 그 시점에 마지막 연락을 하고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았다. 사실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런던 그 친구의 소식을 접한 건 출간 소식이었다. 여전히 섬세한 글이었다. ‘종이에 녹음한 믹스테잎' 그 다웠다. 여전히 자신만의 속도로 잘 살아나가고 있는 듯했다. “전하고자 했던 궁극적인 메시지도 그런 것이다. 좋은 음악, 타인의 삶, 그로 인해 돌아보는 나의 삶. 그래서 한편으로 이 책은 초원 서점 그 자체이기도 하다. “ p.4 언젠가 ‘마을상점생활관’으로 책을 쓴다면 ‘초원 서점 믹스테잎'같은 궁극적인 메시지를 그대로 담은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처럼 ‘이 책은 마을상점생활관 그 자체이다.’라고 자신 있게 서문을 쓰고 싶다. 그만큼 섬세하게 쓸 자신은 없지만, 여전히 참으로 부러운 친구다. 이 친구의 책을 소개할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하는 것이 참 다행이기도 하다. 오래오래 소개하고 싶은 책이다. <초원서점 믹스테잎>
: 종이에 녹음한 스물일곱 곡
(초사장 지음, 한즈미디어 펴냄, 2022) 화병꽂이 no.14 길을 걸을 때 곳곳에서 노랗고, 하얗고, 연분홍빛들의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어요. 생활관 앞 이동공원을 소소와 함께 산책할 때면 벚꽃 향기에 사람도 킁킁, 소소는 바닥에 친구들이 남긴 냄새에 킁킁거리는 시즌이죠. 지난주에는 산수유로 상큼함을 전했고 원래의 계획은 이번 주에는 벚꽃을 꽂을까 생각했었는데 꽃 시장에서 지금은 아주 보기 어려운, 제가 지난달부터 쓰고 싶었던 “검은색 열매”를 발견하고 모든 계획은 다시 제로셋이 되었다는 TMI 를 전합니다. 블루베리처럼 생긴 담쟁이와 꼭 같이 써보고 싶었던 그윽한 핑크. 봄의 무드와는 잘 어울리지 않지만, 그래도 고혹적인 느낌으로 같이 느껴주세요!! 생활[이슈]클럽 요즘 우리의 이슈들 이번에는 묘하게 연결된 듯 한 두 개의 기사를 소개합니다. 대한민국 남자들의 성욕을 위해서 홍등가를 합법화하든가, 미혼자들을 강제로 결혼시켜달라는 한 남자의 게시물을 다룬 기사와 1인 가구의 성별 연령별 고민에 대한 기사가 묘하게 연결되는 것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1인 생활의 걱정거리' 기사는 2019년 기사라 시차가 있긴하지만 뭐가 그리 달리졌을까 싶다.) 외로움과 경제로 나뉜 성별 걱정 순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남자는 여자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다는 걸까? 여자는 남자보다 덜 외롭다는 걸까? 남자들의 외로움은 결국 정서적인 것과 성적인 것이 혼합된 반영인 걸까?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이슈에 대해서. 1인가구의 가장 큰 고민, 남성은 ‘외로움’-여성은 ‘경제와 안전’ 지난 4일 국민생각함에 올라온 익명의 글 “정부 차원에서 결혼 안 한 남자나 여자를 강제로 결혼을 시키던가” 생활소식 마을상점생활관의 소식을 전합니다. 생활커뮤니티 4월 이번 주 금요일부터 4월의 생활커뮤니티 가 시작됩니다. 금요일 밤 9시 : 프라이데이나잇 필사클럽 토요일 오후 2시 : 생활[꽃]워크숍 일요일 아침 8시 : 선데이모닝 필사클럽 일요일 저녁 7시 : 생활북클럽 매주 만나는 클럽, 격주로 만나는 클럽을 준비했어요. 어떤 클럽은 차분하기도, 또 어떤 클럽은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여석이 조금 남아있어요 ; ) |
마을상점생활관의 두 호스트의 생활의 관점을 담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