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5 Essay He said, 인정의 범위 볕 좋은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이 글을 작성하는 주 수/목에는 비 소식이 있다. 저녁 소소와 산책을 하면서 짧게 즐기고 있는 벚꽃이지만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올해 봄 꽃놀이는 지나갈 듯싶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기간에는 생활관은 꽤 썰렁하다. 이런 날씨에는 인적 많은 번화가나 교외로 날씨를 즐기러 떠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매년 3-4월은 그렇게 보냈던 듯싶다. 그러다 이제 따스한 날씨에 적응이 된 5월이면 다시 분주해진다. 매년 그랬다. 그 기대로 지금의 여유를 찾으려 노력한다. 지긋지긋한 추위가 물러가고 볕 좋은 날씨에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오면 기분이 들뜬다. 그 들뜬 기분을 채워줄 뭐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것이 마땅찮을 때는 되레 기분이 다운된다. 기준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사실 수많은 날 중 하루일 뿐인 볕 좋은 하루는 괜히 즐거워야 할 것만 같다. 즐거워야 마땅해야 할 하루 같은데 딱히 그럴만한, 그 즐거움을 채워줄 무언가가 없다면 볕 좋지 않은 날보다 더욱 우울감이 찾아온다. 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런 적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같은 연말의 분위기에 괜히 배제된 듯한 기분이 들었을 때가 그랬다. 다들 특별하다는 하루, 자연스러운 특별함이 아닌 괜한 특별함을 찾아야 할 때가 그랬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특별함엔 반응 없이 살고 있다. ‘그냥 지금을 살자. 그냥 하루야’를 되뇌면서 하루하루를 살짝 기분 내는 정도로 만족하며 살아낸다. 4월의 생활북클럽의 주제는 ‘감정'이다. 정확히는 ‘우울'에 대한 이야기다. 이미 우울, 사회 불안장애를 고백한 김예지 작가가 호스트로 진행을 하는 북클럽이다. 볕 좋고 살랑거리는 바람과 꽃들이 만개하는 4월에 ‘우울’은 잘 맞지 않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괜한 특별함에 대한 거부감은 나뿐만은 아닌 듯 꽤 많은 인원이 이 북클럽에 참여했다. 얼마 전 그 첫 번째 자리가 있었다. 총 열 명이 한자리에 앉았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이 책을 선정한 이유와 어떤 대화를 기대하는지에 대한 호스트의 얘기로 시작했다. ‘용기내어'라는 단어가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다는 아니었지만 참여한 몇몇은 우울증 진단을 받기도 했고, 사회 불안장애를 겪고 있기도 했다. 그들은 ‘용기내어' 참여를 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 같은 것을 겪어 본 적은 없어 그 용기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지는 못한다. 우울하고 불안한 세상에 한 발을 내딛는 것이 얼마만큼의 용기가 필요한지 어림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용기 낸 한 분은 우울감이 들 때 산책하러 나가면 좋다는 글귀에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그럴 때 공원이나 길을 나가면 괜히 나만 우울한 듯 느껴지고 다른 사람은 즐거워 보인다고 했다. 그 상황은 더욱 (<우울할 때 뇌과학>책의 용어에 따르면) 하강 나선을 증폭시킨다고 했다. 그냥 집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참여한 많은 수는 그 방법을 택했다. 계속 영화나 드라마를 정주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어떤 대사가 마음에 꽂히기도 하고, 어떤 상황이 마음속에 남기도 했다고 했다. 그제야 다시 감정을 상승시킬 힘을 얻었다고 했다. 너무 긴 드라마를 시작조차 하지 않는 나에게는 새로운 관점이었다. 나는 그런 드라마로 위안을 받은 적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우울감이 들 때면 달리거나 산책을 나간다. 아마도 이런 성향이 아직 우울증을 감지하지 못하게 막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울과 불안에 대해 얘기를 나눴지만, 분위기는 꽤 즐거웠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믿을 수 없었다. 이전에 진행한 많은 북클럽 보다 오히려 활발한 분위기였다. 서로를 이해하는 분위기가 어떤 상대적인 기준을 다르게 만든 듯 보였다. 상대적인 기준.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이것이 자신을 하강 시기키도 하고 상승시키기도 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왜 그러는 건데?”라는 질문과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의 차이에 대한 얘기가 있었다. 전자는 이해의 태도고 후자는 배제의 태도 같다고 했다. 기왕이면 전자의 태도를 갖고 싶다. 어쩌면 어떤 ‘장애’라고 부르는 것이 다름이 아닌 배제로 취급하는지도 모른다. 꽤나 어려워 읽다 말다를 반복한 미셜푸코의 <광기의 역사>에서 그나마 이해한 ‘타자와 동일자'의 얘기 같았다.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타자화시켜 배제하고 같다고 생각하는 동일자는 그 타자의 배제로 인해 안심을 찾는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사회적 동물’ 너무나 많이 들은 호모사피엔스의 특성이란다. 사회적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절대적인 기준을 갖고 상대적인 판단을 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래 뇌가 우울에 좀 더 민감하니까 며칠 밖에 안 나가고 미드 몇 시즌 보면 다시 괜찮아져'라고 나에게는 당연한 듯 얘기하고 당연한 듯 우리는 받아들이면 어떨까? 스스로의 기준을 갖고 서로를 인정하는 세상이면 참 이상적일 듯 싶다. 다양한 감정을 모두 똑같이 반응하고 똑같이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가장 우울한 표정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기쁜 표정일 수도 있지 않을까? 결국 틀리다와 다르다의 차이인 듯싶다. 인정과 배제의 차이인듯 싶기도 하다. 인정할 수 있는,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는 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런 시도로는 꽤 좋은 자리였다. 2주 뒤 다시 만나는 북클럽이었다. 2주 뒤 두 번째 만남에는 좀 더 친숙하게 마주하며 대화할 수 있을 듯싶다. ‘우울’ 대화 속에서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았다. She said, 사실인가, 생각인가? 지난밤 나의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섰다가 낯모르는 이와 작은 다툼이 있었다. 내
반려견은 대형견이라 종종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거나, 단지 개체의 크기만으로 위험성을 재단당하곤
한다. 이 사건 역시 두 딸을 데리고 나온 엄마가 ‘언제 일어날지도 모를’ 위험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며 나에게 그의 논리를 들이밀었다. 대형견과 함께 살기 시작한 지 3년, 시비 거는 사람들에게 나름의 대처법이 생겨 억울한 마음이 남지
않게 끝마치고 돌아섰지만 이미 나빠진 내 기분은 어디 가서 보상받아야 하나 싶었다.
우리는 이처럼 나만의
생각을 사실인 것 마냥 행동한다.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거대한 풍선을 만들어 여러 상황들을
풍선 속에 가둬둔다. 우리의 세상은 그저 그 풍선 속 세상일 뿐인데 편협하기 짝이 없다.
나는 비단 이런 시비에
휘말리는 일 외에도 일상 곳곳에서 내가 하는 생각과 판단들이 사실인지 자문해 보지만, 굉장히 애매한
결론에 다다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그냥 fact 야. 그게 진짜 <사실> 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그 상황이 사실이라고.”
파트너와 언쟁할 때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풍선이 터지기 전까지, 나는 풍선 밖 세상을 볼 수 없다. 누군가 밖에서 바늘을 찔러 터뜨려주거나
꽁꽁 묶은 입구의 줄을 풀어주기 전까지는. 바늘의 역할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책이 되기도 한다. 가끔은 생각 없이 보는 미드나 찾아보는 유튜브
콘텐츠가 나의 풍선 같은 세상을 없애주기도 한다. 풍선이 터질 땐 깜짝 놀라지만 이내 풍선이 있었던
흔적은 바닥에 내려앉은 쭈글쭈글해진 터진 풍선의 잔해뿐이다. 뼈 때리는 조언을 듣거나, 납득이 가는 주장을 이해하거나,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직. 간접적으로 흡수해서 생각의 스펙트럼을 넓힌다.
과연 내가 부풀려 놓은
나의 세상이 터져 없어지고 나면 생각과 사실을 구별할 수 있게 될까? 화병꽂이 no.15 매주 생활화에서는 집에서 꽂기 좋은 적은 양의 꽃으로 화병꽂이 한 작업물을 공유합니다 꽃을 다 꽂고 난 뒤 완성된 작업물도 분명히 멋지지만, 이렇게 과정 중간
중간의 사진을 저는 더 좋아해요. 맨 처음의 사진보다 조금 더 간결해진 화병꽂이. 생활책 매월 다양한 분야의 작가님과 북클럽을 진행합니다. 5월의 생활북클럽 with Writer.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5월은 한 작가님이 아닌 두 작가님의 북클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식으로 소개를 하기 전에 만나 볼 작가님의 책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첫번째 작가님은 지난 해 <조금 긴 추신을 써야겠습니다> 북토크로 생활관에서 만날 수 있었고, 선데이모닝필사클럽에서 선정했던 <온전히 나답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를 쓴 '한수희' 작가님 입니다. " 우리가 이 일상을 정성 들여, 바르게 살아간다고 해서 이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달라질 수 없는 곳이기에, 거꾸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역시 이 일상을 정성 들여,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부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외부 세계에 눈을 감거나 귀를 막고 자신만의 성을 높이 쌓아올리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그건 어쩌면 사막에 풀씨를 뿌리거나 나무를 심는 일이나 마찬가지일지도모른다. 아무 소용도 없고 결실을 맺게 될지 아닐지 모를 일. 그런다고 세상이 털끝 하나 달라질 것 같으냐는 소리나 듣기 딱 좋은 일, 하지만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는 세상에서도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 나는 그런 것이 좋다. 언제나그런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고,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싶다. " p.93 < 조금 긴 추신을 써야겠습니다. > 책과 책, 영화와 책, 영화와 영화가 묘하게 엮이면서 하나씩 글이 완성됩니다. <AROUND> 매거진에서 8년이나 이런 글을 써왔다니 직접 만나면 참 친근하게 느꼈는데, 글만 보면 뭔가 범접할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잘 쓴 글'이란 이런 것 아닐까, 유려함이 너무 넘치지 않으면서도 꼭 있어야 할 단어와 문장만을 잘 조합해 리듬을 만든 글, 이런 글을 잘 썼다고 하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사실 아직 작가님이 선정하신 책을 받아보지는 못 했습니다. 아마도 오늘 내일 정도 정해질 듯 한데요. 이런 책을 쓰신 작기님은 어떤 책으로 대화를 하고 싶어할까? 설레이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곧 '에세이스트의 북클럽: 한수희 작가'에서 소개할게요. < 조금 긴 추신을 써야겠습니다. > : 틀 너머의 이야기 한수희 지음 | 어라운드 펴냄 | 2020 두번째 작가님은 '남해의 봄날' 출판사에서 가장 애정하는 작가님이라고 처음 소개를 받았던 <세계 예술마을로 떠나다>의 천우연 작가님 입니다. 사실 작가님과는 2018년 저희 생활관의 첫 북토크였던 이영미 작가의 <마녀체력> 때 손님으로 참여를 해서 알게 되었고, 그 이듬해인 2019년에는 <세계 예술마을로 떠나다>로 북토크도 진행을 하며 인연을 이어갔던 작가님입니다. 2020년에도 계획된 워크숍이 있었는데 하필 코로나19로 무한연기 되었다 결국 만나지 못했던 작가님이기도 합니다. 계속 인연이 이어질 것 같다 생각을 했던 작가님인데 곧 다시 유학길에 오른다고 하셔서 서울생활을 정리하기 전 마지막 자리를 부탁드렸습니다. " '우리는 매해, 매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축제를 만들 어.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바라는 만큼 모든 것이 눈에 띄게 변할 거라 고 기대는 하지 않아. 천천히 하는 거야.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고 마음을 모아서.' 혹여나 내가 실망할까 샌디는 한마디 더 덧붙였다. '마을 일은 살아가는 것이지 행사가 아니거든.' " p.189 <세계 예술마을로 떠나다 > 이 책은 ‘일을 위한 일’처럼 해오던 문화기획자 일을 놓고 1년 반 동안 스코틀랜드, 덴마크, 미국, 멕시코 등의 세계 문화예술마을을 여행하고 돌아와 쓴 일종의 일기같은 보고서입니다. 책 속의 천우연 작가는 여행 동안 세계 여러 문화예술마을의 사람들과 함께 마을의 주민으로, 예술학교의 학생으로, 축제의 인턴 작가로서, 지극히 평범하지만, 또한 특별한 마을 장인들에게 문화예술을 즐겁게 배우고 돌아옵니다. 돌아와서 어떻게 삶이 변했을까? 여전히 진행중인 변화를 짧게 목격하고 어떤 궤적으로 삶을 이어나갈지 꽤나 궁금한 작가님이기도 합니다. 책이 나온 지 5년이 지나 다시 '떠남'을 준비하는 그를 보며 샘이 나기도 합니다. '기획자의 북클럽: 천우연 작가' 의 자리를 저희도 꽤나 설레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 세계 예술마을로 떠나다 > : 일어버린 두근거림을 찾아 천우연 지음 | 남해의봄날 펴냄 | 2017 생활 [이슈] 클럽 요즘 우리의 이슈 Issue 01 개나리, 진달래, 벚꽃을 모두 동시에 볼 수 있게 되었다. 꽃시장에는 이미 3월 말부터 작약이
출하되어 유통되고 있었다. 마냥 좋을
게 아니다. 이 지구의 온도가 상승해서 결국에는 자연의 섭리가 깨지고 있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어디까지 지구의 환경 문제를 커버해
줄지 모르지만, 정말로 정말로 환경 문제가 와닿는
순간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바로 시작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텀블러 지참이나 장바구니를 챙겨 다니는 일은 이제 실천이 아닌 몸에 잡힌 습관이어야
하고, 의무가 되어야 한다. Issue02 SNS의 팔로우 성향에 따라 전달되는 정보는 꽤나 다를 수 있다. 어제 비건 혹은 동물권과 관련된 몇몇 단체부터 개인까지 우리와 연결되어있는 계정에서는 대구의 한 비건페스티벌에 관한 이야기가 꽤나 많이 올라왔다. 아직 기사로는 다루고 있지 않아 연결된 SNS를 통하지 않고는 이 이야기에 대해 알지 못할 수 있다. 아이니테마파크도 부경동물원도 처음 들어본 곳이다. 왜 굳이 두 곳을 함께 표기가 되어있나 찾아봤는데 딱히 설명을 찾지는 못했다. 아마도 대구의 '아이니 테마파크'라는 실내 동물원의 동물을 위탁 관리하는 곳이 김해의 '부경동물원'인 듯 싶다. 어쩌면 두 곳 모두 한 주인을 두고 있을지도. 아무튼 이 둘 다 동물의 먹이를 주는 체험이 특화되어있다고 한다. 동물복지 혹은 동물권이라는 개념을 알게 된 후부터 '동물원'이란 곳을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다. 물론 이미 사육된 동물과 인간의 공생을 위해 노력하는 '청주동물원' 같은 곳도 있긴 하다. 아무튼 유리장에 갖혀 수많은 인간들이 작은 틈 사이로 주는 먹이를 구걸해야하는 '테마파크'에서 비건페스티벌이라니. 이 것을 기획한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한 것일까? 동물복지의 정 반대개념의 장소에서 동물권이 바당에 있는 '비건'을 소개한다니, 그저 사람을 모을 수 있는 어떤 '키워드'로 본 것일까? '비건페스티벌의 수익금은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한다'는 소개도 되어있던데 혹시 동물원을 '동물보호소'의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정말 동물복지를 위해 애쓰고 있는 테마파크인 걸까? 오해인걸까? 홍보사의 블로그로 보이는 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있었다. "축제도 즐기고, 동물 보호에 참여하고 재미와 가치를 둘 다 잡기!" 실내 동물원에 가서 비건음식, 뷰티 행사를 참여하고, 유리 칸막이안의 동물에게 음식주기체험을 하면서 마음속에 나는 '동물 보호에 참여했다.'라고 '가치 있는 하루였다'라고 느끼길 바라는 것일까? 이 또한 '그린워싱' 같은 것일까? 그렇기에는 너무 대범한 기획이다. 이 이슈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 생활소식 마을상점생활관의 소식을 전합니다. 2022 세계책의 날을 맞아 마을상점생활관에서는 인스타그램 LIVE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에는 안산의 여럿 책방 운영자를 모시고 ‘안산에서 책 팔아 먹고 사냐고 물으신다면'을 진행했었는데요. 올 해는 저와 꽃사장 정민s 둘이서 ‘How to be OUR HOST: 동네책방에서 유료 모임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보려고 합니다.
마을상점생활관에서는 생활커뮤니티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직접 진행을 하기도 하고, our Host라고 부르는 이웃이 host가 되어 진행을 하기도 합니다. 북클럽, 드로잉워크숍, 출판워크숍, 비건클럽, 일기워크숍, 텃밭클럽, 재즈클럽, 이슈클럽 등이 있었는데요. 자신의 취미로 관심사로 자리를 마련하는 기회가 많기를 바라며 그 방법에 대해서 전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물론 그와 상관없는 이야기도 주저리 떠들 수 있습니다. : ) our host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나 저희에게 궁금한 점을 받아보려고 해요 공유해주신 궁금한 점은 LIVE에서 최대한 자세히 답변드릴게요. *별 것아닌 생활상담도 해드려요. : ) 많은 질문 기다릴게요. 함께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생활관점 보드를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이번 레터에 대한 의견을 전해주세요. 익명이니 자유롭게 써주세요. 다른 글에 댓글로 의견도 남길 수 있어요. 👇 |
마을상점생활관의 두 호스트의 생활의 관점을 담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