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 Essay 01. 제일 처음이라는 것에는 언제나 좀 더 신중해진다. 얼마 되지 않는 구독자에게 보내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나 마치 온 세상에 나를 처음 들어내는 것 마냥 신중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떤 이야기가 처음으로 좋을까. 고민을 하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가 적당해 보였다. 다만,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이전 브랜딩을 업으로 삼던 회사부터일까, 그 이전 문화콘텐츠를 다루던 회사부터일까, 영화 현장 바닥을 뛰어다니던 때부터일까 그렇게 거슬러 가보니 학생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됐다. 너무 장황하지만 않기를 바라며 첫 레터에 글을 담는다. 어쩌다 생활관을 열어 밥 벌어 살게 된 걸까. 01.취직 안 한다고 한 것치고는 언젠가 대학 동창이 한 얘기였다. 대학교에 입학 후로 전공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영화를 하겠다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다. 중학교 때 이모가 “넌 나중에 커서 뭐 할거냐?”라는 갑작스런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못 했다. “맨날 영화만 보니까 영화감독 될라 그러나!” 이모의 자답에 이후 장래희망란 1순위는 ‘영화감독’이 됐다. 하지만 그저 막연한 희망사항이었는지 영화와는 상관없는 전공을 하게 됐다. 그나마 같은 전공 출신 영화감독을 알아보면서 얕은 연결고리만 찾고 있었다. 그러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며 남들 취직 준비할 때 처음으로 독립영화 판에 발을 들이고 바로 상업영화 현장으로 직행을 했다. 그러던 놈이, 취직 생각 일도 없던 유일한 놈이 대기업은 아니라도 나름 얘기하면 몇몇은 알만한 회사를 전전한다는 것이 신기했던 듯싶다. 어쩌면 결론짓지 못 한 ‘영화감독’이란 희망사항이 여전히 남고 남아 여기까지 이른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영화판에서 결론을 짓지 못 한 건 조바심과 두려움이 컸다. 한 편 한 편 만드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그 시간을 보내도 남는 건 그리 없어보였다. 그런 지난한 시간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 홍대 한 골목의 이자카야에서 소주 없는 메뉴판을 보고 슬그머니 나오던 영화판 친구들과의 기억을 마지막으로 취직을 했다. 이 판은 나랑 맞지 않은 것 같다는 결론을 내지 못 한 채 잠깐 돈 벌어 시작하자고만 생각했다. 결론을 짓지 못한 채 직장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마케팅에이전시 - 공연|전시기획사 - 디자인기획사 - 브랜딩기획운영회사를 전전 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자신의 DNA는 영화판에서 찾았다. 되돌아보면 자신만의 차별점을 그곳에 찾았던 것 같다. 경쟁력 제로에 가까운 언어 전공자가 꿀리지 않으려면 ‘남다른 시각’ 뿐인 듯했다. 그 시각은 ‘영화판이었다면 지금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을 했을까'에서 찾았다. 크리에티브를 강조하는 회사를 다녔다. 그곳에서는 자신만의 DNA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건축 출신, 그래픽 디자인 출신, 포토그래퍼 출신, 클래식 전공 출신, 더러는 어느 기업 출신, 언더그라운드 출신 등 모든 사안을 그 DNA에서만 찾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과 구별된 자신의 DNA로부터의 관점이 있는 듯 느껴졌다. 나에게는 그것이 영화판이었다. 그러면서 뭐라도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 어느샌가 자리 잡았다. 마지막에 있던 회사에서는 기획 마인드를 무기 삼아 밥벌이를 하는 동료들이 많았다. 지금의 세상과 앞으로의 세상을 더듬어 가늠하고 고여있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던 사람들이 많았다. 세상에 호기심이 없으면 버티기 힘든 곳이었다. 나름의 관점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곳이었다. 앞으로의 세상에 필요한 것. 더듬더듬 느끼고 있지만 확신은 없었다. 그럼에도 시도는 해보고 싶었다. 그러다 직장인으로 Go/Stop을 선택해야 할 시점이 왔다. 마지막 회사에서는 글로벌 제조회사와 조인트 벤처를 만들었는데 나는 그 팀에 속해 있었다. 한 일 년이 지나니 조금씩 분위기가 변했다. 정점을 찍은 것은 그 조인트 벤처에서 대표를 맡고 있던 임원이 다른 회사의 부사장으로 옮긴다고 공표할 때였던 듯싶다. 이미 여러 정황상 알고 있었던 것이라 팀이 흐지부지될 때까지 버티기보다는 미리 (그럼에도) Go를 할지 다른 길을 찾아야 할지 선택을 하는 편이 옳아 보였다. Stop을 하기로 했다. 마지막 임원 면담 전, 여러 경우를 생각해 봤다. 결론은 이랬다. 여기에 남건, 본사로 돌아가건 혹은 아예 다른 길을 가던 어차피 고생 없는 길은 없어 보였다. 어차피 어딜 가건 있는 머리 없는 머리 짜내면서 고생할 바에 그럴 만한, 고생할 만한 이유가 있는 길로 가기로 했다. 마지막 임원 면담에서 선택을 해 달라고 했다. 이사 직급을 주면 Go를 할 것이고, 아니면 Stop을 하겠다고 했다. 이사 직급 정도는 돼야 흐지부지되더라도 고생할 이유가 있어 보였다. 내부 논의를 거친 뒤에 가장 친하게 지냈던 임원이 와서 ‘그동안 고생 많았는데 뭐 필요한 것 없냐며 최대한 챙겨주겠다.’는 답을 전했다. 그렇게 직장인으로는 Stop을 했다. 직장 생활은 그렇게 결론을 지었다. Stop을 하고 바로 생활관을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약 1년 반 후에 생활관을 오픈했는데 stop을 선택한 그때는 일단 잠깐 쉬자가 먼저였다. 사실 잠깐 이름난 기업들로 복귀한 여럿 동료들이 있어 한 번의 오퍼는 있겠지 기대하기도 했다. 결과는 1년 반 뒤에 마을상점생활관을 오픈 했다. 어차피 취직할 생각은 일도 없었으면서, 잠깐만 다니자면서 10년 정도 채웠으면 꽤 선방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렇기에 미련 없이 결론을 지을 수 있었던 것 싶기도 하다. from. 형진c ➕ 다음주로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Essay 02. 이미 지나간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돌이켜 봤다. 시즌의 특수함에도 감정의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는 걸 느낀다. 물론 크리스마스 무드에 맞는 꽃 작업을 하거나, 선물 포장을 할때는 세상 그렇게 즐겁고 유쾌할 수가 없다. 그 때 만큼은 ‘아 역시 12월은 신나!’ 라고 외칠 수 있다. (이 정도면 감정의 오름 심한거 아냐??)
지구의 모든 커플들이 기다리는 12월 24일, 미취학 아동들이 산타가 있다며 굳게 믿으며 기다리는 12월 25일, 세상의 모든 매체에서 일제히 모든것을 멈춘 채 갑자기 카운트다운을 해대기 시작하는 12월 31일. 그리고, 대한민국의 모든 해돋이 명소에 비슷한 등산복들을 갖춰 입고 등산한 후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포효를 울부짖는 1월 1일. (이렇게 풀어서 쓰고 보니 너무 염세주의자같지만 지금의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걸 어쩌겠어.)
매월 마약같은 월급을 받으며 그 돈을 물보다 많이 썼던 시절로 돌아가봤다. 12월이 되면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들의 취향을 공략해 그에 맞는 선물과 카드를 잔뜩 사들고 좋아하는 카페로 달려가 하루 종일 그들이 이 선물을 받고 한자 한자 꾹꾹 눌러 쓴 나의 카드를 읽어내려갈때의 표정을 상상하며 그 기운에 취해 몇날 몇일을 들뜨기도 했다. 마치 나에게는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아니, 한 해를 잘 매듭짓기 위한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연애를 했던 12월에는 연인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연애를 쉬었던 해에는 친구들과 혹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혼자인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과거의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의 다정함을 늘 상기시키고 싶어 부단히도 애를 썼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에와서 돌아보면 그때의 내가 안쓰러울때도 있다. 싱그럽고, 풋풋했던 20대와 혼자서 성숙하다 착각하며 으-른 행세를 하고 다녔던 30대. 그때는 왜 그렇게 모든 기념일마다 의미를 두고, 그 의미에 내 기억을 가두고 거기에 취해 살았을까? 그때는 그게 정답이었고, 즐거웠고, 행복했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고,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40대가 되었다고 당당히 말 할 수 있게 된 나에게 어떤 기념할만 (여기서 기념일은 진심으로 “축하” 하거나 “기억” 하고 싶은 날을 이야기 한다.) 날을 꼽으라 하면, 나와 최형진의 (내가 나의 호적메이트이자, 사업 파트너이자, 누렁이 산책 메이트를 지칭할땐 저렇게 성과 이름을 다 붙인다.) 첫번째 반려견 보통이가 숨을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간 날 / 소소가 우리와 가족이 된 날 / 소담이를 구조한 날 정도라고 말 할 수 있다. 우리 각자의 생일은 생활관을 시작하면서부터 긴 여행이 쉽지 않게 되자 축하하는 것 자체도 시들해졌고, 우리의 결혼기념일은 소소를 입양한 날이기도 해 축하의 대상은 소소가 되고 우리끼리는 매년 재계약을 성사시켰다며 서로를 대견해하는 정도로 넘어간다. 그 외의 두 집안 가족들의 대소사는 약간의 숙제를 해치우는 느낌으로 사회적 자아를 발현시켜 최대한의 긍정회로를 돌려 시간을 보낸다.
어떤 날이 특별한가? 어떤 날이 특별하지 않은가? 개인의 특별함을 감히 누가 정의할 수 있을까? 특별한게 좋기만 한 걸까?
바삭하게 구워진 튀김을 먹는 것 처럼 마음이 빠직- 하고 갈라질 것 같이 매마른 날에도,
너무 말랑하고 몽글해서 오그라드는 손가락들을 어쩔 줄 모르겠을때에도,
헨리나 유노윤호처럼 갑자기 파이팅이 넘쳐 흐를때에도
그런 날들은 흘러갔고, 또 다시 돌아오기도 했고 때론 돌아오지 않기도 했다. 그런 날들을 기다리지 않았던 순간부터 아마도 나는 시즌의 특수함에도 감정이 요동치지 않게 되었다.
하, 근데 글을 다 써놓고 지난 2021년을 월 단위로 끊어 돌아보니 꽃이 피는 봄에는 소소와 꽃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녔고, 여름에는 함께 수영을 했고, 가을엔 캠핑을 가고, 겨울에는 눈 구경을 했다는 걸……
이 글을 적당히 합리화 하며 마무리 하자면 (아무래도 실패할 것 같지만)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는 ~데이나 크리스마스, 새해 다짐을 하지 않으면 유죄인 것 같은 12월 31일과 1월 1일같은 날에는 더 이상 감흥이 없다는 것. 1년 365일 중에 그런 날들은 너무 적고, 그렇지 않은 날들이 너무 많으니까 우리는 많은 날들을 살아내야 하니까.
지금 남아있는 설레임은 택배가 오늘 ~시쯤 도착한다고 보낸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정도인데 이라고 해둘 수 있는 이 시점에 인생에 설레임 총량이라도 있는걸까? 나는 그 설레임을 2~30대에 모두 다 써버리기라도 한걸까? 설레임을 다 썼다고 해도 괜찮다. 마이너스통장까지 뚫어 땡겨 쓰고 싶은 감정은 아니니까. 대신 요즘에는 평안, 안정을 찾아 헤맨다. 허우적거리느라 불안도 함께 쓰고 있지만 나름대로 괜찮다.
오늘도 나는 무던하게 새해의 세번째 날을 보냈다.
아, 새해라며 운동 시작했다고 자랑했다.
풉- from.정민s 화병꽂이 no.01 매주 생활관점 레터로 이웃들에게 저의 꽃을 보여드릴 생각을 하니 설레이기도 했다가 괜시리 막중한 책임감이 생가기도 해요. 뭐든 진지한 건 좋지만 무거운 건 또 진행을 더디게 하니 적당히 제가 잘 컨트롤 할 수 있겠죠? :)
1월 첫 레터의 첫 꽃은 공기가 차가워지면 제가 늘 생활화로 데려오는 버터플라이 라넌큘러스가 들어 간 화병꽂이에요. 자기 멋대로 휘어지는 줄기와 꽃잎의 광택이 매력적인 꽃이죠. 연한 하늘색의 델피늄도, 청포도같은 싱그러움의 씨드 유칼립투스도 모두 애정하는 꽃이네요.
꽃값이 끝을 모르고 오르고 있는 시즌에 꽃집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꽃은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은 꽃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에게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라고 생각해요. 제가 꽃을 하는 수 많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구요.
일주일에 한 번 생활화에서 전하는 저의 꽃과 가벼운 글을 통해 잠깐이라도 기분전환이 된다면 너무 좋겠어요!! ![]() ![]() 생활책 울적할 정도로 간절하게 잘 하고 싶은 마음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가끔 그 간절함을 소환시키려 애쓴다. 대부분 간절하게 하고 싶은 것은 ‘일’과 관련이 있었다. (전부였는지도) 일과 생활을 분리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잠깐 있었지만 일만큼 성취욕을 채울만한 것은 찾기 힘들다. 개인적으로 그렇단 얘기다. 일과 관련된 책을 골라봤다.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일도 생활도 잘 하고 싶은 분에게 추천하고 싶다. ![]() <일을 잘한다는 것> ( 야마구치 슈, 구스노키 켄 지음 | 리더북스 펴냄 | 2021) 철학과 예술에서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찾는 ‘아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지음)와 일본 최고의 경쟁전략 전문가라는 (하지만 처음 들어 본) 구스노키 겐의 대담을 담은 책이다. ‘도대체 일을 잘한다는 것은 뭘 잘한다는 걸까?’ 그 근원을 찾아가는 책지만 저자의 전작을 보면 그 근원을 어디에서 찾을 지는 답정너 수준이다. 다만,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수없이 입에 담았던 ‘센스(감각)’에 대한 근원을 발견할 수 있다. 직장인일때 읽었더라면 좋았을 듯 싶다. 읽으면서 반성하게 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 <이토록 멋진 휴식(TIME OFF)> (존피치, 맥스프렌젤 지음 | 현대지성 펴냄 | 2021) " 대다수 현대 지식 근로자의 경우, 생선성과 깊이 있는 일, 즉 진정으로 창의적이며 혁신적인 돌파구로 이어지는 일은 계량화하기가 만만치 않다 (중략) 그래서 우리는 ‘생산성의 대체물’로 바쁨을 내세운다. 생산성이나 창의력에 비해 한결 단순하게 측정할 수 있으며, 금세 성취감을 얻게 하는 손쉬운 방법이다. 안타깝게도 바쁨은 동료와 상사로부터 인정과 환심을 살 수 있는 가장 직접정인 방법이기도 하다." p.53 집요한 영업사원 같은 태도로 ‘타임 오프’, 일과 떨어진 시간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그 태도가 조금 못마땅하긴 하지만 다양한 사례에서 관점을 얻기에 좋다. ‘어떻게 하면 좋은 휴식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분은 100% 실망할 만한 책이다. 대신,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삶,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면 읽고 참고할 만하다. 자기 계발서 특유의 확고함에 취하지 않고, 스스로 취사선택할 분별 능력이 있는 분이라면 충분히 얻을 것이 있다. 생활소식 마을상점생활관의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합니다. Join us, Be our host. 지난 해 선사스튜디오와 함께 캠페인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좀 더 나은 일상을 위한, 누구나 호스트와 게스트가 될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
마을상점생활관의 두 호스트의 생활의 관점을 담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