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26 생활소식 마을상점생활관의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합니다. 생활북클럽 w.WRITER. 7월 최재원 작가 4월 김예지 작가/ 5월 한수희, 천우연 작가/ 6월 편성준 작가에 이어서 7월의 host는 <작은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를 쓴 최재원 작가입니다. 그를 섭외한 것은 ‘새로운 시각’을 줄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여행의 관점을 새롭게 해석한 첫 그의 책과 사실 첫 책의 연장선상일 수 있는 일의 관점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는 두 번째 책까지.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생각을 글로 담아 내놓는 거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와 함께 대화를 해보는 7월 두 번의 자리가 마련됩니다. 그가 선정한 책은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이 쓴 <그냥 하지 말라>와 오롤리데이 박신후 대표의 창업기 <행복을 파는 브랜드, 오롤리데이>입니다. 큰 주제는 [ 프로젝트에서 브랜드로 ]입니다. 아마도 첫 번째 만남에서 송길영의 <그냥 하지 말라>로 지금 세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이야기하고, 두 번재 만남에서 박신후의 <행복을 파는 브랜드, 오롤리데이>를 통해 현실적인 적용을 해볼 수 있는 이야기로 채워질 듯싶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꽤나 관심 있는 주제라, 기대하면서 최재원 작가와 잘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지난 생활북클럽과 마찬가지로 첫 번째 지정도서 <그냥 하지 말라>(송길영)는 무료로 보내드립니다.
많은 영감 얻어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일시: 2022.7.10 / 7.24 | 일요일 저녁 7시 | 격주 | 총 2회 Host: 최재원 작가 지정도서: 1st.<그냥 하지 말라>, 2nd <행복을 파는 브랜드, 오롤리데이> 인원: 최대 10명 [ 독서아카데미 #2 ] <우리가 서로를> 이병률 & 낯선사람들 이번의 자리는 약간의 핑곗거리를 겹쳐놓은 것이다. 이병률 작가를 핑계로 그와 함께 아이슬란드로 떠났던 여행 메이트들(낯선 사람들)을 초대했고, 그 여행 메이트를 핑계로 이병률 작가를 초대했다. 이병률 작가는 2000년대에 유명했던 작가 일지 모른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그가 새롭게 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그의 행보가 관심을 끌고 있긴 하지만 어쩌면 그때 그 반짝이는 글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관심을 여전히 이어받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그들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이병률 작가를 직접 우리 공간에 초대한다는 것에 꽤나 기대를 했던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반짝이는 글을 (모르는) 이웃에게 소개하고 싶은 생각으로 자리를 마련한 것은 아니었다. 에세이에서는 작가의 시선만 담겨 있다. 그의 여행 에세이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 사람과의 관계도 등장한다. 모두 그의 시선으로 담긴 이야기다. 궁금했다. 그와 함께 여행을 한 사람들의 시선이. 그래서 꼭 한쪽이 아닌 양쪽을 모두 초대해 그 여행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어쩌면 유려하고 반짝이는 그의 책 <끌림>의 환상을 깨는 자리일지도 모르겠다. 반대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함께 이야기하는 날 알게 되겠지. 분명 이것만은 단언할 수 있다. 유명 여행작가(겸 시인)와 그와 함께 여행했던 사람이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는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 분명 그 속에서 여행 이야기 너머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는 삶의 관계를 좀 더 깊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을 핑계로 관계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우리와 이웃한 많은 사람들이 이 관계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 그렇기를 바라며 주저리주저리 소개를 해본다. 생활花 당신의 일상에 꽃이 생활화 되기를 바랍니다. 화병꽂이 no.25 아주 가끔씩은 그 어떤 꽃도 예뻐보이지 않을 때가 있어요. 저에게는 요즘 특히
그런데요, 그 와중에 저의 시선을 사로잡은 겹백합.
향도, 화형도 어른의 고혹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져요. 어떤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되는 꽃. 백합의 향도 함께 전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생활책 좀 더 나은 일상을 위한 책을 소개합니다. 생활북클럽 w.WRITER, 7월 최재원 작가와 함께 읽고 대화할 책을 소개합니다. 그냥 하지 말라 ( 송길영 지음 | 북스톤 펴냄 | 2021 ) :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 " 개가 귀여움의 대상인 애완동물로, 다시 삶을 함께하는 반려동물이 된 것은 20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반려’라는 키워드가 생겨난 것 자체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시작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최근에는 사람이 자신을 ‘반려인’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하던 인간이 지위를 내려놓고 자연만물과 공존하는 존재로 스스로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일까요? 인간은 심지어 같은 종끼리도 싸우는 존재인데, ‘반려’라는 키워드는 편협했던 공동체의 개념을 한층 넓고 길게 보는 관점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겸허해졌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이 의미 있는 변화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지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습니다.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은 2016~18년 사이 2배 가까이 늘었고 ‘반려식물’은 무려 4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비단 빅데이터가 아니더라도 10년 넘게 비혼/비출산이 이어지는 것에서 반려동물의 상승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근원적으로 인간은 외로운 존재여서 함께할 대상이 필요하니까요. " <1장 '기시감: 당겨진 미래> 중 우리는 흔히 ‘미래를 알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과거와 지금을 보고,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욕망을 이해할 수 있으면 미래의 변화를 상당 부분 알 수 있다.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데이터 분석가 송길영은 20여 년간 분석해온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일상이 어떻게 달라졌고, 생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적한다. 그럼으로써 앞으로 일어날 변화의 주요 축, 우리 사회의 가치관, 그에 맞는 개인과 조직의 성장문법을 제시한다. 미래에도 나만의 전문성이 있는 삶, 주도권을 잃지 않는 삶을 꿈꾼다면, 저자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 마음이 그려내는 미래를 미리 탐험해보자. 행복을 파는 브랜드, 오롤리데이 ( 박신후 지음 | 블랙피쉬 펴냄 | 2022 ) "우리가 이야기하는 ‘행복의 가치’에 대해 더 많은 사람을 잘 설득하고 싶다. 그 설득의 결말이 ‘오롤리데이를 좋아한다’가 아니어도 좋으니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행복을 발견 하고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 결말을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이런 행복도 있고, 저런 행복도 있고, 그런 행복도 있답니다’라며 다 양한 행복의 형태를 제안할 것이다" 이 책은 오롤리데이를 론칭한 박신후 대표가 지금의 오롤리데이를 만들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겪은 위기와 역경, 실패와 성공담을 담은 8년간의 성장 스토리이다. 명확한 아이덴티티, 한눈에 꽂히는 슬로건, 지갑을 열게 하는 캐릭터, 컨셉추얼한 비주얼, 찐팬을 불러 모으는 진심 마케팅으로 탄탄한 팬층을 보유하며 나날이 성장 중인 오롤리데이. 브랜딩 노하우에 대한 출간 요청이 끊이지 않았던 만큼 저자가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딪쳐 경험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쌓아 온 실전 지식과 인사이트를 총망라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저자가 오롤리데이를 운영하며 터득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실전 미션북’이 포함돼 있다는 것. 저자가 던지는 질문에 답하고 미션을 수행하며 나만의 인사이트를 만들어 볼 수 있어 브랜딩을 시작하고 싶은, 혹은 브랜드를 운영하며 벽에 부딪치는 사람들에게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 줄 것이다. Essay He said, 휴식, 언젠가 휴식이라는 것이 뭘 해야 하는 것이지? 낯설어진 적이 있다. 그래서 휴식과 관련된 책도 보고 여러 콘텐츠도 찾아보기도 했다. 대체로 궁금한 것이 있으면 가장 정제되어있다고 믿는 책에서 단서를 찾는다. 아마도 그런 성향 때문에 책방을 차릴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정해진 수순으로 살아가다 갑자기 그 흐름이 끊고 잠시 멈추면 당연한 듯 느껴지던 것들이 꽤나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에게 ‘생활관'이라는 상점을 열게 된 것이 그랬다. 관계가 낯설어지고, 휴식이 낯설어지고, 잘 산다는 것의 기준이 낯설어졌다. 디깅 하는 데는 재능이 없어 많은 책과 콘테츠를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한창 그 고민에 빠져있을 때 “쉴 때 뭐해요?”라는 질문을 여러 사람에게 물어봤다. “쉴 때는 그냥 쉬지 하긴 뭘 해요" 라고 되돌아오는 답이 많았다. 무언가를 한다는 것과 쉰다는 것이 정반대의 의미인 건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쉰다는 걸까? 아마 예전의 나도 그런 답을 했을지 모른다. 그 당연한 쉰다는 것, 휴식이라는 것이 한 번 낯설어진 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이 휴식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보통 7월 첫째 주에 여름방학을 했다. 7월 첫째 주는 나의 생일이 있어 그 핑계로 대략 한 일주일 정도 쉬어간다. 처음에는 여행을 떠났지만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맞이한 이후로는, 거기다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반려묘가 가족으로 들어온 이후에는 긴 여행을 떠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2-3일 정도는 혼자 있어도 고양이는 괜찮아요'라는 말을 몇 번 들었지만 퇴근하고 집안으로 들어갈 때 자다 일어난 모습으로 문 앞으로 달려와 스크래처를 벅벅 긁는 소담이를 며칠이나 혼자 두는 것이 마음에 걸려 기껏 2-3일의 여행도 쉽게 포기한다. 결국 우리의 분리불안으로 여행보다는 미뤄둔 일상을 보내는 것으로 휴가를 보내게 됐다. ( 사실, 소담이가 없더라도 대형견인 소소를 데리고 여행을 가는 것도 너무나 많은 제약이 있어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긴 하다. ) 올해 여름방학은 6월 마지막 주, 단 6일간이었다. 음력으로 세는 아버지의 생일과 나의 생일이 비슷하게 붙을 때가 있는데, 이번에는 2주 정도 차이가 있어 그 사이인 주에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게 6월 마지막 주였다. 형제가 많은 정민s의 가족과는 몇 번 함께 여행을 갔었는데, 부모님과 우리만 있는 나의 가족과는 첫 여행이었다. 목적지는 강원도 인제였다. 최근 정민s가 워너비 라이프로 생각하고 있는 반려견 동반 민박을 방문해보기로 했다. 2박 3일은 짧았지만 부모님과 정민s까지 함께 한 첫 가족 여행은 과하지 않고, 꽤나 적당하게 즐기다 돌아왔다. 그렇게 총 6일간의 여름 방학 중에 3일은 여행을 다녀왔고, 나머지 3일은 특별한 것 없이 시간을 보내게 됐다. 그렇게 절반씩 나눠 방학을 보내다 보니 어떤 것이 나에게 더 맞는 휴식인지 좀 더 극명하게 느껴진 듯싶기도 하다. 내가 책에서 본 휴식이란 것은 이렇다. ‘휴식은, 쉰다는 것은 혼자 존재할 수 없다. 죽을 것 같은 느낌으로 운동을 한 후 편안하게 몸을 뉘었을 때 같은 것이다. 죽을 것 같은 느낌의 운동이 있어야 그다음에 휴식이란 것이 있을 수 있다’ 정도로 요약을 할 수 있었다. 열심히 일을 혹은 무언가를 해야 다음에 쉰다는 것이 있다. 열심히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면 그다음에 쉰다는 것은 권태와 무기력을 동반한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새롭게 느껴졌다. ‘쉬고 싶다'라는 말을 퇴사 직전에 달고 살았는데 그때 죽을 만큼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던가 생각해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그냥 권태와 무기력을 벗어나는 것이 쉰다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던 듯싶다. 어쩌면 생활관을 통해서 드라마틱한 노력과 성과를 (아직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휴식이라는 것이 낯설게 느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휴식에 대한 갈증은 반복적으로 찾아온다. 3일간의 여행과 3일간의 일상, 이제는 어디를 떠나는 것보다 일을 해야 하는 것 때문에 기대만큼 채우지 못하는 일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좀 더 휴식에 가깝게 느껴진다. 끓는 물에 3분이면 충분한 라면으로 때우는 식사 말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만드는 식사를 하고, 집안을 정리하고, 반려동물과 좀 더 놀아주고, 보다 말다를 반복했던 책과 영화를 끝까지 읽고 보고, 매일 같은 시간 운동을 하러 나가는 그런 일상을 조금 더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나의 지금에 맞는 휴식으로 생각하게 됐다. 그런 하루를 보냈을 때야 비로소 잘 지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틱한 삶에는 드라마틱한 휴식이 필요할지 모른다. 지금 나의 잔잔한 삶에는 잔잔한 휴식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She said, 1인 1견 2묘와 같이 살아요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결혼에 관심 없던 내가 결혼에 관심 없던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고, 개와
고양이를 무서워하던 내가 커다란 누렁이와 뚱뚱한 고양이와 아무 생각이 없는 아기 고양이를 모시고 살고 있다니. 정말이지
인생은 흥미진진하다. 확신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일들
투성이다.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일주일 전인데 그 사이에 아주아주 아기인, 태어난 지 약 두 달 정도 된 작은 고양이 하나를 더 모셔왔으니 더더욱 인생이 그러하다. 남자인 남편과 함께
먹고, 자고, 일을 한다.
24시간을 붙어 지낸다. (이 지점에서 ‘와 너무 부럽다!’
그리고 ‘와 진짜 싫겠다!’ 파가 극명하게 나뉜다. 주로
미혼과 기혼으로 나뉘고, 미혼 중 현재 연애 중인지 아닌지에 따라 또 나뉜다. 어떤 상태가 어떤 반응을 하는지 말 안 해도 다 알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반려견인 소소와도 거의 24시간 붙어 지낸다. 거의 남편과 동급이다. 같은 침대에서 잠이 들고, 함께 걷고, 함께 일하고, 함께
논다. 종종 함께 먹기도 한다. 나의 소심하고 뚱뚱하고 예쁘고
귀여운 반려묘 소담이는 1인 1견과는 조금 다르게 떨어져
있는 시간이 제법 길게 있다. 하루 평균 4시간 정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집에 홈캠을 설치하지 않아 혼자 있는 시간에 뭘 하는지 나는 전혀 모른다.(궁금하긴 한데, 그렇다고 알고 싶지도 않다. 나 없이 잘 놀면 그거대로 괜히 서운할 테고, 나 없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우는 모습을 보거나 힘 없이 늘어져 있는 모습이라도 보면 또 폭풍 오열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출근할 때 숨겨놓고 가는 간식이 없어지는 걸 봐선 집
탐색을 하긴 하는 것 같은데, 오랜 시간 호기심에 탐험을 즐기는 타입은 아니다. 대신 내가 퇴근하면 정말로 자다 일어난 눈으로 꼬리를 있는 힘껏 세우고 달려 나와 중문 앞에 놓인 스크래쳐를
아주 벅벅 긁는다. 평소보다 늦는 날에는 야옹야옹 소리를 엄청 낸다.
'왜 이렇게 늦었냐, 보고 싶었다, 얼른 열빙어를
대령해라.' 대략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며 소담이가 야옹야옹 거리는 날에는 괜히 더 기쁘다. 이제 갓 401호에 평생 무상거주하게 된 소이는 아직 너무 아가라서
최선을 다해 놀다가도 갑자기 잠든다. 자다가 일어나서 눈을 감은 채 밥을 먹고 곳곳을 뛰어 다니다 또
갑자기 쫘압 쫘압 소리를 내며 물을 마신다.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장난감(=소담이 꼬리)을 잡다가 하악질을 하고, 괜히 힘껏 야옹거리기도 한다. 이 모든 게 하찮지만 그래도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는 중이다. 나는 ‘응애’ 소리를
내는 가족이 없다. 헛소리와 웃긴 소리를 하는 남자 가족과 멍! 소리를
내는 개와 야옹 소리를 내는 고양이들이 있다. 인간 아기가 없다는 게 내 인생 최대의 약점(?)이기도 하다.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는 일들이 많지만, 정말로 겪어보지 못하면 발을 들일 수 없는 게 육아 아니던가. 쿠션어
사용을 싫어하는 나 일지라도, ‘제가 아이가 없어서 잘 모르지만’을 수없이 이야기해야 하는 대화들이
난무하는 날도 있다. 그런 날에는 털이 많은 개와 고양이를 번갈아 쓰다듬으며 그들에게 일방적 위로를
요구한다.
1인과 함께하는 삶은 쌍방향일 때도, 일방일
때도 있다. 서로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함께
일하고 생활하면서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을 없애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 다른 마음, 다른 인격, 다른 몸인데! 아무리
말해도 바뀌지 않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지만 내 가족 중 유일하게 나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에 적어도 유추한 내용이 맞는지 정도는 확인할 수 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여보, 양말이랑 속옷이랑 같이 빨지 말아 줘요.”
“여보가 세탁기를 자주
안 돌리니까 내가 신을 양말이 없어서 그냥 돌렸어요. 근데 왜 두 개 같이 돌리면 안 돼?”
“어? 왜 안되냐고? 속옷은 속옷이고, 양말은
겉옷이잖아. 따로 빨아야지.”
“아니 그러니까 속옷이랑
양말을 왜 같이 빨면 안되냐고."
“속옷이랑 양말이니까. 그러니까 따로 빨아야지.”
“아니 그러니까 왜!” 우리의 대화는 이런
식이다. 나는 늘 해왔던 대로, 내 속도대로 집안일을 한다. 하지만 그는 내가 익숙하게 하는 행동들에 자주 의문을 제기하거나 반론을 펼친다. 말발(?)이 딸리는 나는 어떻게 해서든 논리적으로 보이고 싶어 애를
쓰지만 결국 그는 그가 맞는다고 생각되면 행동한다. 그 뒤에 따라오는 자잘한 스트레스나 언쟁은 우리가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이니까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이지만 쉽지 않다)인다. 1견 2묘와 함께 하는 삶은 체력전이며 고도의
심리전이기도 하다. 또한 무한한 이해심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들의 연속이다. 1인과는 다르게 나의 생각이 맞는지, 멍멍이와 고양이의 생각이 어떤지
알 수는 없고 그저 추측과 자기 위안의 연속이다. 인간보다 평균 수명이 턱없이 짧기에 그저 이별의 순간을
계속 준비하는 삶을 살고 있다. 순간의 귀여움이 치명적일 땐 이별이고 뭐고 생각하지 않고 그 순간에
빠져든다. 특히 1견과 함께 하는 삶에서 체력은 옵션이 아닌
기본이 되어야 한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추워도, 더워도 산책을 간다. 실외배변견에게
산책은 생명이나 다름없다. 식탐이 많은 소소에게 밥은 설명 할 필요도
없는 생체시계다. 소소, 밥? 밥 먹을 거예요?”
“…………”
그는 말이 없다. 긍정의 짖음도 없다. 다만 ‘맘마’, ‘밥’, ‘간식’ 이란 단어와 목소리의 높낮이에 반응하며 고개를
약간 기울이는 몸짓을 할 뿐이다. 그게 아주아주 몹시 귀엽다. 가끔
엄청 신날 땐 한 바퀴 돌기도 한다. “소소, 산책? 산책 갈까요? 가자!”
“……………”
여전히 말이 없다. 내가 하네스와 리드 줄을 손에 쥐면 바닥에
녹아 흘러내린 몸을 허둥지둥 일으키며 꼬리를 흔들고
입꼬리를 올린다.
소소와 너무 붙어 있어서
소소가 나에게 꼬리를 흔드는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지만 아주 가끔씩은 꼬리를 흔들어준다. 새벽에 몰래(소소는 늘 관심을 갈구하는 성향이라 소담이를 만지고 있으면 귀신같이 어디선가 나타나 엉덩이를 내 몸에 밀착시킨다. 자기를 만지라는 신호다.) 나와 소담이를 쓰다듬고 있을 때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며 꼬리를 흔들거나, 가게에 혼자 두고 나갔다 들어올 때 아주 짧게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여기서 포인트는 “아주 잠깐”이다. 1인과 거의 동급으로 오래 붙어
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나와 소소도 조금의 거리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거리를 두고 싶지 않다. 사진첩에 소담이와 소이의 사진으로
가득 채워진 걸 발견하면 어느덧 이제는 당연해진 존재, 소소에게 미안해져 빗질을 해주고 안아주고 코뽀뽀도
한다. 그리고 자기 전 하루의 마지막 간식을 준다. 침대
내 자리에 엉덩이만 걸치고 앉아 있는 소소의 늘 똑같은 사진을 또 찍어 저장한다.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나의 개가 온전히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잠이 드는 모든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 그런가 눈물 버튼이 자주 눌려서 또 코끝이 찡- 해졌다.)
체력보다는 순발력이
필수 탑재가 되어야 하는 2묘와 함께 하는 삶도 다채롭다. 일주일
전까지 1묘였는데, 금세
2묘가 되었다. 이번 생에 더 이상의 반려동물은 없을 거라며 손목에 타투도 했지만……
(다음 주에 계속) 함께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생활관점 보드를 입니다. 어떤 의견이든 전해주세요. 익명이니 자유롭게 써주세요. 다른 글에 댓글로 의견도 남길 수 있어요. 👇 |
마을상점생활관의 두 호스트의 생활의 관점을 담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