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7 웹에서 보기 Essay 01. 비난과 해결. 담배를 피운다. 군대 이전까지는 겉담배같은 흉내내는 정도로 피우다 군대에서 속담배, 그러니까 담배연기를 폐까지 넣었다 내뱉는 흡연자가 되었다. 그 이후로 몇 번 간헐적으로 멈추다 다시 피우다를 반복했고 지금은 끊을 마음 없이 그냥 피우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는 점점 흡연을 대표적 민폐로 여긴다. 그럼에도 흡연을 하는 것은 불법은 아니다. 불법이라면 KT&G는 금주령 시대 마피아 같은 것일 테다. 아무튼, 가끔 부모님을 만나러 갈 때 수원역에서 기차를 탄다. 수원역 곳곳 ‘흡연 금지’푯말이 붙어있다. 그럼에도 곳곳에서 무리 지어 흡연을 하는 모습을 본다. 흡연 금지 푯말 앞에서 흡연을 하고 싶지는 않다. 정당하게 흡연구역에서 흡연을 하고 싶다. 하지만 어느 곳에도 그 흡연구역 안내는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역사 맨 끝 공원에 흡연구역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그 흡연구역에도 ‘흡연 금지' 푯말이 붙었다. 어디에도 흡연구역은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흡연 금지만 붙여놓고 흡연구역 안내를 하지 않는 것이 불만이었다. (불법으로 할 자신은 없으니 알아서 끊으라는 듯) ‘안 피우면 그만 아니냐'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저 정당하게 하고 싶을 뿐이다. 아예 금지하지 않을 것이면 정당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법(흡연)을 유도하는 것과 다름없다. 시민들이 눈살을 찌푸리기를 바라며 ‘저 흡연자를 비난해 주세요.’라며 사회를 조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경우를 심심찮게 마주한다. 버려진 반려동물의 입양을 알아보면서 언제나 그 버린 사람을 탓한다. ‘키우지도 못할 것 왜 데려갔냐’는 비난을 종종 마주친다. (물론 비난받을 짓이다.) 입양을 시키려면 그 녀석은 버려져야 한다. 버려지지 않으면 보호소에 들어갈 수 없고, 그럼 입양도 되지 않는다. (대신 안락사 당할 가능성은 커진다.) 세상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모든 이유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만약에 반려동물을 더 이상 반려할 수 없는 어떤 이유가 발생한다면, 그 이후에 할 수 있는 선택은 뭐가 있을까. 주변에 대신 키워줄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해야 한다. 당근마켓 같은데 올렸다가는 뭇매를 맞기 십상이다. 그 다음은 보호할 수 없음에도 보호자로 남거나 버리거나다. 버려지지 않으면 그다음 보호자를 만날 가능성은 없다. 반려동물을 입양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반드시 입양이어야 한다. 펫샵에서 분양은 반려동물 문제의 근원 중 하나다. ) 모두 신중하게 입양을 하면 좋겠지만 어떤 행동이 알아서 모두 100% 이행되는 것이 있나? 그런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없다면 대안이 있어야 한다. 흡연 금지만 있고 흡연구역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 버리지 않고 다른 보호자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경우를 인간계에 대입을 하면 책임 없는 낙태반대와 열여덟 어른과 출산장려까지 확장될 수 있다.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비난만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어차피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 해결책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라고 오로지 비난만 있다면 그것은 해결을 바라기보다는 욕구 해소, 배설에 가깝지 않을까. 얼마 전 정민s는 지하철을 타고 꽃 시장을 다녀오다 장애인 지하철 시위를 마주했다. 평소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려 꽃 시장을 다녀왔고, 그와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다 자신의 생각을 생활관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다. 대략 내용은 ‘시위를 비난하는 시민에 많다는 기사에 대해 시위를 하는 장애인도 시민이다. 그들의 입장도 생각해 봐야 한다.’ 정도였다. 13일 기준 69일째 진행 중인 시위라는데 대선 때문인지, 지하철을 탈 일없는 우리는 알지 못했다. SNS 상에서 우리와 이웃한 누군가의 피드에서도 보지 못했고, 알고리즘(?)으로 추천하는 뉴스에서도 추천은 없었다. (있었지만 무관심으로 스크롤 됐을 지도) 검색을 해보고 나서야 꽤 많은 기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라는 듯 욕먹을 각오를 하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라는 분들이 시위를 한다고 했다. 정민s의 스토리를 보고 낯선 누군가가 긴 장문의 DM을 보내왔다. ‘한 달 가까이 지속되는 이 시위를 제대로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몇 번의 DM이 오고 갔지만 정확히 어떤 것을 문제 삼는 것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같이 욕 해달라는 것인가?’ 어쩌면 이런 반응을 겪을까 싶어 SNS 상에서 보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위대를 두둔하면 불편을 겪는 쪽의 비난을 받거나, 불편을 겪는 시민의 비난에 동조하면 시위대 측의 비난을 받을지 모른다.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현명해 보이기도 한다.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는 그들만의 독특한 방법은 아닌듯싶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마이클 셀렌버거 지음, 부키 펴냄, 2021)은 영국 런던의 출근시간, 급진적 환경단체의 시위 묘사로 시작한다. 비난 즉, ‘어그로’로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이다. ‘차라리 욕먹을 짓을 해서 관심을 챙겨 우리의 의견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태도다. 관심 끌기 쉽지 않은 과잉 시대로 넘어가면서 생긴 행동인가 싶기도 하다. 이번 시위가 역사상 마지막 지하철 출근 시위로 기록될까? 출퇴근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언젠가 또 있지 않을까? 어차피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 비난보다는 해결책을 고민하는 편이 옳다. 근데 해결책이 있을까? 그들의 요구를 그냥 들어주면 끝나는 걸까? 그것을 위해 힘을 모아 비난의 화살을 정부로, 지자체로 옮기면 해결되는 걸까? 그렇게 해결이 되면 끝나는 것인가? 매번 그렇게 하면 되는 건가? 완벽하게 모두 만족하는 사회는 없다. 부당한 사람이, 집단이 없는 그런 세상이 있을까? 없다면 그들이 혹은 우리가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어떨까. 가끔 외신을 통해서 (행위) 예술과 시위가 결합해 사회적 이슈를 끌어 오르는 것을 접할 때가 있다. (궁금하면 #저항예술 로 검색하면 꽤 많은 이미지를 볼 수 있다.) 빨간 띠를 이마에 두른 남성 이미지에 ‘단결 투쟁’ 문구로 70-80년대 프로파간다 이미지를 보는 듯한 xx연맹, xx연합의 랩핑 차량을 흔하게 본다. 시대의 커뮤니케이션은 계속 변화하는데 어느 집단이 사회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은 70-80년대 방식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듯싶다. 어쩌면 약자들이 점점 (그들끼리만) 고립되어 가는 것이 한 이유일 지도 모르겠다. ( 파타고니아에서는 작은 환경단체를 모아 마케팅 워크숍을 제공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 예산 많은 자본가를 상대하는 광고계까지는 못하더라도 다양한 예술가, 시민들과 교류하면서 드러내는 방식을 좀 더 발견해 보는 게 어떨까. 정부도 그런 자리를 지속적으로 제공한다면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욕먹으면서 행동하는 그들도, 부정적 비난을 해야 하는 시민도 누구도 득 될 것 없는 이런 시위가 새로운 시각을 주는 어떤 예술적 자극으로, 예술적 퍼포먼스로 진화되었으면 좋겠다. 기왕 에너지를 모아 행동한다면 서로 득이 되는 영리한 방향으로 쓰였으면 좋겠다. 비난보다는 해결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언급하지 말라’는 DM보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는 DM을 받았으면 좋겠다. from. 형진c Essay 02. 날카로운 칼, 가족 “야, 가족이니까 이런 말 하지, 누가 이런 말 해주겠니?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잖아. 가족끼리 그런 말도 못 하니? 가족과 언쟁(이라고 쓰지만 일방적, 뒤통수 가격 같은 그런 것이다.)이 있을 때면 내가 제일 많이 듣는 말이다. “야, 언니가 생각해서 하는 얘기야. 기분 나쁘게 듣지 말,,,,,”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기분 나쁘게 듣지 말라는 말이 앞에 나오면 무조건 기분 나빠질 말이라는 거.) (흘려버리라고 말할 거면 입 밖으로 내뱉지 말지어다. 제발.) 명절이나 가족들의
생일에 다 같이 모이는 자리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꺼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제법 부유한 집안에서
부족한 것 없이 화목하게 언니와 남동생, 아빠와 엄마 모두 즐거운 인생을 함께 살았다 생각했고, 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은 우리 가족(아빠, 엄마, 언니, 남동생) 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착각이었는지, 변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무엇이 변하지 않는 사실이고 무엇이 변한 건지 누가 맞고 누가 틀린 건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가슴속에 ‘가족이니까’라는 이름의 칼을 숨기고, 겉으로는 ‘가족이라서’라는 이름의 방패를 들고 살아가는
것 아닐까? 필요하면 언제든 방패 따위는 던져버리고 재빨리 칼로 찌를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from. 정민s 화병꽂이 no.07 봄이 오려나
봐요!!!!!라고 첫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날씨 왜 이렇죠? 너무 추워서 오늘 새벽에 꽃시장 다녀올 때 지하철 난방 안 해주신 기사님 엄청 원망하며 하루를 시작했어요. (글 쓰고 있는 지금도 너무 추워요 - 40년째 수족냉증러로 살고
있음.) 그럼에도, 제 마음속에는 이미 봄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봄”이라기보다는 겨울과
봄 사이에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미모사와 수선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죠. 저에게는 소담이라는
아주 귀엽고, 귀여운 만큼 뚱뚱한 고양이 가족이 있어요. 그
녀석 덕분에 이 고운 꽃을 집으로 가져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저 역시도 이 레터를 보시는 분들과
같이 사진으로 만족해요. 대신 생활관에서 일할 땐 매일매일 봐요. 매일
봐도 매일 예뻐요. 마치 저희 소담이처럼요. 겨울은 끝나요, 곧. 그리고 봄은 언제나 돌아와요.
겨울이 끝나는 것처럼요. 지난주의 꽃과
소재는 상태가 매우 매우 좋았어요. 딸기 캬라멜 같았던 옥스포드만 정리하고 나머지 꽃과 소재로 다시
작업한 건데, 저 버질리아라는 소재는 저에게도 어려워서 한참을 씨름했다는 소식도 알려드려요. 반드시 정복하고 말 테야!!! 많은 꽃과 소재들이
신비로운 모양을 자랑하지만, 스위트피(연보라)는 정말이지 신비 그 자체에요. 저 연약한 꽃잎으로 화려한 향을 내뿜는
걸 마주하면 (조금 과장해서) 경이롭기까지 해요. 아마도 제가
닮고 싶은 모습이라 더 매력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어요.
약할 것 같은데
강인함을 갖고 있는 듯한 그런 모습이요. 그런 어른으로
잘 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믿으며 이번 주 꽃 레터는 마칠게요! 생활책 혐오와 비난 그리고 지지(이해)는 한 끗 차이처럼 보이다가도 절대 만날 수 없는 간극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대부분 이런 절대적 혐오를 가지고 있거나 절대적 지지를 하는 부류는 극히 소수일 듯싶다. 보통은 가끔은 비난하고 가끔은 이해하고 어떨 때는 (속으로) 지지하며 목소리 없이 그냥 지금의 삶을 살아간다. 그 목소리 없는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향해서 어떤 지지가 필요한, 이해가 필요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낸다. 에세이에서 언급한 지하철 시위 같은 잘 못된 방법이 되기도 한다. 모든 것에 자신의 관점을 장착하고 살 수는 없겠지만 외면보다는 호기심을 갖는 태도 정도는 장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 말이다. 쉽게, 정체 모를 여론에 끌려가지 않는 것 말이다. 조금 확장된 상상력으로 세상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면서 호기심 있는 생활을 위한 책을 소개한다. 이와함께 집단의 목소리(시위, 캠페인)를 위한 한 권의 책을 소개한다. *아래 소개하는 생활책은 온라인생활관에서 10%할인된 금액으로 구매가능합니다. <환경운동의 11가지 도구들> ( 노라 갤러거, 리사 마이어스 지음 | 알마 펴냄 | 2017 )
“나는 공감이 비영리조직에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고객은 코카콜라 사가 자신을 이해한다고 느끼든 아니든 여섯 개로 포장된 콜라를 살 것이다. 그러한 포장 제품이 사기 쉽고 혜택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당신 조직이 추구하는 이슈에 참여하도록 무엇으로 동기부여를 할 것인가? 그러한 이슈로 하여금 사람들의 시간과 비용을 할애하도록 어떻게 연관성을 만들 것인가?” p71 ‘파타고니아’가 수십년째 지원하고 있는 ‘활동가 회의'의 주요 내용을 담은 책이다. 담론을 담은 책이 아닌 현실적인 방법을 담은 책이다. 비영리조직에 대한 많은 책을 접해본 것은 아니기에 다른 책과 어느 정도 다를지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브랜딩과 마케팅을 분야에서 일했던 관점으로 보자면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가 ‘경험'을 통해 환경운동을 브랜딩 하는 방법과 현실적 조언을 아낌없이 담은 내용으로 보였다. 환경활동가 뿐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는 누구라도 한 번은 읽어보고 이 관점을 생각해봤으면 한다. 어차피 사회라는 곳이 사람과 사람이 모여 만든 것이라 어떤 행동도 의견도 사람을 통해야 어떤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다. 아마도 이것을 꽤 많은 돈을 들여 가장 현대적으로 접근하는 분야가 상업 브랜드, 마케팅(홍보) 부분일 것이다. 배울 것이 분명 있다. 누구도 이득 없는 눈쌀 찌푸리게 만드는 집단행동보다 센스 있고 예술적인 시위(캠페인)가 넘쳐나는 곳이었으면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한다. <우리는마약을모른다>
( 오후 지음 | 동아시아 펴냄 | 2018 )
부제: 교양으로 읽는 마약 세계사 “불법행위가 전혀 없는 유토피아 사회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럼 우리는 불법행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를 모색해야 한다. 어차피 벌어질 일이라면 금지하는 것보다 통제가 효과적이다. “ p214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미국이 최대 마약 소비국이기 때문에 ‘마약과의 전쟁'을 하는 걸까? 아니면 ‘마약과의 전쟁'때문에 최대 마약 소비국이 된 걸까? 거리에서 마약을 하는 사람들은 마약을 해서 가난한 걸까, 아니면 가난해서 마약을 하는 걸까?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자 할 때는 어떤 것이 원인이고 어떤 것이 결과인지 진단을 해야한다. 세상이 너무 복잡해서일까? 그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어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는 경우들이 있다. 마약이라는 향정신성의약품은 사용해서는 안된다. 왜 안될까? 혹시 모든 마약이 사람을 흥분시켜 그 미친놈이 나를 혹은 타인을 해칠까 봐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면 당신은 마약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비난하는 혐오하는 것과 다름없을지 모른다. 영화를 전공한 저자는 학자보다는 이야기꾼으로 마약의 세계사를 이야기한다. 그만큼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신나게 몰입해서 보다 깊은 잔상을 남기는 그런 영화 같은 책이다. <혐오사회> ( 카롤린 엠케 지음, 다산초당 펴냄, 2017 )
부제: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 “증오는 그저 존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지는 것이다. 폭력 또한 단순히 거기 있는 게 아니다. 준비되는 것이다. 증오와 폭력이 어느 방향으로 분출되는지, 누구를 표적으로 삼는지, 또 그러기 위해 먼저 어떤 장벽과 장해물을 제거하려 하는지, 이 모든 것은 우연하거나 단순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된 것이다.” p.233 혐오는 어디서부터 출발하는 걸까? 혐오의 대상이 되어보거나 혐오의 가해자가 되지 않으면 궁금하지 않을지 모른다. 무심코 지나가다 “짜증나" 한마디에 누군가는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릴지 모른다.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장면 묘사와 그 행간을 해석해 주는 쉽게 읽히는 책이다. 한 권의 책이 삶을 송두리째 바꾼다는 것을 믿지 않지만 이 한 권의 책이 세상의 새로운 감각(시각)을 느끼게 해줄 것임을 확언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반란의매춘부> (몰리 스미스, 주노 맥 지음 | 오월의 봄 펴냄 | 2022) 부제: 성노동자 권리를 위한 투쟁 “성산업을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성산업을 사랑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성산업과 남성들, 즉 고객들에 대한 혐오감이 성판매자에게 공감하는 능력을 뛰어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노동자들이 페미니즘 공간 내에서 벌이고 있는 투쟁의 핵심은 매춘이 상징해왔던 기존의 감각들을 과거로 떠나보내고, 매춘 범죄화가 성판매자들에게 실질적으로 어떤 작용을 하는지 논의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p.368 사실 성산업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시스젠더 남성으로 살고 있기에 한국의 많은 수의 남성이 살아온 데로 그리고 80년대에 태어난 누군가와 크게 다르지 않게 (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성산업에 대해서 접했다. 보통은 직업여성이라고 칭했다. ‘성노동자'라는 단어도 몰랐다. (매춘의 춘이 봄춘(春)자인 것도 이번에 알았다.) 무지한 세계를 살고 있었다. 이 책은 영국에서 성노동자이자 성노동자 권리 운동 활동가인 두 저자가 쓴 책이다. ( 성노동자가 지적이지 못할 것 같다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오해로 다시 한번 반성했다. ) 지적인 책이다. 성산업은 좋은가 안 좋은가. 유지해야하는가. 없애야 하는가. 그런 이분법적인 시각을 벗어나 현실적인 시각으로 성산업과 노동자를 이야기한다. 분명 이 책을 읽으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한층 더 넓어질 것이다. |
마을상점생활관의 두 호스트의 생활의 관점을 담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