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관 Host 정민의 주간 정산.
12월 23일 금요일
1년을 마무리하기 위해 일과 생활이라는 주제로 연말 정산을 했다. 신청한 분들 모두 '손님'이라는 호칭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는 분들이라 더 편안한 분위기로 각자의 한 해를 돌아봤다. 누군가는 바닥에 눌어붙은 찌든 기름때 같았던 한 해였다 대답했고, 누군가는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시간들이었다 말했다.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던 2022년이었고 생활관 역시 그랬다. 많은 작가님들을 만났고,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중에 단연 최고는 정혜윤 작가님을 만난 것. 그리고, 사심으로 구독하고 있던 레터 속 작가님-손현녕, 박혜윤-들을 뵌 것도. 이런. 오랜 팬이었던 한수희 작가님을 3번이나 만난 것. 아이고 비공개 랜선 친구 김설 작가님도! 아, 어서 작가님들께 연말 인사를 드려야겠다.
12월 24일 토요일
생활관의 여자 화장실에 온열 변기 커버를 설치하고 이틀이 지났다. 성차별이 아니라 생활관 여자 화장실은 건물 외벽에 있기 때문에 2층 남자화장실보다 더 춥다. 비싼 가격도 아니고,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이 커버 하나를 설치하는데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지 도통 모르겠다. 어쨌든 겨울에 변기에 앉을 때마다 너무 차가워서 깜짝 놀라서 "으~~~~~차가워!"를 연발했는데. 청소할 때 전기 선 때문에 약간 귀찮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12월 25일 일요일
크리스마스다. 동네 뮤지션들이 저녁시간에 공연을 준비했다. 공연 공지를 맨 처음 올렸을 때 신청자가 저조해 걱정했는데, 공연 날짜가 다가올수록 신청자들이 늘어나 서로에게 민망한 상황은 생기지 않았다. (하, 진짜 언제쯤 모객에 대한 걱정을 안 할 수 있을까??) 아티스트들이 캐럴을 준비했을 거라는 나의 편협한 생각은 처참히 깨 부서졌고, 각자가 만든 자신들만의 곡들을 연주했다. 내년에는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이 생활관에서 이웃들과 가깝게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12월 26일 월요일
개인 휴무날이다. 또 붕어빵(잉어빵이라면서요 요즘은??) 6개 사서 최형진과 3개씩 나눠 먹고 아주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오가는 길 홍승은 작가의 신작 '관계의 말들(함께 또 따로 잘 살기 위하여)'를 읽었다. 완전 초반부터 구구절절 와닿는 문장들 투성.
그래도 기꺼이 말하고 싶다. 당신의 모순과 나의 모순이 만나 서로 얼마나 엉망인지 알아주며 더 나는 관계(세계)를 만들 기회가 우리에게 있다고. 서로의 모순을 다정하게 비웃으며, 누군가 소외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 책임지려는 마음, 헌신하는 마음, 살리고 싶은 마음, 그 마음으로 살아가면 좋겠다고. 그래서 정말 어려운 이 말을 용기 내서 다시 적는다. "우리, 함께 흔들려요. 꼭 자유해요."
아, TMI인데 내 오랜 친구가 (훈훈한) 8살 연하와 연애를 시작했다. 아줌마들이 신났다.
12월 27일 화요일
새 꽃들이 들어오고, 지난 꽃들을 정리하고 빨강과 초록 그리고, 반짝이는 것들 투성이었던 작업대를 정리했다. 아직 겨울의 중턱이지만 봄의 색을 생활화에 데려왔다. 그리고 생활관 마감 후 가깝게 지내게 된 생활관 이웃들을 초대해 조촐하게 저녁을 대접(이라고 하기엔 포장음식.....) 했다. 생활관이라는 접점을 두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돈 못 벌어도 배부르다는 말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내년에는 돈도 많이 벌고 마음도 더 많이 배부르고 싶다.) 지영 씨가 붕어빵을 거의 스무 개 정도 사 오셔서 이번 주는 붕어빵을 더 이상 안 먹어도 될 만큼 먹었다. 너무 맛있었어. 엉엉엉.
12월 28일 수요일
어머님의 은퇴를 축하하는 아들의 마음을 담음 꽃다발을 만들고, 저녁에는 또 언리미티드 북클럽 멤버들과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어려운) 한나 아렌트의 책을 읽으며 답을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듯싶은 이야기들을 서로 끊임없이 뱉어냈다. 알면 알수록 말하기 어려워진다는 그 말에 우리 모두는 사유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자기 성찰은 생각하며 살고 있다는 뜻 아닐까? 거창하고 의미심장한 대화만 한 건 아니었다. 무슨 깻잎 논쟁에 버금가는 이성과 친구가 될 수 있다 없다부터 시작해 우리의 일상을 둘러싼 가벼운 이야기들도 나눴다. 신기한 건 그 이야기들의 끝에는 한나 아렌트가 말 한 것들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자연스럽게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어제 우리 좀 멋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