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아아아아아주 한가한 생활관을 지키며 미뤄두기만 했던 잡동사니 정리를 시작했다. 너무 정리가 하기 싫어 현기증이 날 무렵 손님들이 오셨다. 귀여운 커플. 한참을 구경하시더니 책을 골라 계산하실 때 조용히 고백하셨다. 중앙동에서 베이커리 카페를 작게 운영하고 계시다고. 그것도 부부가 함께! 내적 반가움이 외적 반가움이 되어버려 아줌마가 되어 부부 자영업 5년 차의 불편함에 대해 토로했다. (미안합니다, 신혼이라고 하셨는데,,,,,) 꼭 매장에 들러 빵과 커피를 먹으러 가겠노라 약속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들도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 내일 오픈 준비를 위한 준비를 하러 가야 한다고 했다. 내 그맘 알지요. 준비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걸.
생활관 외부 간판이 고장 나 간판 집 사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간판 수리는 10분도 안 걸렸는데 나랑 수다 떤 시간이 더 길다.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영업이라는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으니 할 말이 없는 게 이상한 일이지.
2월 28일 화요일
개인 휴무.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가벼운 감기 기운이 있었다. 다음 주로 다가온 가족여행에 민폐 캐릭터가 되지 않기 위해 컨디션 조절을 해야 한다. 새벽 요가 수련을 끝내고, 소소 산책까지 마치고 나서야 종합 감기약을 먹고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저녁에 일어나 또 약을 먹고 약기운에 취해 잠만 잤다. 무기력했지만 감기 기운은 사라졌다고 느꼈다. 이렇게 잠깐 쉬어 가라는 신호인가.
3월 1일 수요일
동네 꽃집 바이브란 이런 것 아닐까? 문자로 익숙하게 주문받고, 30분이 되기도 전에 완성된 꽃다발. 예쁜 꽃 있냐는 문자에 꽃 사진 보내주고 사진 보고 꽃을 고르고 화병을 챙겨와 꽃을 꽂아 또 가볍게 돌아가는 것. 이런 경험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쌓여갔으면 좋겠는데 5년 차인 지금도 여전히 소수만이 그런 꽃 생활을 즐긴다. 부담 없이 생활화를 이용했으면 좋겠다. 무례하지 않게 하지만 가볍게. (어렵나??)
3월 2일 목요일
생활관 휴무
병원에 결과를 들으러 다녀왔다. 걱정했던 "원인 불명"은 다행히(?) 아니었고, 대신 천식 진단을 받았다. 어떤 수치는 경계선 상에 있었고, 또 어떤 수치는 매우 심각하게 높았다. 결국 흡입기를 아침저녁으로 하게 되었다. 그냥 단순히 흡입하는 예전에 익숙하게 했던 것 대신 아주 조금은 새로운 방식의 흡입기였다. 스테로이드 성분이라서 사용 후 반드시 가글을 해야 하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구내염에 걸릴 수 있다고 하시는데, 구내염이란 단어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지난 1월 헤어진 해순이었다. 우리 해순이는 뒷마당 흙 속에서 봄을 맞이하겠지.
의사선생님께서는 운동의 강도를 점진적으로 증가시키는 아주 긴 싸움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스스로 한계를 알아차리고 약간 조짐이 보이면 휴식을 충분히 취하고, 다시 시작하라는 식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비단 나의 폐 기능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닌 것 같았다. 인생도 그렇지 않나?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생활관에서 최형진과 만나 생활관 구조 변경에 대한 1차 계획안을 서로 공유했다. 올해는 정말로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돈을 따라가면 안 된다고 얘기하는데, 돈 생각 안 하고 일했더니 남은 건 급격히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보며 얻게 되는 불안감 뿐이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구조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저녁 수련을 하러 갔다. 평소에 잘 되던 동작들이 하나도 되지 않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랬다. 아프지 않았던 곳도 아프기도 했고. 원래도 잘 참았으면서 괜히 기침이 나올까 긴장하느라 숨도 부드럽게 쉬지 못했다. 가슴과 어깨가 열리는 느낌이 조금 났던 우르드바다누라도 할 수 없었고, 머리 서기도 다칠까 두려운 마음에 압도되어 전보다 안정적이지 못했다. '왜 이것밖에 못하지?'라는 질문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선생님만 믿고 따라가면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흐려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천식이라는 단어를 다시 듣게 되어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나 보다. 괜찮지 않았던 것이다.
3월 3일 금요일
이른 새벽 꽃 시장으로 향했다. 예쁜 꽃들은 언제나 내 시선을 사로잡지만 작은 꽃집 자영업자에게 끝없이 오르는 꽃값은 잡았던 꽃을 놓았다, 잡았다,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하게만 할 뿐이었다. 수요일이나 금요일에는 꽃 동지들이 꽃 시장에 출동하는 날이다. 언제 봐도 반가운 사람들과 일 얘기, 사는 얘기를 하다 보면 좋았다 시무룩했다 난리도 아니다. 다 똑같다. 비슷한 시기를 우리는 그저 함께 지나고 있는 중인 것이다.
부지런히 꽃 컨디셔닝을 하고 비워졌던 화병 칸을 채워두고 나니 비록 지갑은 얇아졌지만 마음은 배불렀다.
보라씨와 규성씨, 그들의 주니어도 함께 생활관에 왔다. 그들은 언제나처럼 화병을 챙겨와 꽃을 고르고 생활관에서 익숙한 시간을 새로운 존재와 함께 보내고 갔다. 그들의 연애, 그들의 결혼, 그들의 출산과 육아라는 새로운 삶 속에서 나의 꽃이 늘 함께였다니 감사할 일임에 틀림없다. 꽃을 하길 잘했다. 꽃은 나를 괴롭게 하지만, 아주 드물게 이런 환희를 안겨주니까 괜찮다.
정우성 작가의 요가 에세이를 구입했던 손님이 조용하고 귀여운 아들과 다시 생활관을 방문해 주었다. 아들은 이제 개원해서 유치원에 가기 시작했고, 엄마는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을 얻었다고 했다. 내가 추천했던 요가원에 주말에 다녀오실 예정이라고 했다. 뿌듯하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나의 요가 스토리를 보시고 요가를 시작하셨다고 전해주신다. 각자의 이유로 요가 매트 위에 섰겠지만, 요가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공통된 대화 주제가 하나 더 생겨났으니 우리는 이렇게 연결되었다.
3월 4일 토요일
방금 구워진 애플 크럼블 파이를 먹은 상필씨와 은서씨(은서씨 이름을 여태 몰랐는데, 우리가 만난 지 2년이 지난 이제서야 여쭤봤다;;) 커플. 내가 너무 좋아하는 커플. 두 분 모두 러블리 그 자체.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들이다.
오랜만에 은호씨도 새로운 직장으로 옮긴 뒤 첫 방문이라 새로운 직장에서의 생활도 물어가며 안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러다 마주친 은호씨의 전 직장 동료들. 서로 놀라며, 반가워하며 그들의 언어로 대화를 다시 이어 나갔다. 아 정말 '외국 같다.' (외국어 들리니까 외국 같지)
서로 계획하지 않은 동선 속에 생활관이 있고, 그러면서 우연한 만남이 하루의 에피소드로 남으면 그것도 참 반가운 일이다. 생활관을 하면서 이런 장면을 종종 목격하는데, 그럴 때마다 생활관을 운영하고 있는 나 자신이 뿌듯하고 대견하다.
저녁시간에는 창영씨도 얼굴을 보여주었다. 정말로, 마스크 없는 그의 얼굴을 우리가 알고 지낸 지 2년 만에 처음으로 마주했다. 그러고 보니 한 손님도 내게 마스크 안 쓴 얼굴 처음 뵙는다 얘기해 주셨네. 우리, 정말로 잊고 있던 일상을 찾아가는 느낌이 든다.
3월 5일 일요일
오픈 시간도 되기 전 꽃 주문 연락을 받고 뚝딱 뚝딱 호로록 만들었다. 꽃을 많이 사입한 날에는 꽃다발 만드는 일도 즐겁다. 트위터에서 내가 좋아하는 분이 아침에 이런 말을 하셨던 게 기억난다. "좋아하는 일은 곁에 두는 게 좋더라고요. 그리고 [일]로 하는 건 내가 잘하는 걸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살아보니, 제 경우엔 그렇더라고요." 나에게는 꽃이 잘 하는 일보다는 좋아하는 것에 더 가까웠는데 이제는 잘 모르겠다.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경계도- 그냥 하루하루 체크 박스에 v 표시하듯 살아내는 느낌이다.
확실히 날씨가 따듯해졌다. 밝은 귤색의 덱체어를 오늘 처음으로 내놓았다. 생활관 외부에, 해순이가 지내던 겨울 집 옆으로 손님들이 앉기 시작하더니 빈자리 없이 자신들만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봄이 오긴 왔나 보다.
처음 만나는 손님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반가워 그들과 함께 걸으며 꽃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 마음이 좋았다. 좋은 기분을 꽃으로 배가 되게 하고 싶었던 그 마음 말이다. 그 마음이 예뻐서 꽃을 더 예쁘게 만들어 드렸다. 내 마음 알려나 몰라.
다음 주의 주간 정산은 생활관 이야기는 월 화 수가 될 예정이다. 목요일부터 나는 2023년 두 번째 효도관광을 가기 때문에 "또" 베트남의 이야기를 전하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