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일 월요일
엄청나게 바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멍-하니 있었던건 아니었던 주말이 끝났다. 개인적으로나 일적으로 폭풍같던 토요일의 여러 행사가 끝났다는 사실만으로도 홀가분했다. 주말 행사를 핑계로 미루었던 일들을 처리하기 좋은 월요일이다. 조용하고 또 조용하다.
정적을 깨준 창영씨. 떡집을 했던 창영씨는 종종 갓 만들어진 떡을 들고 생활관에 들러 맛있는 떡을 주고 간다. 덕분에 떡을 좋아하는 나의 입맛은 상향평준화가 되어 가고 있다. 늘 받기만해서 오늘은 커피를 좋아하는 창영씨에게 맛있는 커피를 내려 드렸다. 창영씨는 표현에 인색하지 않고, 솔직해서 좋다. 닮고 싶은 점이다. 창영씨는 호의를 거절하지 않고,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할 때 거짓이 없다. 멋진 분이다.
창영씨가 다녀가시고 다시 조용한 생활관이 이어졌다. (아이 참, 이렇게 익숙해도 되는거야?) 다시 고요를 깬 손님, 현주씨가 오셨고 우리 둘뿐인 생활관에서 여러 이야기 보따리들을 풀었다. 술 없이 할 수 없는 얘기들을 우리는 이렇게나 맨정신에 잘도 한다. 가게 주인과 손님의 관계라기엔 이제는 모호하다,
4월 11일 화요일
개인 휴무
오래 쌓아두었던 401호 유리창 청소를 하는 날. 전문 업체에 의뢰를 했는데, 어떤 기준으로 그걸 나누는 지 잘 모르겠지만 오래된 오염은 청소가 안된다며 아주 약간 뿌연 창문을 남겨두신 채 떠나셨다. 100% 만족을 하지는 않았지만 전에 비하면 투명도가 상승했으니 그걸로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 그리고 유리창 청소를 했던 오늘. 봄비가 많이 내렸다. 아하하하하하하하, 신난다.........
4월 12일 수요일
4월 말에 예정되어 있는 큰 협업 프로젝트 미팅이 늦어져 꽃 사입은 하지 못하고 대신 어여쁜 화병들을 많이 했다. 생활관 이웃들이 좋아하는 화병을 다시 채워 놓았고, 새롭게 내 눈에 들어 온 하얀 유리 화병들도 들여왔다. 너무 예뻐서 이번 어버이날 꽃 디자인에 쓸까 했는데, 크기가 작아서 상품성이 많이 떨어질 것 같아 포기했다. (어버이날, 생활화에서 카네이션 사시는거죠 다들?? 그쵸??)
정인씨가 가장 친한 친구의 이직을 축하하고 싶다며 꽃다발을 부탁했다. 어떤 스타일의 꽃을 좋아하는 지 아니까 잘 맞춰 엮어 드렸다. 역시 좋아한다. 나도 좋다. 취향을 알고, 취향을 말하고, 공유하는 것.
4월 13일 목요일(생활관 정기 휴무)
생활관 정기 휴무
아침부터 시작 된 미팅은 꽃시장에서 농장으로 이어지고, 세팅 현장 답사까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일정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함정은?? 아직 계약서 싸인도 안했다는....) 꽃동지들과 밥을 먹고 여러 경우의 수를 예측하고 디자인을 쌓아 나갔다. 그러다 안전 문제로 모든 디자인이 물거품 되어버렸다. 인어공주가 사라져도 이렇게까지 허무할까 싶네. 와르르, 와장창, 바사삭. (내 멘탈 나가는 소리임.)
시간은 흐르고, 뭐 어떻게든 해결되게 되어 있으니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동료들이 있다는 건 이럴 때 함께 으쌰으쌰 할 수 있다는 것!
4월 14일 금요일
빈 매대를 채우기 위해, 동그란 알사탕 같은 작약을 원하는 분들을 위해 꽃 사입을 다녀왔다. 화려해보이는 꽃 대신 수수하고, 소녀같은 느낌의 꽃들을 샀다. 그 중 유독 좋아하는 스프레이 카네이션과 스톡으로 작은 다발을 만들었다. 생활화 어버이날 2023년 버젼 첫 샘플인데 들어가는 꽃 양에 비해 크기가 작아 상품성이 떨어진다. 그렇담, 주저 없이 탈락! 4월 중순인데 샘플 디자인이 하나도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올 해는 정말 카네이션 많이 팔고 싶은데!! 은유 작가님의 말처럼 ‘하고 싶다’는 기분만 느끼려고 하지 말고 일단 해야겠다. 뭐라도. 무슨 개떡같은 디자인이라도. 일단 하자.
4월 15일 토요일
텃밭클럽이 있는 토요일. 잡초를 뽑아야 하는데, 비가 제법 많이 내렸다. 조금 뽑다가 그냥 포기하고 생활관에 모여 수다를 떨었다.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도 했고, 고작 이 작은 텃밭 하면서 농사 짓는 농부들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것도 같다고도 했다. 음식을 되도록이면 남기지 않으려고 한다고.
텃밭클럽이 아니었다면 나는 느껴보지 못했을 감정이다. 혹시 느끼게 되었더라도 지금보다 한참 늦게 깨달았을지도.
4월 16일 일요일
아침 8시에 성수에서 미팅. 대기업 CEO들처럼 일요일 아침에 스타벅스에서 커피랑 샌드위치 사서 먹으면서 미팅 및 세팅 스터디. (와- 몹시 멋진 커리어 우먼 느낌이잖아??) 돈 받은 만큼 움직여야 한다는 게 너무 자본주의에 찌든 느낌이지만 또 그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움직이는 중이다.
생활관이 바빠질 시간에 맞춰 대도시 둠칫두둠칫 성수에서 한적한 안산으로 돌아왔다. 숨이 막혔는데, 한대앞역에 내리자마자 숨통이 트였다. 서울쥐가 시골쥐 다 되었네.
한적한 안산만큼 생활관도 한적해서 좋으면서 싫었다. 한적함이 좋았고, 손님 없음이 싫었다. 노모를 모시고 오신 가족분과 눈인사를 나눴고, 나와 동갑이라고 반가워하셨던 문소리 배우의 씩씩함을 닮은 (요즘 제가 퀸 메이커에 빠졌어요?! 이경영 씨가 옥에 티....) 손님과 그의 남편과 아이에게 안부를 묻고, 짧은 대화를 이어갔다. 주말에는 뵙기 힘든 현주씨도 오셨고, 오랜만에 정아씨도 오셨다. 규성씨와 보라씨와 그들의 주니어까지 함께 들러 꽃을 사셨다. 그리고 이름이 기억 안나는 손님과 또 손님들. 마감시간이 다가올수록 손님이 더 이상은 오지 않았으면 했다. 그럼 안되는데 너무 졸리고, 그래서 눕고 싶어서 어서 빨리 시간이 흘렀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오늘을 살자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 해놓고 몸이 피곤하니 모든 게 다 무거웠다. 어깨도, 눈꺼풀도, 환대하는 마음도.
아, 역시 체력이 제일 중요 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