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7일 월요일
월요일은 파트너 형진의 개인 휴무날이다. 혼자서 가게를 보는 날은 다른 날보다 긴장을 한다. 이상한 손님이 올까 봐, 혼자 있는데 음료랑 샌드위치 주문 동시에 올까 봐, 꽃 주문 들어왔는데 음료 손님들 동시에 올까 봐. 실은 그냥 하면 된다. 도움이 필요하면 거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형진에게 도움을 청하면 그만인 걸 나는 언제나처럼 걱정을 먼저 한다. 그렇다. 걱정은 그 일이 제발 일어나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라고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그랬다. 손님이 많았고, 심지어 샌드위치 주문도 꽃 주문도 있었다. (내 정신 줄 잡어)
조금 한가해진 틈에 은지 씨가 왔고, 우리는 서로의 성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들끼리.(키득키득) 저녁시간에는 우디 보호자님이 우디 없이 다른 일행과 함께 오셨는데, 보통 멍뭉이들이 없으면 보호자들을 못 알아보기 일쑤인데 우디 보호자님은 잊지 않고 기억해 냈다. 만화에서 나올 것만 같은 맑은 눈망울을 어찌 까먹겠어!! 영업 마감 시간을 8시로 알고 계셔서 느긋한 무드를 깰 수밖에 없어 아쉽고 죄송했다. (허지만, 나의 시간도 중허니께)
이상한 손님도 없었고, 손님들과 대화도 많이 했고, 바빴지만 정신 줄을 잘 잡았다. 월요일, 한 주의 출발이 좋다!
4월 18일 화요일
개인 휴무
아무런 외부 일정이 없는 휴일은 정말이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좋다! 귀여운 멍뭉이 정팔이네(=오늘의감성오감헤어)가서 부스스 펌을 하고, 낮잠도 늘어지게 자고, 냉장고 청소를 했다. 본가와 시가에서 보내주셨던 절임류들이 약간 화석이 될 것 같아 버리고, 씻고, 담고, 정리하고를 3시간 반복했다. 그러다 구석기시대에 만든 것 같은 레몬청이 담긴 유리 통을 깨뜨렸다. 청소가 어색한 나는 청소 집중력이 오래가지 못하나 보다. 소담이와 소이를 가둬두고 계획에 없던 바닥 청소까지 했다.(억울해. 계획에 없었는데) 시간이 흘러 요가원에 갈 시간이 되었는데 예정에 없던 바닥 청소를 하는 바람에 내 시간이 없어져서 갈지 말지 고민했다. 고민하다 결국 가기로 했고, 고민하다 시간이 흘러서 또 시간에 쫓겨 요가원으로 향했다. (이 패턴 스스로 알면서 왜 계속되는 건지 아시는 분??) 요가를 함께 하는 건 어렵지 않다. 요가원까지 가는 게 어려울 뿐. 2시간 남짓 수련을 하고 돌아오는 길은 생각도 가볍고, 몸도 가볍다. 늦은 오후에 깨뜨렸던 레몬청과 끈적거렸던 바닥 따위는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4월 19일 수요일
동네 가게에 평일 오전 시간에 손님이 없는 건 국룰 맞죠?? 그 고요를 깬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안산에 생활관 같은 복합 공간이 없어서 아쉬웠다는 얘기에 에리카 앞에 A.P 커피 앤 베이커리를 추천했다. 공간에 진심인 분인 걸 알기에 가까이 사는 분들이 자주, 오래 이용해 줬으면 좋겠어서-
오래 머물다 나간 그는 컵을 반납하면서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여전히 낯설다. 되려 감사의 인사를 받는 게. 기계적으로 나오는 형식적인 고정 값의 감사가 아니라 정말로 고마워하는 그 음성 말이다.
기분이 좋아져서 새로 구입한 브라우니 틀에 브라우니를 구웠다. 망했다. 맞는 사이즈의 유산지가 없어서 있는 것으로 두르고 구웠는데, 꺼내면서 다 부서졌다. 더 식혔어야 했나, 진짜 유산지가 원인이었나, 레시피 자체가 이상했나 여러 변수를 생각하다 맛은 좋아서 그냥 생각을 멈췄다. 왜?? 나 퇴근시간이 되었거덩요!!!! 모양은 망했지만 맛은 좋은 브라우니를 혜민 작가와 승호 씨에게 조금씩 내어드리고 마음 가볍게 퇴근했다. 아 몰랑!
4월 20일 목요일
생활관 정기 휴무
샌드위치도 판매를 시작했고, 다른 메뉴들도 시각화를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우리끼리 사진을 찍고 포스터 제작을 시작했다. 카메라를 꺼낸 김에 다가오는 5월 카네이션 판매 증진을 위해 꽃 촬영도 함께 했다. 간단한(?) 일정을 시작으로 생활관 앞 잡초 뽑기와 낙엽 쓸기까지 마치고 나니 신기하고 억울하게 저녁 7시(생활관 마감 시간)가 다 되었다. 내 휴무 어디 갔니. 어디로 갔니, 휴무야. 대답을 좀 해봐.
4월 21일 금요일
생활관은 파트너 형진에게 맡기고 나는 성수로 향했다. 좋아하는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 현장 세팅의 날이 코앞이라 몸도 힘들고 마음도 고되다. 하루 행사 후 철수가 아닌 5주 동안 유지되어야 하는 현장이라 고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지만 동료들과 함께 하나씩 그 더미를 줄이고 있다. 아침 8시까지 성수동에 도착해야 하는 일정 자체가 힘들긴 하다. 새벽에 부지런히 움직여 소소 첫 배변을 하고 아침식사를 챙겨주고 한가한 지하철에 올라 책을 읽다 졸다를 반복하다 보면 성수역에 도착한다. 플로리스트 동료들과 회의를 하고 시뮬레이션을 하는 동안 생활관의 안부가 궁금해 형진에게 연락을 해보면 손님이 있다, 없다 등의 짧은 답이 온다. ‘손님이 많네’의 답장을 받으면 기분이 오르락 하고, ‘다들 놀러 갔나 봐. 소소랑 나뿐이야’라는 답을 받으면 다시 기분은 내려간다. (외부 작업의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지,,,)
12시간의 고강도 업무를 마치고 다시 지하철 여행을 시작하고 한대앞역 앞에서 기다리는 소소와 함께 밤 산책을 하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냈다. 어제가 별로였어도, 내일이 걱정되어도 우선 오늘 하루 잘 살아냈으니 어서 401호로 돌아가 소담이와 소이를 쓰다듬으며 잠들고 싶다.
4월 22일 토요일
화장실 청소가 늦어졌다. 그래도 해야 하니까 변기 구석구석을 닦고 물에 휩쓸려 와 배수망에 걸려 있는 먼지 찌꺼기들을 줍고 허리를 두드리며 나와보니 손님이 와 계셨다. 지구의 날에 맞춰 더 이상 맞지 않는 옷들을 위탁하러 오신 지현 씨. 나는 목이 칼칼하고 시야가 뿌연 상태인데 대기질 정보상으로는 ‘보통’이라 그런지 지현 씨도 바깥 자리를 택했다. 커피를 준비하고, 산책 나가신 소소의 안부를 전해드리고, 본가에서 (사서) 보내 준 진짜 맛있는 대저 토마토 세 알을 함께 드렸다. 언제나처럼 게으른 자의 오픈에는 시간의 압박이라는 형벌이 내려진다. 마음이 바빠졌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손님이 또 오셨다. 이런. (생활관 이제 돈 좀 버나??) 샌드위치와 요거트를 주문하셨다. 손님이 없는 가게에서 일하다 보면 음료가 아닌 제조식(??) 주문이 동시에 들어오면 실제보다 더 바쁘다. (일 못하는 사람들이 손만 허공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스타일) 괜히 마음이 바빠지면 오히려 속도를 더 늦춘다. 회사 생활 때부터 몸에 익힌 습관이다. 속도를 조금 늦추면 생각의 틈이 생겨 집 나간 정신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손님들은 형진이 오후 출근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고, 그 뒤로도 이어졌다. 이번 주는 평일에도, 주말 오전에도 손님이 적지 않았다. 신기하고 감사하다.
준. 소희 감독도 생활관에서 소소를 사이에 두고 작업을 하다 갔고, 조금 통통해진 우디네 가족도 2층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 갔다. 이름을 아직 모르는 독서 청년도 평일이 아닌 주말에 책을 읽으러 왔다. 그리고 처음 만나는 손님들도, 그들의 가족들도.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생활관, 누군가에게는 아직 낯설고 어색한 공간. 두 공기의 흐름이 공존하는 공간, 우리의 생활관 주말의 모습.
4월 13일 일요일
어제는 오픈하자마자 손님들이 있어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밥도 든든히 먹고, 재료 준비도 두둑하게 했는데 오픈하고 두 시간이 넘게 손님이 없었다. (장사란 이런 것)
생활관 길고양이 급식소에 며칠 전 소소와 함께 발견한 뉴페이스가 등장해 그 녀석의 밥과 츄르를 따로 챙기느라 한가한 시간을 야무지게 보낼 수 있었다. 개와 고양이의 세계에 눈을 뜨고 나니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게 사랑이고, 또 모든 게 고통이다. 이들을 알지 못했던 세상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돌아가겠다고 다짐하다가도 그들이 주는 사랑에 웃음 짓거나 그들로 인해 타인들과 연결되었음을 깨달으면 지금 이렇게 살겠다 다짐한다. (오락가락해. 늘)
상임 씨가 책 픽업하러 왔다 옥상 텃밭에 잡초도 뽑고 쌈 채소도 뜯어와 마침 계신 현주 님께 조금 나눠드리고 나도 포트럭때 먹을 샐러드에 마구마구 넣었다. 병욱 씨와 그의 연인에게도 토마토를 스리슬쩍 주었다. 도아 씨에게는 못 드렸네. 이런;;
조금 이른 시간에 시작한 포트럭에서 처음 만나는 멤버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가볍지 않은 시간 동안 대화를 했다. 비건, 취미, 생활, 영화, 책, 요가, 운동까지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그 안에서 공통점을 찾는다. 인원이 적어 일찍 끝나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두 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흐르도록 우리는 계속 대화했다. 누군가는 말하고, 누군가는 들었다. 이렇게 한 주의 마지막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