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4일 월요일 - 4월 25일 화요일
월요일은 생활관 대신 성수동으로 출근, 화요일은 개인 휴무 대신 성수동으로 출근.
끝났다, 드. 디. 어.
꽃동지가 규모가 큰 현장의 세팅 의뢰를 받고, 함께 디렉팅을 했던 브랜드 팝업 스토어 세팅이 양일간에 걸쳐 작업한 설치가 끝났다. 주로 절화를 다루는 나는 외부 작업도 대부분 절화로 세팅을 했는데, 이번에는 조화 행잉과 식물 식재로 공간을 세팅했다. 또, 주로 나는 광고 촬영 현장을 위한 세팅-하루나 이틀 안에 철수 가능한 '순간의 아름다움'을 위한 세팅을 했는데 이번에는 무려 5주간 운영되는 공간 세팅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분명 나에게 들어온 의뢰였다면 규모가 너무 커서 거절했을지도 모른다.(김칫국 좋아함) 꽃 동지도 고민했다지만 옆에서 엄청 바람을 넣었다.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거라고, 내가 도와주겠다고!!(내 일에는 물렁하면서 남의 일에는 긍정적인 편)
함께 브랜드 컬러와 분위기를 고민하고, 시장 조사를 하고, 재료들을 사 모으고, 나무꾼이라도 된 것처럼 나무를 주워오고,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을 하고, 행잉 설치 작업 때문에 안전 문제도 계속 고민했다. 세팅 당일 현장에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에 당황했지만, 결론은 언제나 그렇듯 잘 마무리되었고 클라이언트도 만족해하는 걸 본 뒤에야 정말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산에서 성수동까지 지하철을 갈아타고, 또 갈아탄 다음 동료들과 만나 회의를 하고, 밥을 함께 먹으며 꽃 일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나누고, 또 함께 일을 했다. 4월의 반 이상을 이 프로젝트를 위해 시간을 썼고, 동료들과 함께 했다. 가족과 함께 변함없는 공간에서 일하는 것과는 또 다른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다. 그래서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고되지만 외부 작업은 좋다.
생활관을 지키지 못했지만, 종종 잊는 플로리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냈다.
4월 26일 수요일
홀가분한 마음으로 생활관에 돌아왔는데, 생각해 보니 어버이날이 다가오고 있어서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왜냐? 나 아직 샘플링을 못했거덩. 이래저래 언제나 무거운 마음. (자영업 이렇게 힘든 거라고 아무도 안 알려줬잖아!!)
수요일에 이렇게 손님이 없었나? 약간 유령도시 느낌으로 가게 앞에 인적도 드물다. 무섭네. 생활관에 들어오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오, 나의 구세주 현주 님! 입에 곰팡이가 필뻔했는데 현주 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따뜻한 커피를 주문하시고 전화 통화가 길어져 이미 나간 커피가 식을까 봐 냄비에 물을 끓여 중탕으로 커피의 온기를 유지시켰다. 손님이 없는 가게의 좋은 점이라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나름의) 환대를 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조용하게 마무리 한 수요일의 생활관. 손님이 없어 마음이 타들어갔지만 손님이 없어 출근해서 밀렸던 일들을 시간의 압박 없이 할 수 있었다.
4월 27일 목요일
생활관 휴무
아무런 일정도 없었고, 해야 할 일도 금요일로 다 미루고 푹 쉬기로 마음먹었다. 마음먹으니 미룬 일도 생각나지 않고 오히려 좋았다.
오전에는 소소의 친한 친구 아지와 아지 누나와 함께 호수 공원으로 긴 산책을 다녀왔고, 오후에는 바빴다는 핑계로 하지 않았던 요가 수련을 두 시간 연달아 했다. 힘들면 어쩌나 미리 걱정했는데, 너무너무 좋았다. 오히려 두 번째 수련에 더 힘이 차오른 느낌이었다. 정신없던 날들이 지나가고 나에게 평온함이 왔을 때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힘. 그 힘을 채워 넣는 일. 요가. 2022년에 요가를 만났고, 2023년에 요가와 친하게 지내야지 다짐했다. 다치지 말고, 오래 곁에 두어야 할 것.
4월 28일 금요일
본격적인 카네이션 팔이 피플이 돼야 해서 꽃 시장에 다녀왔다. 밥 먹을 시간도 만들지 않고 계속 꽃 정리를 하고, 샘플링 작업을 이어갔다. 저녁에는 '에이징 솔로'로 북클럽이 있어서 그전까지 오늘의 할 일을 다 끝냈어야 했다. 마음이 급하다.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닌데 조급하다. 급한 마음에 만들었던 샘플은 마음에 안 들어 다시 나만의 속도를 찾으려고 작업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작업.
예지 작가님이 호스트로 진행하는 북클럽. 에이징 솔로(비혼)들의 다양한 삶의 목소리를 글로 들었다. 그리고 생활관이 잘 나아가고 있다 생각했고, 내 주위에 좋은 이웃들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 생겼다는 것. 선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연대. 고맙고 든든하다.
4월 29일 토요일
아침에는 텃밭 클럽이 있고, 오후에는 그림 근육 키우기 1기 마지막 만남이 있고, 저녁에는 역사 클럽이 있다. 하루에 3개의 일정이라니. 나와 책 사장 형진이 없이 진행되는 클럽도 있고, 참여하는 클럽도 있다. 생활관 이웃들이 호스트여도 손 놓고 구경할 수는 없으니까.
상필 씨가 말끔하게 차려 입고 생활관에 들렀다. 그는 종종 혼자서 여러 분위기의 옷을 입고 생활관에 온다. 오랜 손님이다. 우리는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서로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공항이라는 교집합이 억지스럽게 있지만 굳이 엮진 않는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는 게 좋다. 쓰면서 생각해 보니 상필 씨는 주로 듣는 쪽이었네. 다음에 오시면 그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줘야지.
4월 30일 일요일
오랜만에 선아 씨가 중고 물건을 잔뜩 들고 용팔이(반려견)와 함께 왔다. 그와 그의 반려견은 정말로 정말로 귀엽다. 표현의 한계가 답답할 정도.
선아 씨의 중고 물건들은 생활관에서 인기가 많다. 옷부터 각종 텀블러나 노트 등 여러 종류의 물건이 그의 장바구니에서 나와 우리에게로 온다. 새것이나 다름없는 물건들이 대부분이고, 종종 생활관에 입고 왔던 옷이 중고 상품들 안에 놓여 있는 걸 보기도 한다. 나는 그게 좋다. 정말로 내가 입고, 내가 아끼던 물건이데 더 이상은 나에게 감정이 남아 있지 않게 되어 내놓는 것들. 물건의 주인이 그 물건을 어떻게 대했는지 어렴풋하게 보인다. 그 마음을 훔쳐보는 게 좋다.
어제에 이어 그림 근육 키우기 2기의 첫 만남이 있었다. 생활관에 처음 오는 분이 계셨다. 목소리가 좋은 주안 씨. 그의 루틴 근육이 커졌으면 좋겠다. 스페인 여행 사진으로 소식을 전하던 재연 씨와 반가운 재회를 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어색하다기보단 반갑다. 그간 밀렸던 이야기를 하고, 새로운 소식들도 전해준다. 진짜 이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