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월요일
어버이날 시즌의 마지막 날, 어버이날 당일이었다. 대부분 주말에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지 당일 픽업은 거의 없었다. 나의 꽃을 좋아해 주는, 지금은 서울로 이주해 생활관에서 자주 못 만나는 소영 씨가 꽃 픽업을 오셨다. 수줍은 듯한데 편안한 소영 씨만의 분위기를 나는 좋아한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뭔지 모를 단단함도 느껴진다. 내 꽃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 그는 오늘도 여전히 하트를 날렸다. 고맙고 예쁜 마음들을 어버이날 시즌을 보내며 많이 받았다.
현주 님도 생활관에 들러 야채를 많이 샀다며 샐러드와 드레싱을 만들어 나눠주러 오셨다. 아니, 생활관 오시는 김에 우리에게 줄 샐러드를 챙기셨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다. 그에게도 참 많이 받았다. 서로 경쟁하듯 누가 누가 더 많이 주나 배틀을 하고 있는 듯 챙겨주는 게 익숙해졌다.
백수의 삶을 즐기고 있는 상임 씨가 텃밭을 관리하기 위해 들렀다가 지난겨울에 살아남은 나의 귀한 몬스테라 새 잎과 뿌리를 부러뜨렸다. 그러고는 로즈마리를 삽목해 줬다. 응?? 뭐에 홀린 듯 순식간에 벌어졌다. 식물을 좋아하는 그에게 나는 모든 걸 맡겼다는 듯.
생활관 마감 후 처음으로 진행된 글쓰기 워크숍이 있었다. 멤버들 모두 생활관이 처음이 아닌 분들이라 어색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 나갔고, 워크숍 진행 방향을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던져가며 정했다. 그리고 이어진 첫 글에 대한 합평은 험악하지도, 마냥 따뜻하지도 않은 적당한 분위기였다. 아쉬웠던 점, 좋았던 점들을 잘 버무려 얘기했다. 다음 주에 읽게 될 글들은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5월 9일 화요일
(개인 휴무)
침대와 물아일체가 되어 양옆에 고양이들을 끼고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간 시즌 준비 때문에 미뤄두었던 여러 집안 잡일들을 하느라 완벽하게 여유롭진 못했다. 한낮에 시작하는 요가 수련도 갈까 말까 고민하다 안 갔다. 그냥 낮잠을 택했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낮잠을 자면서도 여전히 시간에 쫓긴다. 알람을 맞춰 놓고 자도 자면서 계속 불안하다. (왜 이래?!) 낮잠을 자고 일어나 청소를 하고 요즘 완전히 빠져 있는 불닭볶음면을 먹었다. 이제 엽떡 로제는 생각도 안 난다. 불닭볶음면 너무 맛있다. 엉엉.
5월 10일 수요일
와- 오후 2시가 되었는데 커피 한 잔, 책 한 권도 못 팔았다. 이러기야?
첫 손님이 오후 3시 넘어서 오신 것 같다. 텃밭 클럽 호스트인 가지. 고수님도 오고, 수미 씨도 오셨다. 마치 짜기로 한 듯 비슷한 시간에 오셔서 조용했던 생활관에 활력이 생겼다. 가끔 아무도 오지 않는 생활관을 혼자서 지키고 있으면 조금 무섭기도 한데, 든든해졌다!
수미 씨와 언제나처럼 서로의 고양이들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고양이님들 모시고 사는 우리네 인생살이 이야기.
5월 11일 목요일
생활관 휴무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 기간이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증이 내 휴무를 덮쳤다. 꼭 해야 할 일들만 처리한 뒤 아주 자비롭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생각 없이 미드를 보고, 빵도 먹고, 거실 바닥에 누워 털 가족들과 짧은 낮잠도 잤다. 계획 없이 내 본능이 이끄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그랬더니 저녁이 되었다. ‘요가원 가야 해.......’ ‘가지 말까?’ , ‘아냐, 가야지.’ 또 이 생각의 무한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제일 늦은 수련 시간에 겨우 맞춰 갔다. 시원하고 개운하고 조금 쑤신 상태의 몸으로 소소와 산책을 했다. 걷기에 너무 좋은 날씨다. 이제 곧 더워질 텐데 소소와 산책이 걱정이다.
5월 12일 금요일
오픈부터 아주 난리가 났었다. 각자 일정이 있어 아침 산책을 마친 소소가 30분 정도 혼자 있는 틈에 대형 사고를 쳤다. 꽃 시장에서 돌아와 보니 선반 구석에 둔 양파를 먹고, 사과를 먹고, 또 비닐을 해맑게 뜯고 있었다. 바닥에는 이미 양파 껍질과 흔적도 없어진 사과의 즙만 흥건할 뿐이었다. 개. 고양이에게 양파는 치명적이라 파트너 형진이 소소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나는 출근 준비도 안 된 상태로 가게 문을 열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일들을 해치웠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병원에서 작별 인사도 못한 채 반려견과 이별한 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래서 소소에게 사자후를 날린 뒤 그 상태로 병원으로 가버려서 마음이 내내 아렸다. 구토 유발제를 세 번이나 먹여도 꾹꾹 참고 구토를 하지 않아서 더 애태우더니 마지막으로 과산화수소를 먹고 거품을 뿜으며 다 토해냈다고 한다. 오후 3시까지 수액을 맞게 해야 한다고 해서 다시 마음이 불안해졌다. 별일 없을 테지만 나는 소소한테 화를 냈고, 우리는 인사를 못했기 때문에 다시 만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꾸만 보통이가 떠올라 그 순간만큼은 병의 경중에 관계없이 그냥 미쳐버릴 것 같았다. 다행히 소소는 큰 탈 없이 내 품으로 돌아왔지만 아침부터 소소가 병원에 있던 오후 3시까지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랬다. (더 구구절절 쓰고 싶지만 참아야지)
마감 시간을 30분 남기고 들어온 나래 씨.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계산대를 사이에 두고 한참을 얘기했다. 그리고 (나만 알고 있고, 그는 착각했던) 마감 시간을 주지시키며 음료를 살포시 내려놓았다. 나래 씨는 화들짝 놀랐지만 더 앉아 있지 않고 7시 마감시간에 맞춰 자리를 정리해 줬다. 우리는 서로 다 안다. 나의 시간도, 남의 시간도 중요한 걸 우리는 안다.
5월 13일 토요일
텃밭 클럽 멤버들과 줍깅을 했다. 아직 5월 중순이고 오전인데 생각보다 볕이 뜨거워서 깜짝 놀랐고, 예상했던 것보다 담배꽁초가 많아 놀랐다. 1시간 동안 생활관 앞에서부터 공원 주변을 빙 돌며 쓰레기를 주웠다. 그리고 옥상 텃밭에서 채소들을 뜯어 생활관에 다시 모여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각자 먹을 밥과 그릇을 챙겨오고, 비건과 비건이 아닌 사람들로 나뉘어 비빔밥을 먹었다. 쓰레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햇반을 가져오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감기 기운과 호르몬의 노예 기간이 겹쳐 힘들었지만 반가운 손님들이 생활관을 채워주니 버틸만했다.
소희 작가님이 야외 웨딩에서 받아 온 꽃다발이 시들었길래 물주머니를 만들어 드렸다. (이미 저세상 간 꽃 들인데 너무 예뻐하시는 그 마음이 꽃을 직업으로 대하는 나를 돌아보게 했다.)
늦은 오후에 숲님이 오고, 도아님이 오고, 누군가는 도아님이 맡긴 중고 옷을 사고, 현아 님과 그의 아이들도 왔다. 시끌벅적, 화기애애. 음악은 둠칫둠칫. 내가 아픈 것도, 소소가 아직 기운을 못 차린 것도 잊을 만큼 잠깐 신났었다.
5월 14일 일요일
계속해보고 싶었는데, 연이 닿지 않아 시도해 보지 못했던 차담. 감사하게도 북클럽으로 시작된 인연 혜나 님이 차 생활을 즐기고 계셨고, 우리의 제안에 흔쾌히 호스트를 자처해 주셨다. 커핑과 비슷한 결이지만 좀 더 차분한 분위기로 진행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선택한 일요일 아침 10시. 직접 고른 음악을 틀어놓고 조용하게 2층에서 진행된 차생활:계절다회 봄. 그저 바라만 봐도 좋아 보인다. 좋아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부럽다. 멋지고. (하나씩 시도해 보는 나와 파트너 형진도 멋지고, 대견하다.)
1층 빅테이블에는 은호 씨가 휴일 한낮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이마저도 평화롭다. 아마도 감기약을 먹은 내 몸 상태가 나른해서 더 그래 보이는 걸지도 모른다.
정말로 신혼인 성희 씨와 도환 씨가 왔다. 이번에도 중고로 팔 물건들을 잔뜩 갖고 오셨다. 음료를 주문하러 오셨을 때 결혼하고 나니 뭐가 제일 좋으냐 물었다. (이런 질문 왜 하는 거야 나 자신아?? 응??) 성희 씨는 너무 오래 연애해서 다를 게 없다 대답했고, 남편이 된 도환 씨는 다 좋다고 대답했다. 괜히 내가 머쓱해지는 답이라 괜한 질문을 했나 싶었다. 나는 어떤 대답을 기대했길래 머쓱해졌을까?
늦은 오후가 되어서 출근한 형진과 조금 이른 근무 교대를 했다. 목감기 증상만 있었는데 온몸에 힘이 다 빠져 도저히 일 할 컨디션이 아니었다.(코로나 아님) 둘이라서 좋은 점은 이런 거 아닐까? 가족이라서 좋은 게 이런 거 아닐까?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내가 흠 잡힐 일이 있더라도 조금 덜 신경 쓸 수 있는 것.
이번 한 주가 무척 길었던 느낌이다. 다음 주부터는 14주간 이어지는 오소 내일 가게 꽃 교실도 시작된다.
덜 바쁘고 더 벌고 싶은데, 그건 욕심이겠지.
아무튼, 이번 주 주간 정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