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 월요일
한가한 월요일이지만 입고되는 책들과 중고물품 등록 때문에 마음이 부산스러운 하루다. 정신이 또렷하면 그나마 괜찮을 텐데 이게 감기약 때문인지 정신이 몽롱하고 몸의 기운이 쭈-욱하고 빠져나가는 느낌이라 더 힘들다. 눈을 뜨고 있어도 어지럽고 눈을 감고 있으면 더 빙빙 돌아 철퍼덕 책상에 엎어져 자고 싶다. 정신이 희미해질 때쯤 자리에서 일어나 두유 그릭 요구르트를 옮겨 담으며 몸을 움직였다. 그때 지현 씨가 들어왔다. 나의 손목에 예쁜 타투를 해준 지현 씨, 나와 위액트 봉사를 함께 했던 지현 씨(나는 요즘 못 가고 지현 씨는 액터가 되었다는 소식,,,,, 대단해). 커피를 가져다드리며 쉬는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나는 요즘 여기저기 하고 다니는 말인데, 체력 끌어다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40대가 된 지금 내가 너무나 지쳐서 그간 관리하지 않은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고. 지현 씨도 조금 힘에 부치는데 어떤 게 잘 쉬는 건지는 모르겠다 했다. 쉬면서도 시간을 자꾸 확인한다는 우리 둘. 병이야 병;;
오랜만에 혜정 씨도 왔다. 우리의 지난 레터를 읽으며 오셨다며 소소의 안위를 먼저 살피셨다. 아주 희미하게라도 연결되어 있는 느낌. 우리가 레터를 쓰지 않으면 이마저도 끊길 것 같아 악착같이 쓰는 걸지도 모른다.
생활관 마감 후 시작되는 글쓰기 클럽. 이유는 아직 희미해서 글로 풀어쓸 순 없지만 나는 이 클럽 멤버들이 좋다. 글을 쓰고, 그 글을 공유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멤버들. 유독 내 글에 의견을 많이 주지 않아 의기소침해지긴 하지만.... 이제 두 번의 모임을 했고 남은 두 번의 모임이 벌써 아쉽다. 마지막 날에는 다 함께 피자라도 시켜 먹어야지.
5월 16일 화요일
(개인 휴무)
감기가 완벽히 낫질 않아 어떤 일정도 없이 집에서 쉬기로 했다. 한낮에 형진이 도서관 납품 때문에 잠깐 생활관을 지키는 사이 여진 씨가 와서 함께 꽈배기를 먹으며 집밥해 먹는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자취 10년 차가 전해주는 얘기를 듣고 자극받아 카레를 한솥 끓여두었다. 생활 속에서 여러 자극들을 받는데, 오래 연을 이어온 손님과 나누는 대화에서부터 받은 사사로운 자극들은 내 삶을 좀 더 내밀하게 만들어 준다.
5월 17일 수요일
새로운 꽃들을 들여왔다. 작약이 저렴해서 많이 사입하고 나도 저렴하게 산 만큼 생활화 이웃들에게도 저렴하게 팔았다. 좋은 건 놓치지 않는 은호 씨가 가장 먼저 연락을 주셔서 따로 빼놓은 작약들. 각자의 공간으로 뿔뿔이 흩어져 저마다의 향기를 내뿜어주길.
소정님도 꽃을 사러 오셨다. 새 꽃이 들어왔다는 나름의 알림을 SNS에 공유하는데 타이밍이 언제나 기가 막힌 소정님. 작약과 여러 핑크 톤들의 장미를 사 가셨다. 역시, 핑크는 진리인가.
오후 4시는 나와 파트너가 정한 각자의 퇴근 시간 중 하나다. 시간에 강박이 있는 나에게 이 퇴근 시간 이후에 일어나는 업무는 자잘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직주 근접인 우리의 삶에서 밥을 먹다 꽃을 사러 오신 손님이 계시면 밥숟가락 내려놓고 생활관으로 불려 오는 일이 허다하다. 파트너보다 내가 이런 것에 조금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오늘도 두 번이나 불려 나왔다. 나에게는 그저 짜증 나는 순간이지만 나를 찾은 손님에게는 중요한 순간일 테니 내 짜증은 조금 숨겨 둬야지. 힝.
5월 18일 목요일
(생활관 휴무)
아침 일찍 더워지기 전에 소소와 소소의 베프 아지와 함께 옆 동네 옥구공원에 다녀왔다. 차를 갖고 나온 김에 오이도까지 가서 두 덩치 모두 들어갈 수 있는 칼국숫집을 찾아 모두 함께 해물칼국수와 파전까지 배부르게 먹었다. 아주 기가 막힌 타이밍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차게 쏟아지던 비. 집에 가서 쉬기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목요일은 요가원에서 두 시간 연이어 수련을 해왔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몸이 무겁고, 곳곳의 통증이 심해 저녁 빈야사 수련을 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선생님께 아쉬운 인사를 하고 집으로 걸어와 나무늘보처럼 늘어져 마저 쉬었다. 어떤 날엔 힘들어도 요가를 하고 싶고, 또 어떤 날엔 힘들지 않아도 요가를 하는 게 어렵다. 그저 기분 탓일까? 궁금하다, 나의 몸과 마음 상태. (도대체!!!!! 일관성이 없어!!)
5월 19일 금요일
상록 장애인 복지관과 또 꽃 수업을 하게 되었다. 매년 다른 장애인 친구들을 만나 꽃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고 그들의 생각을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다는 게 나에게는 귀한 경험이다. 이번에는 시각 장애가 있는 분이 꽃 수업을 들으신 다기에 덜컥 겁이 났다. 시각 장애의 정도가 천차만별인데 나는 그저 장애를 일반화 시켜 시각장애=시력 없음으로 단정 지어버렸던 것이었다. 첫 수업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고, 모녀지간인 두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의 시각 장애는 경증이었고, 약하게나마 시력이 있어 가까이에서는 글씨도 읽을 수 있었다. 스스로 많이 깨어 있고, 많이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도 한참이나 닫혀 있는 사람이었다.
첫 수업에서는 언제나처럼 평소 텐션보다 높은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자마자 급격한 피로가 몰려왔다. 파트너에게 양해를 구하고 밥시간에 조금 더 보태 휴식을 취했다. (체력 어쩔 거야 ㅠㅜ) 급속 충전을 하고 다시 출근 한 생활관은 평소와 같이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 같았다. 늘 옆 꽃집에서 꽃을 사서 생활관으로 음료를 마시러 오는 손님을 또 마주했다. ‘내가 파는 꽃들이 별로인가?’ , ‘생활화에서는 꽃을 사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나?’ 등의 답도 없는 생각들을 하며 앞치마를 두르고 생각의 고리를 끊고 싶어 몸을 움직였다. 지현 씨(같은 지현이 아님)와 근배 씨가 등장해 소소의 마사지사가 되어 주었고 선하 씨도 눈이 부신 형광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타나 여유로운 오후 시간을 보내고 갔다. 글쓰기 클럽 멤버인 은호 씨는 마감일을 지키겠다며 생활관을 나서기 전까지 글을 끝마치는 게 목표라고 선언했다. (정말로 다 씀!)
그가 나가고 나는 설거지를 마치고 다음 날 판매할 밀크티를 만들어 놓고 생활관을 마감했다. 하루가 길었고, 마음도 피곤했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소담이와 소이를 괴롭히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5월 20일 토요일
볕은 뜨겁고 바람은 시원한, 마치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세비야에서 느꼈던 날씨, 독일 베를린에서 만났던 날씨를 내가 사는 안산에서 마주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더 여행 생각이 간절하다. 현재에 집중하지 못해 그런가 계속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오전과 오후 근무를 파트너와 바꿨다. 먹는 게 불량해져 아플 시기가 아닌데 두통이 심해졌고, 진통제 두 알을 털어 넣고 겨우 진정되었다. 볕이 뜨거워진 오후 1시에 출근을 하니 빅테이블엔 은호 씨가 손맛 좋은 액토 키보드로 글을 쓰고 있었고, 바깥 주황 의자에는 정아 씨가 요가를 마치고 텃밭 관리도 끝내고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었다. 두 분 모두에게 인사를 했고, 두 분 모두에게 지금의 생활관과 지금의 생활관에서 보는 초록 들이 좋다는 답을 들었다. 나도 좋다.
정아 씨와 의자에 나란히 앉아 각자의 커리어에 관해 이야기하다, 요가 얘기에 한참을 빠져 볕이 뜨거운 줄도 모르고 시간을 보냈다. 아무렇지 않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일. 지겹도록 말해도 지겹지 않고 그저 좋은 일.
선선해진 저녁에 시작된 우쿨렐레와 기타만으로 재즈 선율을 만든 Duo Works in Ansan - 생활관과 재즈는 잘 어울린다.(순전히 내 생각 ㅋㅋ) 생활관과 초여름도 잘 어울린다. 그래서 즐거웠던 공연. 공연이 모두 끝나고 나가시면서 연주자에게 인사를 하시고, 우리에게도 감사하다 인사해 주시는 분들을 보며 힘을 낸다. 몸은 피곤하고, 우리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마저 잘 끝낼 힘을 얻었다.
5월 21일 일요일
새벽에 마라톤 대회에 나간 형진에게 잘 다녀오라 인사를 하고 고양이들과 침대에서 오래 뒹굴뒹굴했다. (날이 흐려서 출근 안 하고 집에서 놀고 싶어서 늑장 부렸단 얘기임) 소소 산책도 늦었고, 당연히 오픈도 늦었다. 10시에 문을 열어두고 환기부터 시키는데, 이런;; 관영 씨가 10시 1분에 생활관에 들어오셨다. 당연히 일요일 오전에는 손님이 일찍 올 리 없다는 나의 오만방자한 빅데이터를 삭제해야겠다.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 의자들을 빼려는 순간, 지현 씨도 오셨다. 반성하자, 서정민!!! 느린 몸을 빨리 움직여 큰 오픈 준비를 마치고 나니 소소의 사랑 아지 누나도 새벽 퇴근 후 생활관에 들렀다. 이 셋은 모두 다 아는 사이다. 우연히 만난 이들은 생활관 외부 자리로 나가 소소와 함께 모닝커피를 마셨다. 바닥 청소를 끝내지 못한 내 마음은 분주했지만, 창문 밖으로 보이는 20대 청년들의 활기는 나에게도 전염되었다. (아주 잠깐) 시작이 좋다. 이런 날은 기분도 좋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도 비축해둔 긍정 에너지를 꺼내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그 순간에는 언성도 높아졌고, 심장도 살짝 두근거렸는데 그냥 흘려보냈다. 아니, 흘려보내려고 애써봤다. 글로 담으면 또 생각날 테고, 그러면 내가 아닌 읽는 이웃들에게도 그 감정이 전달될지도 모르니까. 흘러가렴, 감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