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관 Host 정민의 주간 정산
6월 5일 월요일
새로운 책들이 들어왔다. 바쁘다. 새로운 꽃들도 들어왔다. 더 바쁘다. 발바닥도 아프다.
일기 근육 키우기가 내 예상보다 너무 빨리 마감되어 정신이 혼미했다. 여유롭게 준비해도 될 줄 알고 책 주문도 늦게 했는데 거래처 재고 수량이 적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동동동.
바쁜 날에는 앉아서 쉴 틈이 생각보다 없다. 오늘이 그랬다. 발바닥이 너무 아프다. 발 바닥 아픈 게 싫어서 이제서야 크록스를 주문했다. 귀여운 거 좋아하는 내가 지비츠를 함께 주문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궁금해졌다. 나 자신 도대체 얼마나 모르는 게 많은 거야.
6월 6일 화요일
(개인 휴무)
남동생이 친구와 생활관에 놀러 왔다. 한 덩치 하는 친구들이라 소소를 번쩍 들어 올리며 운동을 했다. 빙수 기계를 사야 한다고 중얼거렸더니 남동생은 이제서야(장사 시작하고 첫해부터 팥빙수 팔라고 잔소리 너무 들음) 팔기로 했냐며 또 잔소리. 남동생 친구는 기계는 무조건 일본에서 만든 기계를 써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하츠유키?? 지금 이 시국에 내가 일제를 사야 하나. 대안은 중고도 굉장히 비싼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 그 돈을 지불하고 기계를 사서 팥빙수를 파는 게 맞나? 이게 맞나?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지 않나? 얼마나 더 채워야 하지? 답을 생각하려면 생각의 시간이 필요한 질문들(이래봤자 답은 뻔할 텐데)을 곱씹었다.
값이 나가는 중고 물건이 분실되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다시 CCTV를 검색했다. 의심이 끝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엊그제 꽃시장 가는 길에 마주한 개미 떼처럼 이어진다. 퓨우.
6월 7일 수요일
파트너 형진은 아주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나러 갔다. 오늘, 수요일은 평소와 다르게 나 혼자 근무한다. 혼자 일하는 날에는 식사 시간과 종류가 애매해진지 오래다. 잔뜩 물먹은 신문지처럼 무겁고 축축한 상태로 퇴근을 하고 배달음식으로 허기를 채우는 일상인데 오늘은 정인 씨가 직접 만든 장아찌와 일회용품 없이 용기를 챙겨 자신이 좋아하는 김밥 집에서 김밥도 함께 사다 주셨다. 지난번 내가 좋아한다던 그 말을 기억해 함께 먹으면 좋을 거라는 메모와 함께. 나는 정인 씨를 보며 그가 쓰는 타인을 향한 마음을 배운다. 나도 갖고 있던 그 다정함을 잃었는데, 덕분에 조금씩 되찾고 있다. 우리는 안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큰 것을. (하지만 받는 일도 참말로 좋음)
상임 씨가 브라우니 먹고 싶은데 아직 없냐고 해서 부랴부랴 만들어 드렸다. 게을러 미쳐. 뒤이어 들어온 혜민 작가님도 주저하며 브라우니가 있냐 물으셨고, 상임 씨 덕에 만든 브라우니를 자신 있게 내어드렸다.
6월 8일 목요일
(생활관 휴무)
나의 꽃 선생님이 브랜드를 만들고 지탱한 시간이 10년이 되었다. 그를 축하하기 위해 함께 힘든 작업을 오랫동안 했던 동료들과 자리를 가졌다. 축하는 축하고, 우리는 각자 갖고 있는 우울감에 대해 털어놓고 한참을 함께 걸으며, 걷다가 배가 고프면 먹으면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좋은 사람들, 잘 하는 사람들이 꽃일을 오래 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잊지 않으신 나의 선생님이자 나의 동료. 나는 아니라도 그는 꽃을 더 오래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함께 즐겁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오래오래 그의 꽃을 보고 싶고, 오래도록 그의 드립을 듣고 싶다.
6월 9일 금요일
거의 석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앞으로 매주 금요일 아침에는 꽃 수업이 열린다. 오늘도 그랬다. 난이도가 높지 않아 수월할 줄 알았던 수업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졌다. 그들에게 창의력을 내가 너무 기대했나?
보통의 생활관은 오전에 손님이 없는데 오늘은 진짜 신기하게 3~4명 정도의 손님들이 계속 있었다. 나는 수업을 진행했고 형진 혼자서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들고 다시 새로 온 손님을 응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 마음도 진작에 부산스러웠다. 그래서인지 평소엔 잘 하지 않는 실수-발로 수통을 차서 바닥을 물바다로 만들기-를 했고 형진은 (그에게는 자주 있는 일) 유리 계량컵을 깼다. 손님들의 목소리와 공기의 부산스러움과 우리의 실수가 만든 소음들이 뒤엉켜 내 정신도 엉망진창이 되었다.
병훈 씨가 지난 주의 레터를 내 눈앞에서 읽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주의 나는 지금의 나와 또 다른데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는 지난 주의 나의 생각을 읽고 있다. 괜히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부끄럽기도 하고 뜨끔하기도 했다.
6월 10일 토요일
해가 쨍쨍한 주말 아침 텃밭 클럽 멤버들과 생활관 옥상으로 출동해 당근과 파를 수확했다. 감자도 곧 우리들의 입으로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다. 신난다. 감자전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침이 고인다.
주말이라 그런가 손님들이 많이 오셨다. 지인의 추천으로 생활관에 처음 온 체리와 그의 반려인들. 차에서 내려 바로 생활관으로 들어오셨기에 공원 한 바퀴 돌며 체리가 배변 실수를 하지 않게 시간을 좀 갖고 들어와 달라 부탁드렸다. (대부분의 강아지들은 차에서 내려 바로 카펫이 깔린 실내로 들어오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나누기 전부터 배변 실수를 한다.) 흔쾌히 다녀오신 두 분과 그들의 반려견 체리는 무척이나 서로 닮아 있었다. 유기견이었던 체리를 가족으로 맞이한 그들은 ‘유기견’단어를 쓰지 않으려 애쓰셨다. 출생의 비밀도 아닌데, 함께 지낸 시간이 무려 4년이나 지나셨다는데 왜 그리 그 단어에 조심스러운지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했다. 나 역시 조심스러웠던 시간도 있었고, 굳이 소소가 유기되었었고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다 느꼈던 시간들도 있었으니까.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있으니까.
장아찌를 준 정인 씨에게 보답으로 작은 꽃들을 엮어 선물로 드렸다. 역시나 좋아하는 이에게 선물을 하는 기분은 째진다.
진짜 웃기고 억울하게 생긴 꼬마 고양이가 급식소에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 녀석이 오랜만에 다시 와서 반가운 것도 잠시, 뒷다리 부분에 엄청 큰 상처를 만들고 왔다. 손을 타지 않는 고양이를 잡아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 겁과 걱정이 많은 나에게는 아주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혼자서 갖가지 상황을 시뮬레이션 해봤다. 우선 구조활동을 하고 계시는 동네 이웃에게 두 가지 종류의 덫을 빌렸다. 병원이 운영하는 평일에 이 녀석을 잡아서 치료를 해줘야 한다. 중성화도 같이 하면 좋을 텐데 TNR 사업 여부를 또 다른 병원에 문의를 해야 한다. 언제 잡힐지 모르는 녀석을 위해 촘촘한 계획을 세우는 게 의미가 있겠냐만;;
6월 11일 일요일
’생활클럽:일기‘의 첫 인증 날이다. 나와 경림 씨를 제외한 분들은 다들 저녁에 한꺼번에 올리시려는지 밴드가 조용하다. 미션을 인증해야 하는 클럽의 호스트가 되니 클럽 멤버들을 더 독려해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이 무겁다.
오픈 준비를 할 때 소나기가 퍼붓더니 금세 멈추고 생활관 앞뒤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아침의 감사 일기 덕분인지 작은 것 하나에 감정이 일렁인다. 나를 포함한 지구인들 덕택에 계절의 변화가 모호해지고 있는 이 시점에 날씨에 관한 것들은 나의 기분을 올리기도 내리기도 한다.
'어째 오늘은 손님이 없을 것 같은 분위기다' 라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손님들이 들었나보다. 아주 적은 손님들과 만났고, 그 손님들과 다 눈맞추며 인사를 했다. 이런날도 있는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