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관 Host 정민의 주간 정산
7월 3일 월요일
토요일에 퇴원을 했고, 약간 흐리멍텅한 상태로 주말을 일하다 쉬다 하며 보냈다. 일요일에 소소가 슬기 씨 가족 앞에 놓인 코코아를 제2의 자아인 꼬리로 넘어뜨려 대참사를 수습하느라 허리도 삐끗하고, 체력이 끝까지 올라오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하려니 핑핑 돌고 엉망이었다. 그런 상태가 하루가 지났다고 뭐 기가 막히게 좋아질 리 있겠냐고. 당연히 없지.
냉장고가 또 말썽이라 윤모씨가 잠깐 왔었던 것 말고는 저녁 5시 30분까지는 손님이 없었다. 정아 씨가 그 정적을 깨주었다. 옥상 텃밭에서 잘 익은 방울토마토를 몇 개 따서 정아 씨, 나, 소소 이렇게 셋이서 나눠 먹었다. 소소도 먹을 땐 꼭 자기 몫을 잘 챙긴다. 대단한 녀석.
질문 워크숍이 있어서 6시가 넘으면 멤버들이 오기 시작한다. 보통은 호스트인 정석 씨와 칼퇴근 수호자 은호 씨가 제일 먼저 온다. 베이킹을 공부 중인 정석 씨는 오늘 마들렌을 구워오셨다. 1인당 2개씩 접시에 담아 워크숍 멤버들이 올 때마다 내어드린다. 아주 조금 수고스럽지만, 출출할 시간에 당 섭취는 바람직하니까. 먹으면서 대화하면 친밀감도 높아진다고 하니 이 정도 수고쯤이야.
거의 하루 종일 손님이 없었던 거나 다름없었던 독박 운영이었다. 이번 주말에 있는 장일호 기자님의 책을 덕분에 모두 읽었다. 손님이 없으면 없다고 궁시렁거릴게 아니라, 그 시간을 알차게 내 의지대로 쓰면 그만이다. 징징거리면 없던 손님이 어디서 튀어나오겠냐고-
7월 4일 화요일
(개인 휴무)
다친 손이 너무 불편하고, 아직 통증이 간혹 있어서 요양하는 수준으로 집에서 쉬었다. 수평 자세를 유지하며 에어컨을 틀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쉬었다. 아주 잘 쉬었다.
7월 5일 수요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그나마 오늘 아주 선선한 바람이 불었는데, 이 정도만 되어도 살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한낮에는 손님이 없다. 매년 여름마다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잘 기억은 안 난다. 매년 여름만다 ‘올 여름이 제일 덥대.’를 남발하고, 매해 겨울마다 ‘역대급 추위’라고 하지만 막상 지나고 보면 그랬나, 안 그랬나 그냥 지난 일이 된다. 이렇게 생각에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무는 이유는? 그렇다, 손님이 없기 때문이다. 주간 정산은 손님들과 나눈 이야기들이나 그 뒤에 이어지는 나의 생각들을 적는 건데 손님이 없다니!!
7월 6일 목요일
형진은 시가에 갔고, 나는 또 집에서 요양을 했다. 요양하면서 머리카락도 깔끔히 정리하고(삭발 아님 주의), 한수희 작가님이 내주신 글쓰기 과제를 열심히 했다. 책도 읽고 멈췄던 영어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마음의 불편함을 불안함과 같이 가져가기로 한 뒤로 여유라는 게 생겼다. 다면적인 나에게 다양한 감정들이 공존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왜 그렇게 어떤 감정들은 외면하기만 했을까.
7월 7일 금요일
우와- 이렇게 손님이 없어도 되나 싶다. 당연히, 날이 뜨거우니 한낮에 꼭 나와야 하는 게 아니라면 누가 나와 동네 가게에 오겠어. 하지만, 고마운 진아 씨가 주문한 책을 픽업하러 와 주셨다.(물론 내가 병원에 치료받으러 간 동안 다녀가셔서 얼굴은 못 봤지만;;) 나는 진아 씨가 참 좋다. 나의 생각이 미처 닿지 못한 부분에 이미 가닿아 있어 그곳에서 나에게 손을 내민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월간 독서가 약간 버거워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형진과 한 여름 동안에는 생활관 운영 시간을 조정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오후 4시쯤 열고 밤 10시에 닫는 정도면 어떨까? 한 여름밤에 다 같이 모여 맥주를 마시며 필사를 해도 좋을 것 같다. 온라인 모임이 분명 장소와 시간의 제약에서부터 자유롭지만, 얼굴을 마주 보고 깔깔거리며 웃다가 갑자기 울기도 하는 모습을 보는 게 더 좋다.
그나저나 얼음이 녹기 전에 시원한 상태에서 한 모금 쭉 들이켜야 제일 맛있는 두유 밀크티인데 처음 오신 손님이 생활관을 구석구석 살피시느라 얼음이 녹고 있다!!!! 큰일이다!!! (가서 말씀드려야 하나....)
7월 8일 토요일
오후로 영업시간을 바꾸고 첫날이다. 형진과 함께 점심을 먹고 있는데 바뀐 운영시간을 모르시고 찾아오신 손님이 전화를 주셨다. 오후 3시에 오픈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이 더운 날 어디서 시간을 보내실지 살짝 걱정이 되긴 했지만 생각을 길게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내가 버선발로 뛰어가 가게 문을 일찍 열 것도 아니라면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는 게 내 정신 건강에도 좋으니까.
숲속 카페에서 구슬 아이스크림 판매를 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우리 먹으라며 시내 씨(아니, 저기요 근데 시내 씨 본명이에요? 여태 이렇게 부르기만 했는데 본명인지 잘 모르겠어요?!)가 어여쁘게 서프라이즈 아닌 서프라이즈로 보내주셔서 시원하고 예쁘게 먹고 오후 영업을 시작했다.
뜨거운 볕이 남아있어 길가에 사람이 없다. 당연히 생활관도..... 어차피 우리 둘은 의논해야 할 게 있어서 얘기를 길게 하고 있던 중 정인 씨가 왔다. 숙취가 느껴지는 듯한 얼굴로. 하지만 예쁜 딸기우유 색 티셔츠가 참 잘 어울렸다. 부럽다, 저 젊음.
한참을 정인 씨와 얘기를 나누다 끊어진 형진과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브랜딩과 마케팅 쪽 관련된 저자들 섭외 얘기를 하다 정구 씨 얘기를 했는데, 갑자기 뒷문에서 정구 씨와 희원 씨가 나타났다! 소오름!! 온갖 오두방정을 다 떨며 오랜만에 밀린 이야기들을 나누기엔 시간은 짧았다. 또 찌인하게 술 마시며 서로 사는 얘기하고 싶다.
소소가 너무 예쁘다며 보러 오신 손님이 있었는데 자꾸 소소가 슬퍼 보인다고 얘기하시는데 난 그게 그다지 달갑지 않다. 뭔가 내가 소소를 잘 케어하지 못하고 있단 소리로 들려서 그런가;;
밤에 열어서 너무 좋다며 은호 씨가 생활관에서 집으로 향하며 얘기했다. 그리고 꼭 그는 영어 회화 교재에서나 볼법한 인사를 아주 명랑하게 건네는 것도 잊지 않는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혹은, “편안한 저녁 시간 보내세요!”라고.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어떤 날에는 은호 씨의 이 인사를 들으면 눈물이 찔끔 난다.
7월 9일 일요일
오늘은 오후 5시에 장일호 기자님의 북토크가 있는 날이다. 운영시간의 한 중간 시간이라 생활관 방문 목적이 북토크가 아닌 분들이 헛걸음하거나, 예정보다 일찍 공간에서 나가야 하는 건 아닐까 걱정도 했다. 원래대로라면 북토크가 끝난 뒤 마감을 하면 되는데 심야 생활관으로 어제부터 바뀐 운영시간 때문에 애매모호한 입장이 되었다.
형진은 오후 3시 오픈런 한 손님들께 오후 5시에 북토크가 있다는 안내를 하지 않았다. 내가 주문을 받았더라면 미리 말씀드렸을 텐데. 결국 손님들께 가 다시 상황 설명을 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내가 주문을 받는 게 좋겠다. 남 탓하기 싫어.
작가님도 1시간이나 일찍 오셨다. 빅테이블과 소파에 자리를 잡은 손님들은 북토크 참여자분들이었다. 일찍 오신 작가님도 빅테이블에 자리를 잡으셨고, 이미 북토크가 시작된 듯한 느낌이었다. 손님이 많았던 것 아닌데, 비슷한 시간에 몰리다 보니 정신이 혼미했다. 내 몸의 컨디션도 좋지 않으니 몸도 정신도 휘청휘청 어지러웠다.
오후 7시부터는 다시 생활관을 이용할 수 있다는 안내를 보시고 6시부터 생활관 주변을 걷고 있던 손님을 발견했다. 마음이 다시 급해졌다. 아무래도 이용 가능한 시간을 다시 조정해야겠다. 손님들을 배웅하고, 정리하고, 다시 맞이하는 일이 순식간에 이뤄졌다. 시간에 쫓겼다. 두통 때문인지 괜히 신경질이 났다. 작가님까지 보내드리고 나니 퇴근 욕구가 뿜뿜했지만, 우리에겐 아직 2시간의 운영시간이 남아있었다. 아,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