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 월요일
생활관 옥상 입구에서 깡마른 아기 고양이가 발견되었다. 아침부터 이 녀석을 구석에서 꺼내 생활관에 입소시켰다. 오후 3시 오픈하는 일정이라 여유롭게, 하지만 정신없이 소이의 친정에서 크롬 케이지를 빌려 작은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고양이 구조 회차가 늘어날수록 뚝딱뚝딱 2인 1조가 되어 이제는 제법 능숙한 임시 보호자가 되었다.옥상 꼬질이, 말라깽이의 이름 지어주기는 뒤로 미뤄두고 이 친구 살부터 찌워야 한다. 온몸에 만져지는 건 뼈밖에 없다.
저녁에 있을 텃밭+자연퇴비 만들기 강연이 있어서 간식을 사러 한양대학교 앞에 있는 AP 에 다녀왔다. 그것도 나 혼자 운! 전! 해! 서!!!! 비록 도로에 주차를 하는 과정에서 보도블록을 들이받고, 주차가 무서워 한양대학교 안쪽까지 들어갔다 마음을 고쳐먹고 돌아 나오긴 했지만 어쨌든 나 혼자 운전 2회차가 되었다.
2층에서 강연을 듣게 하고 1층에서는 손님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여름의 운영시간을 바꾼 뒤로 저녁 7시부터 시작되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고민을 한다. 결국 오늘도 영업을 저녁 7시까지만 하기로 결정하고 스크린 설치를 했다. 집중하는 게 낫다, 차라리.
나는 숲님과 꽃 관련한 행사 미팅이 있었고, 우리는 미팅을 핑계로 서로의 고민 얘기를 하고 헤어졌다.
이른 아침부터 감정의 동요가 심했던 날이었는데, 지난 일을 떠올리며 쓰는 기록은 또 신기하게 덤덤하다.
8월 15일 화요일
원래대로라면 오늘은 나의 개인 휴무일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휴무 일정을 조정하기로 하고 오늘도 함께 근무를 했다. 교외로 놀러 가기 애매한 날짜엔 생활관에 은근 손님이 많아서 미리 스케줄을 조정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손님들은 적었지만, 혼자서 운영할 때보다 마음의 부담은 적으니 다행이었다.
오늘도 이름을 아는 손님은 은지씨 뿐이었다. 분명 몇 번 뵌 것 같은 분인데 이름을 몰랐고, 처음 뵌 분들도 계셨다. 나는 꽃 진열대 정리를 하느라 통성명을 할 시간이 없었다. 은지씨와 일상의 대화들을 나누고, 복숭아도 나눠 먹었다. 나는 죽어도 딱복파. (껍질 까면서 끈적한 국물로 손 샤워하는 거 너무 싫다고!)
8월 16일 수요일
(개인 휴무)
작정하고 집에서 수평 자세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나만의 길티플레져 중 하나인 불닭볶음면 2개 끓여서 소스 또 넣어 먹기를 마치고 설거지도 미루고 소파에 그대로 누웠다. 리모컨이 손에 닿을 거리에 있는지 확인한 뒤에 고양이들을 불러 모아 그들의 뱃살을 주무르면서 형사록 시즌 1을 정주행했다. 보다가 졸리면 잤고, 자다 깨서 잠깐 물을 마시고 또 봤다.
나는 아주 가끔씩 이렇게 무용한 짓들을 해야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다. 잘 쉬었다! 으하하하하하
8월 17일 목요일
9월에 예정되어 있던 임경선 작가님의 북토크가 취소되었다. 작가님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취소 의사를 밝히셨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는 아니었지만, 아쉬웠다. 다른 날짜도 다시 제안해 주셨지만, 그 카드는 쓰지 않기로 했다. 언젠가 작가님과 다시 합이 맞는 날, 그때 그 카드를 써야지.
쉬는 날이었지만, 형진과 남은 북토크를 위한 작가님들 섭외 리스트를 수정하고 다른 행사 일정을 조율했다. 어쩌면 나는 수요일에 푹 쉬었기 때문에 오늘의 일한 것 같은 휴무를 잘 버텨낸 걸지도 모른다.
8월 18일 금요일
손. 님. 이. 없. 다.
형진과 산책을 하며 9월의 심야영업을 이어갈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시간에 특히 손님이 많은 지 없는지 예측할 수 없으니 쉽사리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자영업이란 게 그렇다. 불확실성의 연속성을 갖고 있는 업. 평일에는 원래대로의 운영시간을 고수하고, 금토일요일에만 심야로 운영하는 것도 생각해 봤다. 좀 더 고민을 해봐야겠다.
8월 19일 토요일
오랜만에 새벽 지하철을 타고 꽃시장에 다녀왔다. 생활관에 돌아오니 가을 텃밭 클럽 멤버들이 빅테이블에 가득 모여 앉아 있었다. 향이 김밥에서 주문한 김밥이 도착해서 함께 먹으며 그들의 포부를 엿들었다. 텃밭 클럽은 정말이지 내가 멤버가 아닐 때 더 부러움이 배가 되는 클럽이다.
사람들은 보통 플로리스트라고 하면 식물과 흙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 심리가 있는데(꽃을 배우지 않았던 과거의 나도 그랬다) 각각 분야가 다르다. 어떤 플로리스트는 절화만 다루고, 또 어떤 이들은 가드닝만 집중 공략해 숍을 운영하기도 한다. 각자 좋아하고, 잘 하고, 돈이 흐르는 쪽을 선택해 하는 것이다. 갑자기 나에게 식물 질문을 했던 여럿의 손님들이 급행열차가 무정차 통과하는 것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저는 절화만 해서, 식물을 잘 몰라요.”
이 대답이 가장 솔직해서 늘 했는데, 어느 순간 나의 무능함을 표현하는 것 같아 아는 선에서는 대답해 드리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식물은 종종 판매하기도 했다. 그냥 딱 거기까지만.
해란씨가 이름을 지어준 콩떡이는 이제 경계심을 제법 풀었다. 숨숨집 안으로 손을 넣어도 피하지 않는다. 밖으로 꺼내 안아들어도 도망가려고 발버둥 치지도 않는다. 품에 안겨있으면 더 이상은 달달달 몸을 떨지 않는다. 휴- 다행이다. 이제 설사만 조금 잡히면 좋겠다. 어서 좋은 가족을 찾아주고 싶다.
8월 20일 일요일
새벽 6시에 눈을 떠 아침 9시부터 시작되는 워크숍 준비를 위한 짐을 쌌다. 전날 일찍 잔다고 누웠는데도 새벽 1시였으니 하루 7-8시간을 자야 하는 나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수면 시간. 하지만 낮잠을 잘 수 있으니 마음은 괜찮았다.
옆 동네 아티스트 줄라이+숲의 참여형 프로젝트 후반부에 참여자들이 직접 만드는 꽃다발 때문에 짐을 트렁크에 차곡차곡 싣고 옆 동네로 형진과 소소와 함께 갔다. 이른 아침 산책에 소소는 신이 났다. 나도 오랜만에 외부 강의(는 아니지만)에 괜히 신났다.
무사히 마치고 볕이 가장 뜨거울 12시에 생활관까지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걸었다. 땀이 주룩주룩 흘렀지만 바람이 조금 시원해서 괜찮았다. 생활관에서 콩떡이가 흩뿌려놓은 모래를 치우고 밥을 주고 물을 갈아주고 잠깐 품에 안고 쓰다듬고 집으로 갔다. 낮잠 타임!
이런, 오늘 3시에 소설적 글쓰기 클럽이 있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형진이 출근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잠깐 눈을 감고 있는다는 게 30분을 더 잤다. 작가님도 오셨을 테고, 클럽 멤버들도 와서 음료 주문도 했을 텐데 짧은 시간 바빴을 형진에게 미안했다. 요즘 자주 시일이 가까운 것들을 깜빡한다. 시간이 없는 건 아닌데 시간에 쫓기는 느낌이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하는데도 어느 순간 까먹고 다른 걸 하고 있다. to do list 중독자였는데, 아무래도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3시, 막 오픈 시간이 된 생활관 2층에는 이미 글쓰기 클럽 멤버들과 작가님이 계셨고, 1층엔 현식씨가 다음 달 북클럽 도서인 <인정욕구>를 읽고 있었다. 다행히 다른 손님은 없었다.
지현 씨와 근배 씨가 오셨다. 빅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각자의 작업을 한다. 나도 연애할 때 연인과 함께 카페에서 각자의 일을 했었던 게 떠올랐다.
아침에 워크숍 끝내고 먹은 김치 칼국수가 소화가 다 된 것 같다. 배가 너무 고프다. 맛있고 정갈한 한상 차림 식사가 하고 싶다. 내가 그렇게 차려 먹기엔 너무 많은 에너지를 다른 곳에 소비하고 있다. 나는 왜 항상 이렇게 허덕일까.
노회찬 평전을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하신 민정 씨가 꽃을 사러 다시 오셨다. 그리고 다시 오셔서 포장지를 한 장 더 받을 수 있는지 물으셨다. 나에게는 언제나 차고 넘치는 게 포장지와 리본이 었어서, 주황색과 밝은 남색의 포장지를 드리고 리본도 같이 드렸다. 그리고 가지들을 정리하는 중에 쿠마(귀여운 멍멍이) 누나가 오셨다. 꽃을 사러 오신 거였다. 쿠마네 누나는 핫핑크와 퍼플. 여름에는 쨍한 색의 꽃을 더 많이 권한다. 더우니까. (내 맘이여) 그리고 또 오렌지색 니트를 입고 오신 도아 씨가 오렌지색 왁스 플라워를 한 묶음 사 가셨다. 매일이 이랬으면 나는 기분이 슬프지 않게 꽃집을 운영할 수 있었을 텐데. 좋고, 아쉬웠다.
도아 씨가 내게 물었다.
“사장님, 오랜만에 뵙는 것 같아요. 잘 지내시죠?”
나는 잘 지내냐는 질문에 뭐라 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데 잘 지낸다고 답하기도 애매하고, 별로라고 얘기하기엔 더 별로다. 쉬운 질문에 왜 나는 늘 어려운 생각을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