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관 Host 정민의 주간 정산
9월 17일 일요일
소설 쓰기 워크숍이 3시부터 있고, 봉현 작가님의 북토크가 5시에 예정되어 있는 날이다. 북토크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아 사전에 준비할 게 적지만 그렇다고 마음의 부담감이 없는 건 아니다. 오전 11시에 꽃다발 픽업 건이 있어서 나는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소소 산책을 마치고 픽업 건을 마무리한 뒤 오픈 준비를 했다. 지금만큼은 시간에 쫓기지 않는 삶을 사는 느낌이 들어 괜히 기분이 좋았다. 자주 흔들리고, 자주 쫓기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마음이 단단했다.
정아 씨가 어제 헤어숍에 간다 했는데 짧고 가벼운 느낌의 단발로 나타났다. 긴 머리도 잘 어울렸는데- 정아 씨는 요가할 때 긴 머리가 불편했다며 너무 시원하다고 좋아했다. 그 마음 알지, 내가. 요가 할 때 머리카락이 거추장스러워서 자꾸 미용실에 가게 되는 마음. 정아 씨도 진심이구나, 요가에. 반가워라!
현식 씨를 처음 봤을 때 분명 지금과 느낌이 많이 달랐는데, 뭐가 달라졌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조금 더 부드러워진 느낌이 강해졌다고 해야 할까? 우리가 생활관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만큼 부드러워진 걸까?
정인 씨가 엄마표 반찬이 든 보냉백을 들고 북토크 참여를 위해 생활관으로 왔다. 그의 루틴이다. 회사 출퇴근을 위해 서울에서 거주하는 데 본가에서 서울로 가기 전 생활관에 들러 북토크를 듣고 서울로 향하는 것. 한 주를 버티게 해주는 힘까지는 아니어도, 아주 작은 빛이라도 반짝거릴 수 있게 해주는 느낌이다. 회사 생활의 힘듦을 토로하는데, 비슷한 시절을 겪었던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아끼고 그저 응원과 웃음만 주기로 했다.
봉현 작가님은 나의 사심으로 섭외 리스트에 올려뒀던 분이다. 자영업자도 프리랜서라고 생각하는데, 생각이 지금보다 더 많았던 시절 작가님의 책을 읽고 흔들렸던 마음에 기둥 하나가 생긴 느낌이었다. 흔들릴 때마다 잡고 지탱할 수 있는 기둥. 실제로 뵌 작가님은 생각했던 대로 사랑스러웠다. 부드럽고 말랑함 속에 굳은 심지가 있는 분 같았다. 내밀한 이야기들을 해주셨고, 또 들어주셨다.
9월 18일 월요일
아침 10시 30분, 오픈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에 미팅이 있었다. 어반앤코와 소유니크가 함께 하는 공동 지원 사업이 중반에 접어들어서 남은 예산 체크와 공동 프로젝트 기획을 위한 자리였다. 역시나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카톡 너무 싫어하는 1인) 향이김밥에서 새싹김밥을 사서 함께 먹었다. 가을에 함께 할 여행이 기대된다.
오픈하고 역시나 낮에는 손님이 없다. 당근라페를 만들고, 중고 물건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음, 역시 손님이 없다. 졸리다. 큰일이다.
뒷문으로 손님이 들어오셔서 커피 두 잔을 테이크아웃으로 재빨리 가져가셨다. 다시 고요다.
다인 씨와 아로마 테라피 선생님인 것 같은 분이 오셨다. 익숙한 손님이 오셨다.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휴우- 다인 씨의 남자친구로 추정되는 생활 샌드위치 러버 분도 뒤늦게 합류하셨다. 오늘은 샌뒤치는 안 드시고, 커피를 드시고 소파에 기대 낮잠을 잔다. 나도 졸린데, 부럽다.
처음 뵙는 분들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분들이 들어오셔서 다짜고짜 말한다.
"커피 주세요, 커피."
어떤 커피를 드려야 하는지, 메뉴판을 보시라 얘기하고 난 뒤 얼굴을 보니 메뉴판을 보지 않고 계셨다. 음성으로 설명하는 도중 내 말을 끊고 아. 메. 리. 카. 노를 달라고 하셨다. 계속 말이 짧다.
"테이크아웃"
"커피"
"따뜻한 거"
심호흡을 하고 뒤돌아 커피를 만들고 내어드렸다. 곧 나가실 거라 생각했는데, 2층으로 올라가셔서 쇼핑에 빠지셨다. 음료를 들고 계셔서 나는 불안했지만, 불안의 크기를 키우지 않기로 하고, CCTV로 관찰했다. 오래 계실 것 같은 느낌이다. 하아-
선선해진 날씨에 현주 님은 오랜만에 셔츠 차림으로 생활관에 오셨다. 하얀색 셔츠가 잘 어울린다.
익숙하게 생활관 문을 열고 들어와 소소가 바닥에 흘러 늘어져 있어도 그냥 본인이 살 책을 골라 계산하시는 손님. 김지혜 교수님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사시길래 북토크를 신청하셨냐 물었는데 지인이 추천해서 사러 왔다고 하셨다.
"읽으면서 계속 반성하게 되는 책이에요."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러려고 사는 거예요."라고 대답해 주셨다. 내적 반가움!
9월 19일 화요일
(개인휴무)
9월 20일 수요일
비가 제법 많이 내린다. 평일이고, 비도 와서 손님이 없을 것 같아 가게 문을 닫고 집에서 늘어져 고양이들과 개를 품에 끼고 누워있고 싶어지는 그런 날이었다. 집에서 간단한 청소와 식사를 마치고 출근하니 이미 손님이 두 팀이나 계셨다. 오- 신기방기. 이런 날, 여길 오시다니! (감사해서 큰절 올려야지, 넙죽)
퇴비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모으고 있는 음식물 쓰레기 퇴비 통을 삽으로 뒤적거리고 있는데, 내 뒤통수에서 나를 향해 하는 것 같은 질문이 들렸다.
‘아, 사람 뒤통수에다 대고 질문을 한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돌렸더니 차 조수석에서 익숙한 얼굴의 손님이 주차를 해도 괜찮은지 묻고 있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안녕하세요 인사를 먼저 한 뒤 주차해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화가 많을까? 사람 뒤통수에다 대고 질문할 수도 있잖아, 정민아. 그치?? 그럴 수 있어. 진정해) 나 혼자서 아무도 모르게 욱! 했던 게 괜히 미안해서 오랜만에 뵌다며 안부를 물었다. 여성의 날에 내가 준비한 꽃을 받으시고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셨던 그분이다. 오늘도 쾌활하게 내가 묻는다.
”사장님, 저 뭐 바뀐 거 없어요?“
나는 잘 모르겠다며 말씀드렸고, 옆에서 남편분이 핀잔을 주며 “야, 티도 안 나!!”라고 얘기하는 게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가만히 넘기고 싶지 않았다.
”남들이 알아주는 것보다, 내가 느끼고 자신감 생긴 게 제일 중요하죠! 멋있어요, 대단하시다!! 살 빼고 나니 뭐가 제일 좋아졌어요?”
“모든 게 다 바뀌었어요. 저도 요가 하는데, 아기 자세할 때 뱃살이 없어지니까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너무 좋아요!”
원래도 밝고 명랑했던 분으로 기억하는데, 이 축축한 날씨에 축 처진 내 뱃살도 탱탱하게 만들어 줄 것 같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오늘의 좋은 기억은 이 손님이다!
비가 오면 소소는 늘어져 쉬는 걸 택한다. 우리가 괴롭혀도 늘어져서 눈만 껌벅거린다. 그런 소소를 그냥 바라봐 줬으면 좋겠는데, 소소의 존재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분들은 여전히 자극적인 소리들을 내며 소소의 반응을 살핀다. 어떻게 해서든 소소의 관심을 끌고 싶은가 보다. 그 행동들의 끝에는 소소와 인증샷을 찍으려는 욕망(너무 거창한가)이 있다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소소를 특별하게 받아들이는 손님들이 불편하다.
9월 21일 목요일
(생활관휴무)
9월 22일 금요일
아침 10시에 어김없이 시작되는 꽃수업. 고정으로 수업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면서도, 금요일 오전에 긴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아마도 15회의 수업이 끝나는 2주 뒤까지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수업 중간에 바람이 좋아 열어 둔 가게 문으로 손님들이 들어오려고 해 영업은 오후 1시부터라고 안내를 해드렸다.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다니며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해 캠페인 형식으로 상업공간을 이용하는 ‘권리 중심 공공 일자리‘라고 수업을 도와주시는 학습 매니저님께서 알려주셨다. 실질적인 노동보다, 인식개선을 위한 캠페인이지만 이 역시 노동으로 보아야 한다는 데 있어서 찬반 의견이 나뉜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주셨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에 나의 마음을 괴롭게 했던 단체 손님들도 그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지자체에서 미리 상점주들에게 안내를 해주었더라면 갑작스럽게 단체 손님을 맞이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오늘은 우 인턴님의 첫 출근 날이었다. SNS에 올릴 사진을 찍어드리고, 소개 글도 직접 작성해달라 부탁드렸다. 볕이 좋은 가을의 생활관에서 맞이하는 (임시) 사람 인턴(동물 인턴은 우리 소소-하는 일은 주로 먹고, 자고, 손님한테 자기 만지라 하는 것)이 반가웠다. SNS 피드에는 많은 분들이 하트로 반겨주셨다.
따뜻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히히히
밤 9시까지 생활관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6시가 넘으니 생활관은 텅텅 비었다. 이럴 때 주간 정산 글을 쓰고, 밀려서 못했던 일들을 하긴 하지만 대부분은 일찍 문 닫고 집에 얼른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우 인턴님에게도 텅 빈 가게를 지키는 일도 결국 외로움과의 싸움인 것 같다고 말했다.
9월 23일 토요일
에세이 쓰기가 끝난 토요일은 허전하면서도, 아침 시간을 요가에 할애할 수 있다는 사실은 또 반갑다. 나의 도반들도 함께 할 거라는 기대감에 즐겁게 간 요가원에서 나는 비록 외롭게 땀과 사투를 했지만..... 이제는 요가원으로 향하는 길이, 요가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힘들지 않은 날씨가 되었다. 짧은 계절을 또 짧은 대로 만끽해야지.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다고 해서 부랴부랴 동네 고양이 비닐 텐트를 꺼내서 설치했는데, 나는 땀을 뻘뻘 흘렸다. 오늘 땀 많이 흘리네-_-;;
오늘은 장일호 기자님과 김지혜 교수님의 북토크가 있는 날이다. 다정한 기자님께서 지난번에도 선물을 챙겨오셨는데, 오늘도 또 선물을 주셨다. 서점에 오실 때마다 책을 사 가시고, 선물을 챙겨오시고, 우리들의 안부를 물어주신다. 콩떡이의 안부도 빼먹지 않는 다정하신 분. 이렇게 사람이 다정할 수 있을까 싶게 다정하시다.
우 인턴의 등장으로 우리는 다수결이 가능한 체제가 되었다. 북토크 자리 배치를 놓고 여러 의견을 나누다 결국 다수결로 정해진, 'host 앞에 테이블 놓기'가 첫 선을 보였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다행이었다. 북토크 준비로 놓치는 손님들이 있어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하지만 우리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없다는 걸 안다. 선택과 집중이다.
우 인턴님의 가족들께서 우리 우 인턴 잘 부탁한다며 초코맛 과자를 세 박스 사다 주셨다. 이게 받았을 땐 응?? 나 초코 별론데.... 했는데, 그것은 계속 나의 당 충전제가 되었다는 사실. (역시 사람은 쉽게 스스로를 단정 지으면 안도ㅑ. 어리석은 자여, 정신을 차려라)
장일호 기자님이 진행을 하시고, 김지혜 교수님께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던 북토크는 내가 생각했던 이야기들보다 조금 더 좁고 깊은 이야기들로 채워져 조금 아쉬웠다. 넓고 가벼운 이야기들을 하기엔 두 분이 다루는 이슈들이 가볍지 않아서 였을까? 참여한 분들의 반응을 살폈을 땐 좋았는데, 그렇다면 다행인 건가? 운영하는 사람의 만족도도 중요한데, 어떤 걸 우선순위에 둬야 할까? 내일도 예정된 북토크가 있는데 내일은 또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