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관 Host 정민의 주간 정산
10월 8일 일요일
손님이 없다.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있나.
엄마랑 아빠가 왔다. 추석 때 맛없게 만들어 준 음식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며 이번에는 맛있게 만들었다고 직접 갖다주러 오셨다. 정말 반찬만 가져다주고 커피 한잔 원샷하고 가셨다. 이렇게 짧게 있다 헤어져야 서로 애틋하고 싸우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알기 때문에 오히려 좋다. 아빠 엄마는 내가 만나러 가서 오래 얘기하면 되니까 아쉽거나 미안하지 않다. (아니, 그런 마음은 들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
박준 시인 북토크에 예약하지 않고 오신 손님들이 너무 많았다. 참여 인원이 20명일 때와 30명일 때의 좌석 배치가 달라지는 데 손님들은 그런 걸 생각하지 않으시겠지. 맞다. 그건 그들의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사전 신청하신 분들만 받을지 현장에서 참여를 결정하신 분들도 받을지를 결정하는 건 우리의 몫이다. 처음 두세 분 까지는 물론 가능했다. 그렇게나 많이 오실 거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까. 역시 경험이다. 그리고, 우리만의 기준을 정확하기 정하고, 손님들께 알릴 필요가 있다.
10월 9일 월요일
연휴 마지막 날에는 늘 손님들이 많았던 터라 형진의 휴무를 월요일에서 수요일로 바꿨다. 든든하다. 그래서 그런지 오픈 후에 만들었던 브라우니도 미리 만들었다. 역시, 나는 이렇게나 외부 영향을 많이 받는 인간이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잘 이용해야지, 나라는 인간의 이런 성향.
대신 소소의 오전 산책이 늦어졌고, 오픈 시간도 살짝 늦었다. 역시, 꼭 이런 날엔 오픈 시간에 맞춰 손님들이 오신다. 오 신이시여.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인사 나눌 수 있는 손님들이 많이 왔다. 신나, 좋아, 힘이 나, 든든해.
현식 씨, 성혁 씨, 정아 씨네 가족이 붕어싸만코 아이스크림을 탑처럼 쌓아서 오셨다. 함께 나눠 먹자고.
형진까지 함께 윙체어 주위에 둘러앉아 동네 친구들처럼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 가족들과는 옥상에서 캠핑도 한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곧 두 번째 옥상 캠핑을 앞두고 있다. 좋은 사람들이 생활관에 많이 모였다. 받는 게 늘 많다. 어떻게든 다시 베풀어야 한다.
10월 10일 화요일
(개인휴무)
콩떡이 2차 접종과 심장 사상충 약을 바르는 일정이 있는 날이다. 여전히 혼자서 차를 갖고 슝- 하고 다녀올 엄두가 나지 않아 병원 가는 길에는 택시를 탔다. 생활관 앞에 택시가 정차했는데, 마침 내가 궁금해하던 아이오닉 5를 운전하시는 기사님이셨다.
“기사님, 아이오닉의 장점을 듣고 싶어요”
기사님은 라디오 볼륨을 먼저 줄이시고는 도시에서, 택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의 장점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고 현재 전기차 시장과 자신의 생각도 함께 나눠주셨다.
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말투나 사용하는 단어로 종종(아니 매우 자주-거의 대부분) 그 사람을 판단하곤 하는데, 차분한 말투로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주셨다. 그리고 차 얘기를 하시면서도 목적지 주변에 도착하고서 어디서 내리는 게 편한지 물어봐 주시는 것까지 굉장히 세심하다고 느꼈다.
아, 콩떡이의 귀 진드기 관련된 모든 증상은 말끔히 사라졌다. 이제 2차 접종까지 마친 콩떡이는 마지막 접종을 기다리고, 가족도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10월 11일 수요일
형진의 휴무일이다. 혼자서 생활관을 봐야 하는 날. 연휴도 끝났기 때문에 바쁠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갑자기 재료가 없어 당황하기 싫어 오픈 시간부터 또 괜히 바쁘다. (어제 요가 수련에서 선생님이 지옥도, 불안도 모두 내 안의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또 나의 조급함을 만들고 있구나)
전날 스트릿우먼파이터를 보다 늦게 자는 바람에 아침에도 늦게 일어났고 밥도 먹지 못한 채 출근을 했다. 샌드위치를 먹을까 잠깐 고민했는데, 다인 씨와 일행분께서 샌드위치를 주문하시는 바람에 나는 포기. 오랜만에 만난 현주 님과 수다를 떨다 보내드리고, 이반지하 북토크에 우디와 세영이(귀엽고 예쁜 멍멍이들)를 데리고 와도 괜찮은지를 묻는 혜림 씨(이제서야 이름을 알게 됨)와 잠깐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저녁 시간이 되었다. 의도하지 않은 공복. 역시 키보드를 두드릴 때 왜 손이 떨리나 했더니 밥을 못 먹어서 그런 거였어!
얼른 문 닫고 집에 가서 보글보글 된장찌개 끓여서 엄마가 만들어 준 반찬이랑 밥 먹고 싶다. 행복, 낭만 그런 게 뭐 별거냐. 퇴근하고 편하게 앉아 집밥 먹는 것, 그게 요즘은 나에게 잡히지 않는 행복이고 낭만이다.
10월 12일 목요일
(생활관 휴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고(더 이상 어린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경험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태어나 처음 해보는 일을 했다. 그것은 바로 신차 계약을 알아보거나 혹은 중고차 매매 단지에 가는 것.
승용차가 필요하지 않은 생활패턴을 유지하고 있고, 형진 씨의 부모님께서 나의 초보운전 탈출을 기원하며 오래된 승용차를 주셔서 요긴하게 타고 있었다. 실은 폐차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차 상태라 불안하긴 했지만 꼭 필요할 때 탈 수 있으니 그 정도면 우리에겐 충분했다. 그러다 갑자기 차 뽐뿌가 와버려서 합리화에 합리화를 거듭하며 차를 사기로 했다. 형진과 나는 검은색과 흰색의 차를 제외했고, SUV로 좁힌 뒤 예산에 맞는 매물을 찾고 또 찾아서 수원에 갔다가 서서울까지 들렀다. 반나절을 꼬박 투자해서 3대의 차량을 봤고 각 차량의 장단점을 나열하며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어쩌면 차가 필요 없을지도 몰라.’
핸드폰만큼이나 자주 바꾸는 차, 그런 자동차의 세계를 우리는 전혀 몰랐고 손님으로 인연이 된 현식 씨가 우리의 무식을 감싸주기 위해 하루 종일 동행해 주었다. 현식 씨는 과묵한데, 차 이야기할 때만큼은 표정도 밝아지고 말도 많아진다. 많이 아는 만큼 자신감이나 확신이 있는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의 지식이 타인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될 때 느끼는 자기효능감 비슷한 감정은 또 말할 것도 없이 좋지.
현식 씨와 함께 아침 10시에 만나 월간 독서를 마치고 예지 작가도 함께 합체되어 메밀국수를 점심으로 먹었다. 그리고 우리는 저녁까지 함께 먹었다. 현식 씨가 중고차 딜러에게 호구가 될까 싶어 역할을 설정했는데 나와 형진은 현식 씨의 사촌누나, 형 정도였다. 우리는 서로의 나이를 정확히 모른다. 대충 어느 정도겠지 짐작만 할 뿐, 직접적으로 나이를 묻지 않는다. (물을 필요도 없고) 여하튼, 다시 식사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어가자면 함께 두 끼를 먹으니 정말로 식구 같은 느낌이었다. 서로 예의를 차리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넘지 않지만 필요할 때 언제든 힘이 될 수 있는 존재가 가족이라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니까, 가족이라는 이유로 무례의 칼을 휘두르는 그런 것 말고.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관계.
앗, 주간 정산인데 목요일 하루 일기가 너무 길어졌다. 금요일 정산은 짧게 해야지!
10월 13일 금요일
13일의 금요일이다! 공포 영화 한편을 보고 싶어진다. (원초적이네;;)
요가 수련 시간이 길어져 생활관 오픈을 오후 1시에 맞춰 했다. 청소도 하지 않았고, 외부 의자들을 꺼내고 시계를 보니 이미 12시 55분이었다. 어차피 손님이 없을 테니 급한 마음 갖지 말고 천천히 청소를 하자고 마음먹은 순간! 역시나, 손님들이 조심스럽게 들어가도 되는지 물으셨다. 이번에는 뒤통수와 옆통수 사이에 대고 물으셔서 아주 쿨! 하게 들어가셔도 된다 답했다.
음료를 주문할 것 같은 행동 패턴은 아니셨고, 책을 보러 오신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말씀드렸다.
“제가 지각을 해서요, 청소를 조용히 하고 있을 테니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불러주세요.”
한 마디를 던지고 일을 하는 것과 무심히 일을 하는 건 큰 차이라고 생각해서 말씀드렸다. 신간 도서들과 정가 판매를 하는 서가 주변에서 생활관 입구에 있는 중고책 카트 쪽으로 자리를 이동하신 뒤 중고책에 관해 물으셨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고 오늘의 첫 손님 두 분은 병훈 씨의 소개로 생활관에 오게 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병훈 씨, 명예 영업사원증 만들어 줘야 하나;;
한주 못 본 화정 씨가 출근했다. 오래 본 사이도 아니면서 한 주 못 봤다고 무척 반가웠다. 인간의 감정이라는 게 신기하다.
화정 씨가 섭외한 이반지하 작가님의 북토크가 있는 날이다. 궁금했던 분이었는데, 유쾌하고 짙은 시간을 선물해 주고 가셨다. 웃기면서 진지한 사람 너무 좋아하는데, 작가님이 그랬다. 매력적이야.
10월 14일 토요일
신기하리만큼 손님이 없다. 아무래도 날씨가 좋아 다들 좋은 곳으로 떠난 것 같았다. 제길, 나도 떠나고 싶다.
요즘 중고차를 사려고 알아보고 있어서 만나는 손님들과 계속 차 얘기를 하고 있다. 정아 씨와 성혁 씨 그리고 현식 씨와 우 인턴까지 모두 한자리에서 차 얘기를 했다. 각자 차에 대해 갖고 있는 욕망과 현실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들 너무 좋아.
은호 씨가 대출했던 책을 반납하러 오면서 고구마를 한 보따리 가져다주셨다. 엄청 크고 통통하다. 계절이나 시기에 맞는 과일이나 채소 같은 것들을 나는 종종 손님들을 통해 알게 된다. 정확히는 손님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시는 각종 과일 및 야채를 통해서.
안녕히 가시라고 분명 인사를 했는데, 정아 씨네 가족이 뽀미(그들의 반려견)와 함께 다시 생활관으로 오셨다. 나와 형진은 너무 자연스럽게 그들의 자리 주변에 서서 캠핑 얘기를 하며 마감시간이 될 때까지 떠들었다. 너무 신나서 얘기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너무 거리낌 없이 대화의 장을 만들고 수다 난장판을 벌인 게 아닌가 했다. 나도 비슷한 이유로 아는 얼굴이 있는 카페를 가지 않는데, 정작 내가 그 짓을 하고 있었다니. 역시, 내로남불.........
아침부터 현대자동차에 신형 산타페를 구경하러 다녀와서 밤까지 계속 일했더니 괜히 더 피곤한 느낌이다. 보상심리 발동했으니 엽떡을 시켜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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