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3 웹에서 보기 Essay 01. 03 누구와 무엇에 둘러싸여 언젠가 공연 회사를 다닐 때 비슷한 고민이 있던 선배가 해준 말이 있었다. NYU 경영 출신으로 어디든 원한다면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선배였기에 비슷하기만 한, 어쩌면 전혀 다른 관점의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당시 해외 뮤지컬 한 편을 함께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매니저였고, 나는 어시스턴트 매니저였다. 그 작품 덕분에 짧은 시간에 서로를 알게 됐고, 둘 다 이직을 고민한다는 것도 그 때서야 알게 됐다. “여기 회사에서 나중에 저렇게 되고 싶다 생각되는 사람 있어? 있으면 버티고 없으면 바로 옮겨” 결국 그 선배는 유명 투자회사로 이직을 했고, 나는 퇴사를 공식화하면서 다른 한 선배의 소개로 어느 대기업의 사회 공헌부서와 연관된 회사로 옮겼다. 다니던 그 회사에서는 ‘나중에 저렇게 되고 싶다’라고 단언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냥 문화 관련 일이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후부터는 회사를 옮길 때마다 나의 미래가 되었으면 하는 사람이 있나 없나를 관찰했다. 없으면 미련 없이 옮겼다. 아마도 그때부터 지금보다는 앞으로의 삶에 초점을 맞췄던 것 같다. ‘어떤 삶을 살고 싶나’가 당장의 결정에 좀 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돈 벌어 나중에’보다는 그 삶을 위한 지금의 선택이 좀 더 중요해 보였다. 생활관도 그 연장선상에서 출발을 했다. 관계에 대한 결핍을 채우는 곳이기를 바랐고, 그 관계는 누구나보다는 좀 더 결이 잘 맞는 몇몇 이 기를 바랬다. 그런 관계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랬다. 퇴사를 하고 조바심을 잠재울 맘으로 빌렸던 꽤 많은 책 중 ‘여행하는 채소가게’(스즈키 뎃펭, 아마시로 도오루 지음, 하루 펴냄, 2016)라는 책이 있었다. 사실 책은 그리 호기심을 자극하지는 못했는데, 마지막 한 문장이 꽤 큰 울림으로 들어왔다. 생활관을 연 이후 가끔 어떤 곳인지 소개를 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이 문장을 소개했다.
‘누구와 무엇에 둘러싸여 날마다 보내는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퇴사 이후 모든 환경은 제로 셋이 된 상황이었다. ‘누구와 무엇에 둘러싸여 날마다 보내고 싶은가’를 생각해 봤다. 그것을 만드는데 앞으로의 시간을, 노력을 하기로 했다. 누군가, 언젠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할 때 ‘저렇게 살고 싶다’ 떠오르는 사람 중에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을 했다. 누군가에게는 괜찮아 보이는 삶의 ref.를 만들어 가고 싶었다. 생활관은 어쩌면 우리를 소개하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것을 소비하며,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를 담은 공간. 그런 공간에 관심이 닿은 사람이라면 우리와 어느 정도 연결될 가능성이 있을 듯했다. 더러는 그 관계 중에 오랫동안 이어질 관계도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마을상점생활관의 문을 연 것은 2018년 6월 1일이다. 2017년 6월에 퇴사를 했으니 딱 일 년 만에 오픈을 했다. 느긋하게 보내자고 했지만 고질병인 조바심으로 일 년 만에 일을 벌인 것 같긴 하다. 퇴직금으로 받은 대부분의 돈은 여행으로 탕진하고 일을 벌였다. 그 돈을 쓰면 뭐라도 제대로 할 것 같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긴 했다. 문제는 2018-2019년, 매월 말/초가 되면 돈 문제로 꽤나 신경이 날카로워지기도 했다. 어찌 됐든 잘 버텨 2022년을 맞이했다. 예상치 못한 COVID-19로 커뮤니티나 관계에 대한 계획은 하다 멈추다를 반복했고, 지금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 덕분에 외부적 상황 탓으로 모든 문제를 돌리기 쉽긴 했다. COVID-19가 없었다면 좀 더 나아졌을까, 기대했던 커뮤니티 문화를 만들어 냈을까, 알 길은 없다. “누구와 무엇에 둘러싸여 날마다 보내는가” 혹은 “날마다 보내고 싶나” 한 번쯤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그것이 우리와 맞닿아 있기를 바라며, 그런 것을 찾는 생활이 되기를 바라며 ‘어쩌다 생활관을 열게 되었는가’는 이번 레터로 마무리합니다. 혹시 궁금한 것이 있으시면 아래 ‘좋은 질문’을 통해 남겨주시면 성실하게 다름 레터에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from. 형진c Essay 02. 걱정과 건강 가게 앞 터줏대감 정도의 지위를 갖고 있는 동네 고양이(동네 고양이-길고양이 인식개선을 위해 [길]이라는 단어 대신 [동네]를 쓰기로 했다는 글을 접한 뒤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이라는 생각에 이렇게 부르고 있다.) 해양이가 새로 산 방한 텐트 안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새로 마련한
뒤 적응의 시간을 가져야겠지 싶어 설치 첫날은 마음은 비우고, 텐트의 문은 활짝 열어두었다. 걱정이라는 게 신기한 게, 마음을 비우고 걱정을 하지 않으면 순조롭게
흘러가는 반면 마음에 걱정을 가득 채우면 그 마음이 배탈이라도 난 것처럼 제대로 일이 되지 않는다. 역시나
마음을 비웠더니 경계심 많은 녀석이 의외로 새 텐트를 설치한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쏙- 들어가는
게 아닌가? 너무 고맙고 기특해 맛있는 간식을 뜨끈하게 데워 대령했다.
녀석이 따뜻하게 데운 핫팩을 넣은 방석 위에서 간식도 먹고, 그루밍도 하고, 식빵도 구우며 꾸벅꾸벅 조는 모습에 나까지 나른하게 만들어주었다.
동네 고양이에 대한 고민 상담을 받는 영상에서 나와 똑같은
마음의 사연자가 보낸 내용을 토대로 수의사님께서 해준 명쾌한(?) 답이 생각난다.
사연자 : “동네
고양이에게 아주 따뜻하고 튼튼한 겨울 집을 마련해 줬어요. 근데 얘가 좀처럼 들어가지 않아서 속상해요. 뭘 더 해줘야 이 녀석이 제가 마련해 준 겨울집을 이용할까요? 추운
데서 떨고 있을까 봐 걱정되고 그래요.”
수의사 쌤 : “내가
돈과 마음을 써 마련해 준 겨울집에 안 들어 가면 속상하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녀석들이 우리 인간들의 그 마음까지 헤아리며 살기엔 길 위의 삶은 그리 평탄치 않아요. 우리는 그저 녀석들에게 선택지 하나를 더 마련해 준 거라 생각하고, 언젠가는 / 동네 고양이 중 누군가는 들어가 쉬는 날 이 올 거라는 생각을 하세요. 그것
말고는 기대하지 마세요. 욕심이에요.”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며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아니 틀림없다.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왔던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 저렇게 답을 할 수 없어.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가게 앞 텐트를 살핀다. 역시나 해양이는 모습을 비추지 않는다. 그러다 이내 포기하고, 간식과 영양제를 섞은 그릇을 넣어두고 내 일에 몰두하고 있으면 어느새 텐트 안에 들어와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식빵을 굽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고 나면 ‘이것 봐. 이렇다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 나는 그냥 내가 할 일을 하면 돼. 나머지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라고 마음속으로 귀여운
투정에 가까운 혼잣말을 한다.
(첫 글을 쓰고 레터 발행 전 퇴고(거창하다.)를 하는 이 시점에서 해양이는 날씨가 좋으면 생활관이 마감한
뒤 텐트로 들어와 오픈 전 영양제를 대령할 때까지 쉬다가 사냥을 나서고 다시 돌아와 쉬고 눈이나 비가 오면 하루 종일 텐트 안에서 쉬었다 급식소에서
밥을 먹고 다시 쉬는 기특한 패턴을 발견했다. 야호!!)
작은 존재에게 이리도 마음을 쏟으면서 정작 나의 몸과 마음의
건강에는 소홀하다. 건강이 특히 그렇지 않은가. 잃고 난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다시 찾으려 하면 찾기 어려운 것. 나에게는 정말로 그렇다. 요즘은 건강한 사람들이 제일 부럽다. 잔병도 없이, 늘 튼튼한 몸과 마음을 갖고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 제일로 부럽다. 환경을, 지구를 지키겠다고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고, 동물권을 생각한다며
채식을 지향하는 삶을 살고, 길 위의 생명에게 나의 마음을 쏟는 일이 정작 내가 건강하지 않다면 무슨
소용인가. 나의 노력으로 좀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게 오래오래 노력을 해야 하는데 건강하지 못해
그 일들을 하지 못한다면 결국엔 스스로 패배자가 되는 것 아닌가.
나는 올해의 키워드를 “도전”으로 정했다. 이 도전 중에 수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중 건강에 관련된 아주 중요하고 무서운 게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내. 시. 경. 이번 연도에 건강검진 대상자인데 꼭 위와 대장 모두 내시경을 받을 예정이다.
작년에도 이 다짐을 했고, 재작년에도 이 다짐을 했는데 그때엔 건강과 권태기를 겪고 있었던
터라 이제서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을 시작했으니 내년에는 이 다짐을 할 일이 없기를 바란다.
건강이라는 게 인격체가 있다면 나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잘 지내고 보고 싶다는 나의 마음을. 듣고 있니 건강아? 듣고 있다면 오래 걸려도 좋으니, 내 곁으로 돌아와 줘. 부탁할게. (아니, 또
너무 오래는 안된다. 적당한 시기에 돌아와 주라.)
건강과 화해하고 사이좋게 지내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from.정민s 화병꽂이 no.03 오늘은 (글을 쓰고, 꽃을 꽂는 시점은 언제나 레터 발송 하루 전 수요일이랍니다.) 눈이 많이 온다는 일기예보를 듣고서 무조건 화이트!!를 떠올렸어요. 이렇게 직관적인 꽃꽂이도 좋아해요. 화이트+그린 소재로 화병 꽂이를 하는 건 여름의 싱그러움을 전하고 싶을 때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눈 내리는 오늘과도 제법 잘 어울리던걸요? (아니 또 저만 그래요?) 하얀
꽃 그림 같은 꽃이 달려 있는 왁스 플라워와 은엽 아카시아 두 종류요 만으로 작업 한 화병 꽃이입니다. 왁스
플라워에 꽃보다 방울 같은 아직 피지 않은 몽우리(제 눈에만 보여요.
손가락 두개로 확대 확대 확대해야 겨우 보입니다.)가 전구처럼 반짝이기도 해요. 작업을 하고 사진촬영을 하는 날 해가 쨍- 하고 나주면 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을 텐데 아쉽지만, 그래도 눈이 왔잖아요! :) 왁스
플라워와 은엽은 모두 건조해지면 바스락거리는 상태로 바뀌고 후드득 바닥에 떨어진답니다. 하지만, 손으로 건들지 않는다면 그. 대.로. 조화처럼 오래오래 있어줄 거예요.
입구가
좁은 화병에 물을 조금 채워줄 때 팁을 알려드리자면 (저도 제 꽃 선생님께 배운 것) 다이소에 파는 소스 통-주둥이가 일자가 아닌 ㄱ자로 생긴 것으로
주시면 꽃을 다 빼지 않고도 물을 채울 수 있어요. 아니, 꽃 사진 하나로 글 너무 많이 썼는데요? 사과할게요, 여러분의 눈과 손가락에게. 저의
꽃 사진으로 잠깐이라도 싱그러움과 따뜻함을 느끼셨기를 또 언제나처럼 바라며- 아, 지난주의 꽃은 상태가 너무 좋아서 소재를 조금 더 추가하고 마른 잎들만 정리하고 다시 다른 화병에 꽂아 두었어요. 생활관은 일반 가정집이나 카페에 비해 조금 서늘한 편이라 꽃의 수명이 상대적으로 길어지는 편이에요. 내가 머무는 공간의 온도나, 습도를 세심하게 헤아리는 것도 중요한 것 아시죠? 1가정 1온습도계 보급 필수라 생각합니다. 진짜 안녕! 할게요!! 다음 주에 1월의 마지막 꽃으로 만나요! 생활책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라는 얘기를 들으면 누구보다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어릴 적부터 들었던 적자생존이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라는 말인 줄 알았다. 適(적) 者(자) 生(생) 存(존)이란 뜻은 이렇다. “적합한 자가 살아남는다.” 그 적합한 사람이 강한 사람인 줄만 알았다. 시대가 변했다. 강한 단 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여럿과 잘 연결된 사람이, 협력을 잘 하는 사람이 오히려 살아남기 적합해 보이기도 한다. 사회생활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모나고 뾰족한 태도보다 유연하고 유쾌한 태도의 사람이 유리했던 것 같기도 하다. 강한 단 한 사람이 되기는 너무 어렵기도 하고 된다고 하더라도 유아독존의 삶이 뭔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이번에 추천하는 책은 ‘협력할 줄 아는 사람’이 유리하다는 것의 깊고 진지한 이야기를 전하려고 한다. 진화인류학의 관점으로 전하는 <다정한 것이 살아있다> 와 사회학적 관점으로 전하는 <이 폐허를 응시하라> 다. <다정한 것이 살아있다>
(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지음, 디플롯 펴냄, 2021)
부제: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 가끔 어떤 에세이, 소설보다 딱딱한 과학 책이 흥미진진하고 잘 읽히는 때가 있다. 이 책은 단숨에 절반 이상을 읽어내려갔다. 대부분은 과학적 사실 규명과 그 사실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해석하는 글이다. 가끔 낯선 용어가 등장하긴 하지만 그것의 낯섦보다는 반려동물들은 어떻게 살아남은(가축화) 것일까, 그 (자기) 가축화가 사람 자체에도 영향을 미치진 않았을까, 전쟁이 더 이상 흔하지 이유, 남성적 강함보다 여성적 부드러움이, 큰 머리보다 작은 머리가 점점 더 눈에띄는 것 같은 현상과 이유를 과학적으로 증명해낸다. 읽다가 보면 세상의 온갖 사소한 것이 새롭게 보인다. 특히 상대의 손가락이 지목한 물체를 바라본다는 것과 눈의 흰자(공막)가 있다는 것 같은 아주 사소한 것이 새로운 관점은 일상생활의 태도까지 영향을 줄 듯하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
(리베카 솔닛, 펜타그램 펴냄, 2012)
부제: 대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혁명적 공동체에 대한 정치사회적 탐사 보통 대지진, 대형 화제, 테러 같은 대형 재난이 벌어지면 그 사건 자체에만 관심이 몰린다. 범인은, 인명피해는, 재산피해는 같은. 그저 ‘안타깝네’, ‘불쌍하네’ 정도의 감정으로 끝날지도 모르겠다. 그 재난 속에 사람들은 실제 어떻게 지냈는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든 관심이 흩어진 이후에나 확인 가능한데, 모든 관심이 흩어졌으니 그 변화의 기록은 무관심으로 사라진다. 어쩌면 그 무관심으로 사라진 기록 안에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중요한 의미가 숨겨져있을 지도 모를 텐데 말이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어쩌면 쉽게 사라졌을 법한 그 잿더미 속에서 보석을 발견한다. 하지만, 부제만 보더라도 읽고 싶은 맘이 뚝 끊긴다. ‘혁명적’, ‘정치사회적’ 거기다 ‘탐사’까지 너무 뻑뻑한 느낌이라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책이다. 그럼에도 한번 읽기 시작하면 쉽게 손을 떼지 못한다. |
마을상점생활관의 두 호스트의 생활의 관점을 담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