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관 Host 정민의 주간 정산
10월 22일 일요일
이웃한 가게, 소유니크비건랩의 소윤대표가 비건 피크닉을 기획해서 나와 형진도 소풍에 동참했다. 원래의 계획은 생활관을 하루 쉬고 우인턴도 함께 가려는 것이었는데, 화정 씨가 혼자 운영하는 걸 택해서 생활관 운영 5년 만에 처음으로 타인에게 가게를 맡기고 외부로 나왔다.
그리고, 나에게 또 처음은 이렇게 어른(?)이 된 이후에 완벽한 타인들과 어울려 관광버스를 타고 두부와 장을 만들러 가고, 각자 싸온 도시락을 나눠 먹고, 요가까지 함께 하는 경험이었다. 나 혼자였다면 어색했을 텐데 미우나 고우나 평생 파트너인 형진과 함께라 더 즐거웠고, 은호 씨와 수빈 씨 그리고 정아 씨와 상임 씨, 요가를 함께하는 선아 씨, 비건 포트럭때 만난 성함이 기억나지 않는 몇몇 분들도 익숙해서 더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늦은 오후에 생활관으로 복귀를 하고, 오랜만에 지현 씨와 종효 씨를 만나서 보호소 봉사 일정을 잡다가 호기롭게 곧 내가 운전하는 차에 두 분을 태워 함께 보호소로 가자고 외쳤다. (대략 1년 뒤,,,,,,) 그동안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며 두 분은 책 4권을 사 가셨다.
현식 씨와 성혁 씨 그리고, 정아 씨가 함께 생활관에 오셨다. 나는 주말에 자주 뵈니 반가운데, 괜히 머쓱했는지 뒷 문을 열고 들어오시며 정아 씨가 얘기하셨다.
“너무 매일 오네요, 민망하지만...”
저도 좋아요. 좋아하는 사람들 자주 만나서 편하게 있는 공간 속에 저도 섞여 있으면 저도 편해요. 세 분이 자리를 잡고 난 뒤 현주 님도 오셨다. 익숙하고 반가운 이웃들을 만나는 게 새삼스러울 일도 아닌데 낮에 기분 좋은 에너지를 채워서 그랬는지 유독 반가웠다.
9시가 넘어 거의 10시가 다 되도록 나는 초보운전의 절망감에 대해 정아 씨네 가족에게 토로했다. 차에 관한 모든 것을 좋아하는 현식 씨에게 운전 연수를 농담 섞어 부탁했는데, 흔쾌히 받아주셨다. 베스트 드라이버가 될 테다!!!!!!!!!!!!!!!
10월 23일 월요일
다이슨 청소기-카펫 클리너 헤드가 고장 났다. 3개째 고장이다. 개털 범벅인 카펫 청소를 매일 30분 정도 하는데 그게 무리를 준 걸까? 아무리 소모품이라고 해도 수명이 너무 짧은 느낌이다.
형진이 청소기를 돌려주어서 나는 먼지를 털고 돌돌이로 털 박멸에 더 집중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 지겹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고, 털이 없어진 곳을 볼 때의 쾌감도 있기 때문에 청소는 언제나 중독성이 짙다. (물론 피로도도 진하고)
비슷한 시간에 손님들이 겹쳐서 들어왔다.
중고 물건들을 잔뜩 갖고 빅테이블에 앉아 열심히 위탁택을 쓰던 손님들,
아직은 성함을 모르는 타투이스트 이웃과 그의 친구,
처음 뵙는 것 같은 손님.
샌드위치와 요거트와 각기 다른 음료와 브라우니까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언제나 시간의 압박은 있다.
현식 씨도 왔고, 계정 씨도 오랜만에 만났다. 현식 씨에게는 브라우니 위에 아이스크림을 올려드렸다. 계정 씨는 두유 그릭 요구르트를 시키셨는데, 자기를 바라보는 소소가 너무 귀여워서 계피가루를 뺀 바나나를 조금 주셨다고 고백하셨다. 순간 화가 치밀었지만 참았다. 소소가 귀여우니까, 계속 보고 있으니까, 리트리버를 키우셨던 분이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속으로 주문을 걸었다. 하지만 엄연히 “남”의 개에게 보호자의 허락 없이 주는 건 잘못된 행동이다. 손님에게는 웃으면서 나의 마음을 반 정도 전달했지만 계속 불편한 마음이 남아 있었다. 힝....그르지마요.
10월 24일 화요일
원래는 개인 휴무인데 일정이 있어서 근무로 바뀐 화요일이다. 손님이 아예 없지도 않았고, 많이 북적이지도 않았다. 현식 씨가 뽀미와 함께 왔고, 은지 씨는 정혜윤 작가님의 신간 서적을 픽업하러 오셨고, 서현 씨는 책을 사러 오셨다. 오늘은 머무는 손님도 조금 있었고, 잠깐 들렀다 각자의 필요를 채운 후 바로 가신 정확히 상점으로 이용한 손님들도 있었다.
예지 작가님이 평소와 다른 복장으로 오셨다. 역시, 외부 강연을 다녀오는 길이셨다. 우리는 편안한 복장으로 만나는 사이(?)라서 새로운 복장은 새롭다. 예지 작가님과 11월에 열릴 플리마켓 <대청소하시장> 기획회의를 했다. 작년보다 조금 더 힘을 줘 화려하게 세팅을 하려고 했지만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혹은 나오더라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플리마켓을 하고 싶다는 호스트-예지 작가의 취지를 상기시켰다. 포스터는 재생지를 사용하고, 현수막은 이웃 아티스트 숲에게 남은 원단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드는 방식으로 하기로 했다. 할 수 있다면, 하면 된다.
10월 25일 수요일
(개인 휴무)
보통은 매일 저녁에 글을 쓰는데, 어쩌다 타이밍을 놓치면 이렇게 기억을 더듬어 써야 한다. 침대와 한 몸이 되었던 것 같은데 캘린더를 보니 외부에 있다가 집으로 느지막이 돌아와 멍- 하니 있었던 것 같다. 쉰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시간을 쪼개어 열심히 무언가를 한 것 같지도 않은 날을 보냈다.
10월 26일 목요일
(생활관 휴무)
누구나 작가님과 미팅을 했다. 글쓰기 클럽의 마지막 단계인 편집과 디자인을 위해 전문가와 함께 기획하는 시간인데, 사전 미팅이었다. 작가님은 붕어빵 6개를 사 오셨다. 역시, 1인 2붕어빵은 기본이지. 기본을 아시는 분!!
우리는 일 얘기는 타이트하게 1시간으로 끝내고 자영업자이면서 프리랜서인 서로의 고민과 시도해 보고 싶은 것들을 나열하며 미팅을 빙자한 잡담으로 2시간을 더 함께했다. 결론은,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일로 기획해 보고 시도해 보자는 것이었다. 2023년이 끝나가고 있어서 괜히 더 마음이 일렁거렸다.
10월 27일 금요일
계획대로라면 새벽에 꽃시장에 갔었어야 했는데, 호르몬의 노예가 된 나에게 무리인 스케줄이었다. 아침 꽃시장에 다녀오고 부지런히 정리를 했다. 점심에 경림 씨와 식사 약속이 있어서 느린 손을 빨리 움직였다.
경림 씨는 생활관에서 북클럽을 하면서 알게 된 사이인데, 함께 글도 쓰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깊게 나누게 되는 사이가 되었다. 외부에서 밥도 같이 먹는 사이라니. 과거의 나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생활관으로 돌아와 다시 본업에 충실한 시간을 가졌다. 정인 씨가 현주 씨의 생일을 축하하고 싶다며 그의 취향에 맞는 꽃다발을 주문하셨고, 정혜윤 작가님을 드리고 싶다는 순임 씨의 주문 꽃다발 작업도 해야 했다. 어려운 작업들이 아니라 기분 좋게 일했다. 우인턴님의 갑작스러운 꽃 주문이 정말로 갑작스러웠지만 충분히 할 수 있는 작업이라 그것도 기분 좋게!
저녁이 되었고, 북토크 주인공인 정혜윤 작가님을 작년에 이어 올해도 또 지하철역으로 뫼시러 갔다. 길을 잘 못 찾으시는 분이라 특별 케어를 해드려야 한다. 좋아하는 작가님과 단둘이 길을 걷는 시간이 있다는 건 무한 영광이니까 땡큐.
꽃 작업들을 하느라 작가님의 이야기는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중간중간 들려오는 그의 음성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2시간을 꽉 채운 작가님 덕분에(?) 우리의 퇴근은 늦어졌지만, 분명히 작가님을 만난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피곤하다. 배도 고프고.
10월 28일 토요일
오후 1시에 문을 여는 날이지만, 텃밭 클럽이 10시에 시작되기 때문에 아침 일찍 몸을 움직였다. 생리통이 유독 심해서 조금 신경질도 났지만 해야 하는 일이니까 했다. 생리통 얘기를 하니 갑자기 지난 화요일 요가원에서 선배 도반에게 여자는 너무 억울한 것 같다고, 반평생 생리를 하다 끝나면 그때부터 호르몬 불균형 때문에 또 힘드니 생각만 해도 억울하다고 했다. 내 말을 들은 선배 도반은 호탕하게 웃으시며 인간으로 태어나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며 오히려 감사하다고 하셨다. 완경 이후 겨울에도 덥고, 아픈 곳도 많아졌지만 자신이 여성이 아니었다면 겪지 못했을 것들을 경험했으니 그걸로 감사하다고. 나는 반은 공감했고, 반은 공감하지 못했다. 그저 그렇게 생각하는 그가 멋있었다.
다시, 일 얘기로 돌아와서-
가게 앞에선 공사를 시작했고, 내가 돌보는 고양이 해양이는 일주일째 행방이 묘연해 속이 시끄럽다. 오늘도 늦은 퇴근이 예정되어 있는데 벌써부터 피곤하다. 아니 어쩌면 어제의 피곤함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저녁에 시작된 음악생활관은 우리끼리만 알 수 있게 우당탕탕 아찔한 상황이 있었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잘 넘어갔고, 무사히 마쳤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일방적인 음악 감상의 음악생활관은 아무래도 공기가 어색하다.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을 줄이고, 대화의 깊이를 더 생각해 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