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관 Host 정민의 주간 정산
10월 29일 일요일
모처럼 행사가 없는 일요일이다. 마음이 가볍다.
형진과 소설 쓰기 워크숍 마지막 날을 기념하기 위해 AP Bakery로 베이글을 사러 갔다. (내가 운전해서!) 조금 일찍 가서 우리도 데이트 아닌 회의를 빙자한 외식을 했고, 조금 늦게 출근하신 AP 대표님과 안부를 주고받으며 오전 시간의 여유를 만끽했다. 일과 생활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쩌면 하루라는 시간 속 틈을 비집고 숨 쉴 구멍을 억지로라도 만들며 지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지친다. 자영업 5년 차에 접어드니 이제서야 자영업자의 삶에 대해 균형을 찾아가는 시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익숙한 손님들이 비슷한 시간에 오셨다. 병훈 씨는 양 다솔 작가의 책을 찾았고(병훈 씨가 찾는 책이 생활관에 없는 경우가 많아서 괜히 죄송하다) 정아 씨와 성혁 씨는 역시나 귀엽게 브롬 튼 과 함께 등장했다. 그리고 뒤이어 낯익은 얼굴이지만 이름을 아직 모르는 분이 일행과 함께 오셨다. 음료를 주문하시고 서가의 책을 꺼내 테이블로 가져와 읽으시는 모습을 봤다. 이제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손님에게 다가가 생활관의 도서 판매 규정(? 너무 거창한데??)에 대해 말씀드렸다.
"혹시 지금 읽고 계신 책은 개인 소장하셨던 걸까요? 아니면 저희 서가에서 빼신 걸까요?"
"서가에서 뺀 건데, 구매할 거예요"
"아, 그러시군요. 원래 도서는 구매를 먼저 하신 뒤에 읽으셔야 해요. 근데 어차피 음료 드시면서 앉아 계시니 굳이 다시 일어나지 마시고 나가시기 전에 잊지 말고 결제해 주세요"
손님은 잠깐 고민하시더니 다른 책 한 권을 더 골라 결제를 하셨다. 전에는 이런 상황 자체가 불편하고 뭔가 내가 괜히 잘못한 기분이고 그랬는데 지금은 어떤 감정도 없이 정보 전달만 하려고 노력한다. 내 정신 건강 절대 지켜!!
10월 30일 월요일
월요일에는 유독 중고 물품을 위탁하러 많이 오신다. 지난주에도 그랬었던 것 같은데, 오늘도 그랬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는 확실히 옷들이 많이 위탁된다. 위탁 기간이 한참 지난 물건들을 정리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중고 제품들이 점점 더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수미 씨가 하루의 첫 커피를 마시러 왔다며 아이스커피를 빠른 시간에 다 드셨다. 이미 내려놓은 커피는 시간이 지나면 팔 수 없어서 수미 씨의 컵에 커피를 다시 채워드렸다. 우리는 각자 돌보는 고양이들의 이빨 상태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하다가 동물과 함께 지낸다는 건 너무 힘든 일이라고 푸념했다. 그럼에도 각자의 선택은 바뀌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힘든 사실도 힘들지 않게 바뀌는 건 아닐 테니까. 혹시라도 전쟁이 나서 집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각자의 반려동물들과 집에서 마지막을 보내는 걸 선택하기로 결심했다고도 얘기했다. 늘 비슷한 주제로 비슷한 대화를 하면서 늘 진지하다.
10월 31일 화요일
(개인 휴무)
지하철을 타고 1시간을 넘게 서서 언니를 만나러 서촌으로 향했다. 내가 요가를 시작하고 달라진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은 언니는 요가 수련 6개월 차에 접어든다. 언니는 서촌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한 부디무드라에서 사고 싶어 했던 요가복들을 입어보고 싶어 했다. 쉬는 날 단풍이 예쁜 동네, 서촌에 가서 예쁜 길을 같이 걸으며 커피를 마시고 쇼핑을 했다. 태국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으며 또 예쁜 골목길들을 걸었다. 언니와 헤어지고 나서도 나는 걷고 또 걸어 광화문과 명동까지 걸었다. 결혼 전에 내가 살던 동네이기도 했고, 그래서 많은 기억들이 남아있는 동네를 오랜만에 걸으니 추억들이 봄날의 새싹들처럼 올라왔다.
쉬는 날 피곤해서 외출을 잘 하지 않았는데, 하길 잘 했다. 피곤한데 피곤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11월 1일 수요일
예지 작가님의 지인으로부터 구매한 귤이 도착했다. 귤을 먹어야 하는 계절이 왔는데, 날씨가 이상하게 춥지 않아 제철 과일을 먹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휴, 손님이 없어도 또 너무 없다.
감기에 걸렸던 계정 씨가 몸이 좋아지셨는지 낮 시간에 오셔서 생활샌드위치를 드시고, 그릭요거트도 드셨다. 식욕이 있는 걸 보니 몸이 좋아지신 게 분명해!
손님이 거의 없으니 손님들과 대화를 할 수가 없다. 다들 어디로 가셨나요?! 어디 계시죠???
11월 2일 목요일
(생활관 휴무)
콩떡이의 마지막 접종이 있는 날이다. 아침 10시에 병원을 가기 위해 준비를 하다 이동장에 콩떡이 넣기에 실패한 형진에게 도움 요청 문자가 왔다. 콩떡이가 자꾸 도망가서 잡지 못하겠다고 대신 잡아달라는 내용이었다;; 내 계획은 내가 동물 병원까지 운전해서 가는 것이었는데, 시간이 늦어져 예약시간에 맞추기 위해선 운전대를 형진에게 양보(?) 할 수밖에 없었다.
콩떡이는 이제 3차 접종까지 모두 마쳤다. 하지만 입양 신청서는 단 1장도 들어오지 않았다. 예쁘게 생기진 않았어도 충분히 귀엽고 웃긴 캐릭터의 콩떡이는 겁이 조금 많지만 사랑받을 수 있는데 좋은 시기를 진짜 가족과 함께 보냈으면 좋겠다.
11월 3일 금요일
오늘의 할 일 중 가장 큰건 꽃 시장 다녀오기와 비건 붕어빵 테스트 하기다. 오전 주문 건(금요일에만 꽃 주문 있는 게 신기해)을 처리하고, 새로 들어온 꽃들로 생활화 진열대를 다시 정돈했다. 오늘의 꽃 컬러는 오렌지와 핑크인데 지난주처럼 사람들이 꽃을 많이 샀으면 좋겠다.
밥을 먹고 다시 출근한 생활관에는 우인턴과 정인씨가 있었다. 윙체어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정인씨가 먼저 인사를 해줬다. 언제나 따뜻함을 선물해 주는 정인씨는 참 매력적이다. 책을 읽다 소소 마사지하기에 당첨된 정인씨에게 어떤 30대가 되고 싶냐 물었다.
”단호한 30대를 꿈꿔요. 그리고 나만의 공간에서 친구들에게 좋은 술과 좋은 음식을 대접할 수 있는 어른이요!“
요즘엔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상상을 할 수 있는 질문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진지하면서도 자신이 꿈꾸는 멋진 어른의 모습을 상상하는 정인씨의 표정을 보며 나도 괜히 흐뭇해졌다.
오늘의 할 일들 중 마지막, 비건 붕어빵 테스트하기!
아, 맛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 이러면 맛없는 건데,,,, 이제 1차 테스트 한 거니까 더 추워지기 전까지 계속 테스트해야지. (팥앙금 직접 만드는 거 너무 귀찮은 일인데, 장인 정신으로 나는 할 수 있을까????????)
11월 4일 토요일
요가 지도자 과정이 시작되는 첫날이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진행되는 수업이라 11월 한 달간 나의 생활관 주간 정산에서 주말은 이제 거의 사라질 예정이다. 수련을 마치고 생활관으로 돌아오니 옥상 캠핑 멤버 정아씨, 성혁씨, 현식씨가 나를 맞이해줬다. 그들과 옥상에서의 두 번째 캠핑이다. 조금 이른 마감을 하고 생활관 옥상으로 올라가 늦은 저녁을 함께 먹으며 함께 웃고, 함께 빗소리를 즐겼다. 그리고 현식씨에게 요가의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게 형진과 나, 정아씨와 성혁씨 모두가 손을 내밀었다. 돌아오는 월요일에 현식씨와 요가원 앞에서 만날 수 있을까? 그가 체험하러 온다면 꼭 주간 정산에 남겨야지.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했으니까, 꼭 남겨야지. 새벽 3시가 넘어서 헤어진 우리는 대략 4시간 뒤 다시 만날 사이다. 일요일 아침 7시 필사 클럽,,,, 나 일어날 수 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