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번째 | 100th
한 주에 한 번씩, 100번째 주에 보내는 우리의 생활 관점을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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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관 Host 정민의 주간 정산
원래대로, 늘 쓰던대로 주간 정산을 쓰려고 했습니다만......레터 작업을 먼저 마친 형진의 글을 보고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제 글은 줄이기로요.
100th anniversary 글을 쓸까 하다 그 역시 형진이 했으니....(쓰기 싫어서는 절대 아니고요!!!)
그리고, 실은요-
생활관에 손님이 무척이나 없었습니다. 이런 날엔 이래서 없고, 저런 날엔 또 저래서 없나 싶지만 심각하게 손님이 없었어요. 어떤 날에는 옆 가게에서 붕어빵을 잔뜩 사서 유일하게 공간을 채워주고 계신 손님과 나눠 먹기도 했고요, 또 어떤 날에는 시즌 음료를 만들겠다며 몇시간 동안 초콜릿을 녹이며 럼을 섞고 커피를 내려 단맛과 쓴맛을 교차 체험하기도 했어요. 요가를 하는 손님들과는 각자가 느끼는 요가의 즐거움과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답니다.
손님이 많으면 많은대로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많으면 많다고 힘들다고 징징)
손님이 적으면(없으면) 그런대로 또 그에 맞는 일상을 보내게 되더라고요. (없으면 없다고 투덜투덜)
100번째 레터를 쓰면서 생각해봤어요.
나는 앞으로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생활관점 레터를 읽는 이웃들에게 무엇을 전하는 게 가장 좋을까? 선명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결국엔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쓰겠죠. 나의 관점과 나의 취향을 전하려고 이 레터를 만들었으니까.
엇, 짧게 쓴다고 했는데 자꾸 길어지네요?!
이만 줄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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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관종
나이 마흔이 넘어 초보운전자가 된 정민이 겪는 불안과 초조와 무식의 결정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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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주유>
우리의 커다란 새차로 셀프 주유는 처음이다. 늘 조수석에 앉아 창문을 내리고 카드를 전달해주거나 휘발유 5만원이요 만을 중얼거렸는데, 이제는 내가 운전석에서 내려 주유건을 손에 직접 쥐고 차 주변에서 서성거리게 될 줄이야.
콩떡이의 중성화 수술을 위해 아침부터 콩떡이와 혈투를 벌이고 몸의 긴장이 풀리지 않은 상태로 운전을 강행했다. 조수석에 앉아 좀 더 쉬고 싶었는데, 운전 연수를 받고 나서 호기롭게 형진에게 망언을 했던게 떠올라 그럴 수 없었다. 이제 안산에서는 모든 운전을 내가 하겠다고 떵떵거렸단 말이다. (입방정 그만 떨어라 정민아)
호기로운 척하며 도로 오른쪽에 위치한 주유소입구로 들어섰다. 주유기에 가깝게 차를 세우려면 적절한 직진과 코너링을 배합시켰어야 한다는 걸 나는 알았다. 하지만 내 손은 내 생각보다 빨리 핸들을 틀었고 완만한 곡선을 그리지 못하고 거의 대각선 수준으로 주유기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채 차를 세워야만 했다.
조수석에 앉아 한숨을 쉬는 형진의 눈치가 보여 차를 앞으로 뺐다가 다시 뒤로 슬금슬금 가 위치를 재조정 하면 될 것을 괜한 자존심에 이상한 모양으로 차를 세우고 주유를 시작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별 탈 없이 주유를 하긴 했지만, 수동으로 여는 주유구 뚜껑을 제대로 따지 못해 또 쩔쩔, 뒷차가 오나 안 오나 눈치보느라 또 벌벌 떨었다. 손이 떨리니 뚜껑이 제대로 열리겠냐고;;; 다행히 평일 낮이라 내 차 뒤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건강한 긴장은 좋은거라지만 경험 부족에서 오는 내가 느끼는 과한 긴장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강인한 마음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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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번째, 어떠한 기념일도 챙기지 않고 무던하게 생활하고 있어 100번째라는 숫자 앞에서 뭘 해야하는 건가? 머뭇거렸습니다. 100번째면 언제부터 레터를 썼더라? ARCHIVE를 뒤적거리니 2022년 1월 6일, 곧 2년이 되어갑니다. 첫 번째 레터에는 어떤 글을 담아 전했더라 봤더니 어떻게 생활관을 하게 되었나?에 대한 구구절절한 이야기 3회에 나누어 담았더라고요. 몇 명이나 그 때 이 레터를 받았을까? 보니 24명이나 되네요. 오랜만에 그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모아서 100번째 레터에 담으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 때와 지금 그리 큰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3편에 나누었던 글이라 꽤 길긴 하지만 기념으로 담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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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취직 안 한다고 한 것치고는(2022.1.6)
언젠가 대학 동창이 한 얘기였다. 대학교에 입학 후로 전공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영화를 하겠다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다. 중학교 때 이모가 “넌 나중에 커서 뭐 할거냐?”라는 갑작스런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못 했다. “맨날 영화만 보니까 영화감독 될라 그러나!” 이모의 자답에 이후 장래희망란 1순위는 ‘영화감독’이 됐다. 하지만 그저 막연한 희망사항이었는지 영화와는 상관없는 전공을 하게 됐다. 그나마 같은 전공 출신 영화감독을 찾아보면서 얕은 연결고리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며 남들 취직 준비할 때 처음으로 독립영화 판에 발을 들이고 바로 상업영화 현장으로 직행을 했다. 그러던 놈이, 취직 생각 일도 없던 유일한 놈이 대기업은 아니라도 나름 얘기하면 몇몇은 알만한 회사를 전전한다는 것이 신기했던 듯 얘기했다. "취직 안 한다고 한 것 치고는 잘 산다."라고.
어쩌면 결론짓지 못 한 ‘영화감독’이란 희망사항이 여전히 남고 남아 여기까지 이른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영화판에서 결론을 짓지 못 한 건 조바심과 두려움이 컸다. 한 편 한 편 만드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그 시간을 보내도 남는 건 그리 없어보였다. 그런 지난한 시간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 홍대 한 골목의 이자카야에서 소주 없는 메뉴판을 보고 슬그머니 나오던 영화판 친구들과의 기억을 마지막으로 취직을 했다. 이 판은 나랑 맞지 않은 것 같다는 결론을 내지 못 한 채 잠깐 돈 벌어 시작하자고만 생각했다. 결론을 짓지 못한 채 직장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마케팅에이전시 - 공연|전시기획사 - 디자인기획사 - 브랜딩기획운영회사를 전전 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자신의 DNA는 영화판에서 찾았다. 되돌아보면 자신만의 차별점을 그곳에 찾았던 것 같다. 경쟁력 제로에 가까운 언어 전공자가 꿀리지 않으려면 ‘남다른 시각’ 뿐인 듯했다. 그 시각은 ‘영화판이었다면 지금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을 했을까'에서 찾았다. 크리에티브를 강조하는 회사를 다녔다. 그곳에서는 자신만의 DNA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건축 출신, 그래픽 디자인 출신, 포토그래퍼 출신, 클래식 전공 출신, 더러는 어느 기업 출신, 언더그라운드 출신 등 모든 사안을 그 DNA에서만 찾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과 구별된 자신의 DNA로부터의 관점이 있는 듯 느껴졌다. 나에게는 그것이 영화판이었다. 그러면서 뭐라도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 어느샌가 자리 잡았다. 마지막에 있던 회사에서는 기획 마인드를 무기 삼아 밥벌이를 하는 동료들이 많았다. 지금의 세상과 앞으로의 세상을 더듬어 가늠하고 고여있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던 사람들이 많았다. 세상에 호기심이 없으면 버티기 힘든 곳이었다. 나름의 관점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곳이었다.
앞으로의 세상에 필요한 것. 더듬더듬 느끼고 있지만 확신은 없었다. 그럼에도 시도는 해보고 싶었다. 그러다 직장인으로 Go/Stop을 선택해야 할 시점이 왔다. 마지막 회사에서는 글로벌 제조회사와 조인트 벤처를 만들었는데 나는 그 팀에 속해 있었다. 한 일 년이 지나니 조금씩 분위기가 변했다. 정점을 찍은 것은 그 조인트 벤처에서 대표를 맡고 있던 임원이 다른 회사의 부사장으로 옮긴다고 공표할 때였던 듯싶다. 이미 여러 정황상 알고 있었던 것이라 팀이 흐지부지될 때까지 버티기보다는 미리 (그럼에도) Go를 할지 다른 길을 찾아야 할지 선택을 하는 편이 옳아 보였다. Stop을 하기로 했다. 마지막 임원 면담 전, 여러 경우를 생각해 봤다. 결론은 이랬다. 여기에 남건, 본사로 돌아가건 혹은 아예 다른 길을 가던 어차피 고생 없는 길은 없어 보였다. 어차피 어딜 가건 있는 머리 없는 머리 짜내면서 고생할 바에 그럴 만한, 고생할 만한 이유가 있는 길로 가기로 했다. 마지막 임원 면담에서 선택을 해 달라고 했다. 이사 직급을 주면 Go를 할 것이고, 아니면 Stop을 하겠다고 했다. 이사 직급 정도는 돼야 흐지부지되더라도 고생할 이유가 있어 보였다. 내부 논의를 거친 뒤에 가장 친하게 지냈던 임원이 와서 ‘그동안 고생 많았는데 뭐 필요한 것 없냐며 최대한 챙겨주겠다.’는 답을 전했다. 그렇게 직장인으로는 Stop을 했다. 직장 생활은 그렇게 결론을 지었다.
Stop을 하고 바로 생활관을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약 1년 반 후에 생활관을 오픈했는데 stop을 선택한 그때는 일단 잠깐 쉬자가 먼저였다. 사실 잠깐 이름난 기업들로 복귀한 여럿 동료들이 있어 한 번의 오퍼는 있겠지 기대하기도 했다. 결과는 1년 반 뒤에 마을상점생활관을 오픈 했다.
어차피 취직할 생각은 일도 없었으면서, 잠깐만 다니자면서 10년 정도 채웠으면 꽤 선방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렇기에 미련 없이 결론을 지을 수 있었던 것 싶기도 하다.
02. 셀프 안식년과 N잡러(2022.1.13)
몇 번 퇴사를 한 적은 있지만 언제나 다음이 정해져 있었기에 아무런 대책 없는 퇴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퇴사를 하고 출근은 하지 않았지만, 법적으로는 약 이 주 정도는 아직 소속되어 있었다. 휴가가 많이 남아 일단 그것을 소진하는데 이주 정도가 소요된다고 했다. 그 이주 동안은 백수가 아닌 그저 휴가로 생각하고 조금 느긋하게 있기로 했다. 그 느긋한 생활은 이주를 넘기고 한 달이 되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퇴사한 시기는 6월이었다. 점점 기온이 올랐다. 홀로 있는 집에 에어컨으로 낭비는 하고 싶지 않아 버티고 버티다 밖으로 나가 근처 카페라도 찾아 들어갔다. 한가로운 시간이 지속되자, 비일상 같던 한낮의 빈둥거림이 일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느긋했지만 속으로는 고질병인 조바심이 슬금슬금 올라오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찾는 방법은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빌려와 테이블에 쌓아 두고 보는 것이다. 며칠에 한 번씩 도서관에 들려 대여할 수 있는 최대치의 책을 빌려 돌아왔다. 그 빌린 책의 대부분은 경영 관련 서적과 현시대를 분석한 책 들이었다.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렇게 조바심을 누르고 누르며 10년이 채 되지 않은 직장 생활이었지만 어디서 주워들은 ‘안식년’인 것 마냥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퇴사를 하면서 생각한 소일거리가 몇 있었다. 퇴사를 할 때 즈음 예전 미디어 회사에 잠깐 있을 때 에디터로 있던 선배가 원고 의뢰를 해왔다. ‘마케터가 본 오프라인의 미래’라는 주제로 글을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어느 대기업 사보에 싣게 되는 글이었는데, 꽤 두둑한 원고료가 들어왔다. 이것이 어떤 새로운 길을 열어줄까 잠시 기대를 했지만 더 이상 원고 의뢰는 없었다. 다른 소일거리는 가족과 관련된 일이었다. 양가 모두 개인사업을 하고 있었다. 먼저 부모님은 무창포 바닷가 근처로 귀촌을 하며 펜션을 지으셨다. 건물만 있다고 예약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니 그 예약에 필요한 일이 필요했다. 정민s는 이전해 겨울, 형제들끼리 에코퍼 소재의 가방을 만들었다. 도매를 주로 했던 형제들이라 소매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당시 브랜딩을 업으로 삼고 있던 터라 소규모 브랜드로 방향을 잡아 주던 터였다. 퇴사 후 펜션과 소규모 브랜드 운영이 소일거리로 괜찮아 보였다. 어느 정도 운영이 되면 최소한의 생활비 정도는 나 올 수 있을 듯싶었다. 결과적으로는 펜션은 그 동네 펜션까지 묶어 예약을 받아 소개비 명목의 수수료로 생활관의 월세 정도는 충족할 수 있었다. 물론 코로나19 이전 얘기긴 하다. 세 남매의 브랜드는 간혹 괜찮은 수익을 내는 제품이 있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들이는 수고에 비해 남는 것이 많지 않았다. 지난해를 마지막으로 모든 재고를 처리하고 용돈 정도의 돈을 나누면서 끝이 났다. 당시에는 이 두 개의 일로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면 다른 여럿 일에 조금씩 손을 대면서 조금의 수익들을 모아 이전 월급만큼의 돈은 벌 수 있을 듯싶었다. N잡러를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 생활관을 생각하게 된 것은 관계의 갈증이 컸다. 얕고 광범위하던 관계에서 떨어져 나오니 그 많아 보였던 관계가 너무 협소하게 느껴졌다. 학교나 직장을 기둥삼아 뻗던 관계였다. 그렇게 살다 보니 그 이외의 관계는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너무나 낯설었다. 커뮤니티에 대한 관심은 이전부터 있었고, 퇴사하자마자 의뢰받은 원고에도 오프라인의 미래는 커뮤니티의 존재 유무에 달려있다고 한 터였다.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의 주제도 점점 그런 흐름으로 선택되고 있었다. ‘나의 사회적 역할’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03 누구와 무엇에 둘러싸여 (2022.1.20)
언젠가 공연 회사를 다닐 때 비슷한 고민이 있던 선배가 해준 말이 있었다. NYU 경영 출신으로 어디든 원한다면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선배였기에 비슷하기만 한, 어쩌면 전혀 다른 관점의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당시 해외 뮤지컬 한 편을 함께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매니저였고, 나는 어시스턴트 매니저였다. 그 작품 덕분에 짧은 시간에 서로를 알게 됐고, 둘 다 이직을 고민한다는 것도 그 때서야 알게 됐다. “여기 회사에서 나중에 저렇게 되고 싶다 생각되는 사람 있어? 있으면 버티고 없으면 바로 옮겨” 결국 그 선배는 유명 투자회사로 이직을 했고, 나는 퇴사를 공식화하면서 다른 한 선배의 소개로 어느 대기업의 사회 공헌부서와 연관된 회사로 옮겼다. 다니던 그 회사에서는 ‘나중에 저렇게 되고 싶다’라고 단언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냥 문화 관련 일이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후부터는 회사를 옮길 때마다 나의 미래가 되었으면 하는 사람이 있나 없나를 관찰했다. 없으면 미련 없이 옮겼다.
아마도 그때부터 지금보다는 앞으로의 삶에 초점을 맞췄던 것 같다. ‘어떤 삶을 살고 싶나’가 당장의 결정에 좀 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돈 벌어 나중에’보다는 그 삶을 위한 지금의 선택이 좀 더 중요해 보였다. 생활관도 그 연장선상에서 출발을 했다. 관계에 대한 결핍을 채우는 곳이기를 바랐고, 그 관계는 누구나보다는 좀 더 결이 잘 맞는 몇몇 이 기를 바랬다. 그런 관계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랬다. 퇴사를 하고 조바심을 잠재울 맘으로 빌렸던 꽤 많은 책 중 ‘여행하는 채소가게’(스즈키 뎃펭, 아마시로 도오루 지음, 하루 펴냄, 2016)라는 책이 있었다. 사실 책은 그리 호기심을 자극하지는 못했는데, 마지막 한 문장이 꽤 큰 울림으로 들어왔다. 생활관을 연 이후 가끔 어떤 곳인지 소개를 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이 문장을 소개했다.
" 어떤 나라에서 태어나, 어떤 집에서 살고, 어떤 친구들과 만나서 어떤 연애를 하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음악을 듣고, 누구와 무엇에 둘러싸여 날마다 보내는가. 그런 일상의 축적과 삶의 방식이 이 마을, 이 나라, 이 세계를 만들어 갑니다. "
‘누구와 무엇에 둘러싸여 날마다 보내는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퇴사 이후 모든 환경은 제로 셋이 된 상황이었다. ‘누구와 무엇에 둘러싸여 날마다 보내고 싶은가’를 생각해 봤다. 그것을 만드는데 앞으로의 시간을, 노력을 하기로 했다. 누군가, 언젠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할 때 ‘저렇게 살고 싶다’ 떠오르는 사람 중에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을 했다. 누군가에게는 괜찮아 보이는 삶의 ref.를 만들어 가고 싶었다.
생활관은 어쩌면 우리를 소개하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것을 소비하며,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를 담은 공간. 그런 공간에 관심이 닿은 사람이라면 우리와 어느 정도 연결될 가능성이 있을 듯했다. 더러는 그 관계 중에 오랫동안 이어질 관계도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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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상점생활관의 문을 연 것은 2018년 6월 1일이다. 2017년 6월에 퇴사를 했으니 딱 일 년 만에 오픈을 했다. 느긋하게 보내자고 했지만 고질병인 조바심으로 일 년 만에 일을 벌인 것 같긴 하다. 퇴직금으로 받은 대부분의 돈은 여행으로 탕진하고 일을 벌였다. 그 돈을 쓰면 뭐라도 제대로 할 것 같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긴 했다. 문제는 2018-2019년, 매월 말/초가 되면 돈 문제로 꽤나 신경이 날카로워지기도 했다. 어찌 됐든 잘 버텨 2022년을 맞이했다. 예상치 못한 COVID-19로 커뮤니티나 관계에 대한 계획은 하다 멈추다를 반복했고, 지금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 덕분에 외부적 상황 탓으로 모든 문제를 돌리기 쉽긴 했다. COVID-19가 없었다면 좀 더 나아졌을까, 기대했던 커뮤니티 문화를 만들어 냈을까, 알 길은 없다.
“누구와 무엇에 둘러싸여 날마다 보내는가” 혹은 “날마다 보내고 싶나” 한 번쯤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그것이 우리와 맞닿아 있기를 바라며, 그런 것을 찾는 생활이 되기를 바라며 ‘어쩌다 생활관을 열게 되었는가’는 이번 레터로 마무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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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커뮤니티
좋은 대화와 다양한 관계를 위한 우리의 커뮤니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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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생활관: The piano]
마을상점생활관 첫 피아노 연주회.
SOHEE, Park. PIANO CONCERT.
우리의 이웃 박소희 작곡가의 피아노 연주회에 초대합니다.
특히, 이번에는 전자 건반이 아닌 실제 피아노로 연주를 하기에 저희도 기대하며 우리 이웃을 초대합니다.
* 크리스마스 이브, 일요일 늦은 겨울 밤 박소희가 작곡한 7개의 피아노 곡을 듣고 곡에 대한 설명도 함께 들어보는 자리, 함께 해요.
이번에 연주하는 곡들은 제가 바라봐왔던 풍경과 장소의 기억 그리고 저만의 상상을 담은 음악입니다.
음악은 곁에 늘 존재하지만, 어떤 공간에서 어떤 마음으로 듣느냐에 따라 항상 다르게 느껴지고는 합니다.
피아노 선율이 감정의 문을 두드려 내면에 스며든다면 그 소리는 오로지 완전한 나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을까요.
청중과 연주자의 분리되었던 스토리가 하나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순간에 마음속으로 모두 창작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요.
그렇기에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무척 적극적인 행동이고 음악과의 관계를 직접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음악을 듣는 것이 음악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12월 24일에는 음악 하는 여러분과 제가 마을상점생활관에 모여 음악을 즐기는 시간을 가지면 무척 좋을 것 같습니다. From. 작곡가 박소희
일시: 2023.12.24 일 저녁 8시 (약 1시간 진행)
뮤지션: 박소희
공연참가비: 20,000원
미리듣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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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연말정산]클럽: 2023
술기운 음료 한 잔 마시면서 함께 한 해 동안 나의 생활과 일에 대한 대화의 자리를 마련합니다.
혼자서 한 해를 되돌아 보는 자리도 충분하지만 이웃과 혹은 낯모를 타인과 함께 그들의 한 해를 공유하면서 새로운 관점과 영감을 받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되돌아볼 기회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의 한 해를 만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대화에 빠질 수 없는 술기운 음료를 마시며 즐거운 대화가 있는 연말 기분 가득한 자리로 준비됩니다.
12월 29일 금요일 저녁 7시
금액 : 1만원 (와인 / 뱅쇼 / 맥주 혹은, 알콜이 포함되지 않은 음료 1잔 포함)
함께 올 한 해를 정산하고 내년을 잘 만들어 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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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 만났던 음악생활관 이웃 뮤지션이(소근남/잠꾸리/오;아/디에고/지호) 모두 함께 참여하는 [음악생활관 : 송년회](12.30)를 준비합니다. 우리의 이웃 뮤지션이 만든 따스한 음악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해 보아요. 곧 소개할게요.
- 연말에 이것 저것 일을 벌려볼까, 비건 포트럭 연말파티도 하고, 한 해 감사했던 이웃을 초대하는 저녁 식사 자리도 하고 등등 매년 이맘 때 하기도 했던 자리들을 고민하다 미리 정해진 몇 몇 자리만 하고 조용히 연말을 보내자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한 동안 올 해 어떻게 보냈더라 되새김질 하며 2024년을 맞이할 준비를 할게요.
- 겨울에만 짧게 만들어 소개하는 뱅쇼가 올 해도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에 더해 정민s가 야심작으로 테스트 중인 [다크초코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 한 잔 만으로 몸과 정신을 따스하게 만들어 주는 술기운 음료 많은 관심 부탁. : )
- 2024년이라고 말하면 조금 먼 미래같지만 2주만 지나면 곧!! 이네요. 제가 본격적으로 요가를 삶에 들여놓았던 게 2023년이었다면 2024년에는 생활관에서 요가를 나누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생활요가를 시작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선생님들을 모시고 1월에 두번의 요가를 할거에요. 수련을 마치고 각자의 감정을 손으로 꾹꾹 눌러 쓰는 <생활요가 1월 : 시작과 도전> 을 기획했어요. 곧 날짜와 함께 자세한 내용 전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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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슬쩍 담아주세요. : )
생활관 덕분에 2023년에 기억할 수 있는 순간들을 참 많이 만들었어요. 고맙습니다. 제가 함께 듣고 싶은 음악은 루시드폴 Mindmirror입니다. 가사는 없어요. 여러 소리들을 모아 만든 곡이라는데, 저한테는 참 위로가 되었어요.
23. 12. 14. 오전 10:24 제출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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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유난히 빠르게 지난 것 처럼 느껴지는 2023년 이었어요. 천천히 되돌아 보며 한 해를 마무리 해야겠어요. 위로가 되는 음악과 함께 언제나 생활관점레터를 쓰는 것에 대한 위로가 되는 반응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미리) 2024년도 잘 부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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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이 추천한 음악을 전합니다.
다들 좋은 밤 보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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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mirror (Mindmirror) · Lucid Fa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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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에게 전할 말이 있으신가요? 직접 말씀해주셔도 좋지만 혹시 부끄러우시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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