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7일 일요일
유독 손님이 없는 것 같은 기분은 선명하다. 이렇게까지 손님이 없었나 기억을 더듬어 봤는데, 노화인지 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았다.
수민씨가 운영하는 공간에 접이식 의자가 필요하다며 빌리러 오셨다. 그리고 커피를 주문하셨다. 공식적인 첫 손님이다!!!!
아무래도 손님이 더는 없을 것 같아 일찍 문을 닫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가 문을 닫고 바로 뒤 정아씨와 성혁씨가 생활관에 도착해 허망하게 닫힌 문을 바라보셨다고 했다. (죄송합니다)
12월 18일 월요일
날씨가 너무 추워서 손님이 없는거라고, 연말이라 사람들이 돈 쓸곳이 많아서 그런거라고 또 위안을 삼아본다.
12월 19일 화요일
(개인휴무)
형진이 도서관에 납품해야 할 책들을 실어 나르는 동안 잠깐 생활관을 지켰다. 그 사이 아주 드문 광경 : 손님이 생활관으로 들어오는 장면 을 마주했다. 중고책들이 가득 쌓여 있는 카트를 유심히 살피시다 안쪽 서가로 오셔서 또 한참을 둘러 보셨다. 그러곤 커피 한잔을 주문하셨다.
나도 마시고 싶어서 여유 있게 커피를 내려 내 입에 핀 곰팡이를 없애 줄 손님에게 가져다 드렸다.
유독 겨울엔 더 추운 생활관에서 따뜻한 커피를 오랫동안 마시는 호사를 누리게 해드리고 싶어 컵을 최대한 오래 데우고 나간 커피였다.
손님은 윙체어에서 몸을 구겨 넣고 자고 있는 소소를 보시곤 과거 본인의 가족이었던 리트리버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소소의 나이를 물으셨다. 7살이라 답했고, 늘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다. 노견. 이제는 제법 화를 내지 않고 울컥하지 않고 노견 레파토리에 다정하게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튼, 손님과 각자의 반려견 이야기를 주고 받고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10분 정도가 지났나? 열정적으로 데워 드렸던 커피 잔이 식기도 전에 그는 생활관을 떠났다.
겨울에 산책을 나왔다 궁금해서 들어선 공간에서 그가 커피를 마시며 머문 시간은 총 30분도 되지 않았다. 급한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무엇이 그를 그토록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게 했을까?
12월 20일 수요일
아침 일찍 생활관에 출근(?)해 가게 앞뒤로 쌓인 눈을 치웠다. 밤 사이 눈이 제법 왔는데, 동네고양이 겨울집 때문에 어닝을 펴놓고 다녀서 조금 걱정이 돼 서둘러 집을 나섰다. 길다랗고 두툼한 초록 플라스틱으로 엮인 빗자루로 눈을 사정없이 쓸었다. 낭만을 느낄 때가 아니었다. 이른 아침엔 거리 곳곳에서 눈 치우는 소리와 아이들이 눈과 함께 녹아 흘러 내리는 까르르 웃음 소리뿐이었다.
출근 한것도 아닌데 왜 벌써 피곤하냐;;
도아씨가 재입고 할 책을 들고 오셨다. 내가 올린 초코시럽 사진을 보고 뭔지 모르겠지만 그걸 먹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왔다고 하셨다. 허지만,,,,거기엔 술이 들어가므로 땡! (도아씨는 늘 자가용으로 이동을 한다)
1월에 있을 <생활요가와 글쓰기> 페이지를 만드느라 구부정하게 난로 앞에 앉아 타자를 두드리고 있다. 난로 앞에서 장작 타는 소리 대신 키보드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내가 뭔가 대단한 글쟁이가 된 느낌이기도 하다.(글도 안 쓰는 주제에)
서현씨가 왔다. 우와, 두 번째 손님이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서현씨는 언제나처럼 서가를 천천히 둘러본 뒤 그와 어울리는 책을 골라서 계산대로 오셨다. 예전엔 시시껄렁한 얘기를 종종 했었는데, 지금은 괜히 그에게 싱거운 사람으로 비춰질까 말을 아꼈다. (멋진 사람들 앞에선 나도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아, 현실이여;;;)
12월 21일 목요일
(생활관 휴무)
모처럼 아무 일정도 없는 휴일이다. 아, 일정은 있었지. 생활관에서 곧 하게 될 요가 수업을 위해 요가 매트의 방향을 어디로 해야 할지 정하고, 온라인 판매를 위한 상세페이지 작업 준비를 했다. 이럴 땐 제법 손발이 잘 맞는 나와 형진은 빠른 속도로 일을 처리하고 여유 있는 휴일 오후를 만끽했다. 죄책감 없이 낮잠도 잤고, 날은 추웠지만 땀을 흘릴 수 있는 요가 수련도 했다. 으아 너무 달콤한 하루 짜리 휴무 끝!
12월 22일 금요일
첫손님은 정인씨다. 역시, 첫 손님을 익숙한 이웃으로 마주하면 나의 하루의 시작이 좋은 느낌이다. 정인씨는 정말로 오랜만에 커피를 마시겠다며 크리스마스블랜드를 주문하셨다. 그것도 아이스로! 나는 그간 정인씨가 얼마나 커피를 잘 참아왔는지 알기에 1+1처럼 아이스를 다 드시면 따뜻한 커피 한잔을 다시 내려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처음 뵙는 분들이 오셨다. 맑고 깨끗한 인상의 손님은 생활관이 처음이신게 분명했다. 뒤이어 일행이 오셨고, 또 다른 일행도 오셨다. 그들은 커피초코럼을 시켰다. 나의 겨울 시즌 음료가 손님의 입에서 ‘주문할게요’로 나오는 순간. 맛있고 따뜻하게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정아씨와 성혁씨가 퇴근 후 생활관에 오셨다.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하시며 자기들이 번거로운 메뉴를 주문한것 아니냐는 질문아닌 질문을 하셨다. 왜 그러시나요. 매출에 힘을 실어주시는 행위를 왜 오히려 눈치를 보시나요 왜!!!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했다. 주문과 동시에 뚝딱뚝딱, 척척 만드는 모습을 보였다면 오히려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흠, 아쉬운 상태다. 분발하자, 더.
12월 23일 토요일
아침에 형진과 생활관 앞쪽 입구의 커튼을 설치했다. 힘들고 위험하게 높은 사다리에 올라 시멘트 벽을 뚫는 행위는 형진이 다 했다. 나는 바닥을 쓸고, 종종 사다리를 무거운 나의 몸무게로 넘어지지 않게 지탱하는 걸 했을 뿐.
커튼을 다니 훨씬 아늑해졌다. 이제 개방감과 고요함 모두를 연출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생각하고 실천하는데 3년 정도가 걸린 잎구쪽 커튼 달기.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질질 끌 일인가-_-;;
오늘은 나의 요가 TTC 수료식이 있는 날이다. 커튼을 다고 부랴부랴 요가원으로 향했다. 선생님과 도반들과 함께 올해 흘려보내고 싶은 것과 내년에 이루고 싶은 것 하나씩을 적어 태웠다. 이미 흘려 보냈고, 정말로 곧 이루어 질 것 같은 일을 기다리고 있다.
수료증을 받고 식사 자리에서 혼자서 생활관을 지키고 있는 형진이 걱정돼 CCTV 를 켰다. 12월 평균으로 치면 손님이 없어야 할 시간에 생활관 1층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형진에게 문자를 보냈다.
“뭐야, 사람들 왜 많아?!”
“오픈 하자마자 다들 동시에 들어오셨어”
문자의 뉘앙스엔 바쁜 기색은 없었다. 다행이었다. 선생님과 도반들과 식사를 마친 뒤 서둘로 생활관으로 복귀했다.
오랜만에 뵙는 반가운 손님들이 연말 인사를 건네러 오신 것 같았다.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뿌듯했다. 5년을 지켰더니 사람들이 돌아온다. 돌아와 웃는 얼굴로 다시 안부를 묻는다. 따뜻하다, 우리의 생활관.
더 잘 지켜내야지.
실은, 점점 더 신체적 나이가 어른이 될 수록 연말에 느끼는 들뜸은 사라져갔다. 이런게 나이 먹는 건가 싶었는데 오늘만은 예외였다. 오랜만에 만난 오랜 손님들의 안부와 마감 후 출간기념회를 빙하잔 연말 파티도 어깨를 들썩이고 엉덩이를 씰룩이기엔 충분했다.
점점 더 잘하고 싶고, 점점 더 잘 지켜내고 싶다.